예술정원joon

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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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

2023년 11월에 출간된 김이듬 시인 시집 십일월 김이듬 차라리 저수지에 몸을 던지겠어 마음이 지는 소리를 듣는다 나무가 씨앗의 기억으로 자란다면 나는 떠날 수 있기만을 꿈꾸었다 뿌리를 뻗어 이동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잎을 통해 햇살을 열망했던 나무가 셀 수 없는 잎사귀들을 멀리 보낸다 추락하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나는 활엽수 같아서 손바닥만한 마음을 가졌구나 셀 수 없이 많은 알 수 없이 좀스러운 매년 나는 환희의 나무에 관하여 쓰려고 했으나 몇 번이나 실패했다 이제 내 마음은 낙엽 되어 바스러진다 말라비틀어진 채 나무에 붙어 있기가 부담스러웠을 것 이다 처음 날아본다 나무는 낙엽의 형식으로 자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갈 수 있다 환희와 슬픔이 섞인 모순적인 마음으로 낙엽은 나뭇잎의 본색이다 겉보기만..

비문

비문 김명지 지금은 그 곳엔 제 몸에 불을 지르며 피어나는 꽃들로 눈길 닿는 곳마다 난리가 났을 테지 도솔암 오르는 길목 다투듯 키를 맞춘 사랑들이 무더기로 신열을 고하고 있을 테지 비문을 몸속 깊숙이 품은 마애불이 지긋한 눈빛으로 그 사랑을 독려하고 있을 터 우거에 홀로 앉아 먼 그곳 갸륵한 꽃빛을 그리워하며 빈 하늘에 붉은 꽃 한송이 그려 넣을 수 밖에 무릇, 세상 모든 사랑은 붉어라 --- --- 비문= 비밀문서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 고창 선운사 도솔암 오르는 양쪽 길가에는 상사화(꽃무릇)가 지천으로 붉게 핀다. 도솔암 암자 옆 커다란 절벽에는 누군가 조각한 마애불상이 있다. 마애불상 품안에 비밀문서가 있다고 일본제국주의 시절에 불상 품을 파헤친 자가 있다고 한다.

담양 글을 낳는 집에서

글을 낳는 집 담양 글을 낳는 집에서 10여 년을 전국에 있는 문학 레지던시를 찾아다니다가 처음으로 전남 담양에 있는 ‘글을 낳는 집’(이하 글집)을 찾아 3개월의 입주를 허락받았다. 대부분 도시와 가까운,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편의 시설이 있는 여타 문학 레지던시와는 다르게 산중에 위치한 곳이다. 차로는 화순온천이 10분 거리에 있고, 산길을 돌고 꺾으면 15분 거리에 대덕면, 창평면, 고서면, 곡성군 옥과면이 있다. 시내버스가 하루 다섯 차례 글집 앞을 지나간다. 고서면을 돌아서면 소쇄원과 가사문학관이 있는 가사문학면이 20분 거리에 있어 선현들의 글향기가 화수분처럼 피어올라 떠다니는 곳이다. 담양은 예로부터 가사문학의 출발지이며 중심지였다. 가사문학의 효시라는 정극인의 상춘곡이 담양에서 만들어졌고..

2023제주문학난장

2021년 10월부터 제주문학관에 근무하면서 많은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개관기념 프로그램, 2022제주문학난장, 그밖에 특별전시기획 등이 대표적이다.. 금년에는 예산이 부족하여 하루 행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제주문학관은 문학만이 아닌 다른 장르와의 융합프로그램을 시도해 왔다. 또한 문학인만의 행사가 아닌 어린이, 청소년, 직장인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중앙의 문학단체 초청 세미나, 재일제주문학인 조명 국제학술세미나 등 제주문학의 지평을 넓히는데도 관심을 두었다.. 이번 '2023제주문학난장'은 내 임기 중 마지막 기획 프로그램이다. 2022년 주제는 '제주어문학'이었고 금년 주제는 '해양문학'이다. '윤슬 일렁이는 문장의 바다에서'란 슬로건을 내걸고 바다와 해녀, 섬을 소재로..

제주문학관 2023.10.02

생활예술의 참신한 맛을 느끼다

생활예술의 참신한 맛을 느끼다 - 제2회 대한민국 시민연극제를 보고 예술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연극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이런 명제에 대해 명쾌하게 대답을 해준 게 제2회 대한민국시민연극제였다. 행사의 명칭에서 보듯이 시민연극제는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모여서 만든 연극이다. 전문극단 중심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만든 연극을 선보이는 자리가 시민연극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만이 만들어내는 건 아니다. 연기자들만 순수 동호인이고 극본이나 연출, 무대 스탭 등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니 연기만 경험이나 개인의 능력 차에 따라 다를 뿐 열정은 전문 연기자에 못지않다. 이 연극제에 참가한 연기자들의 사연도 연극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가를 보여줬다. 시민들이 연극에..

명품 가방 피렌쪼

명품 가방 피렌쪼 강 준 나는 가짜입니다. 지금은 가방박물관 유리 상자 속 빨간 카펫 위에 앉아 따스한 핀 조명을 받으며 관람객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사실은 안내문 속 원조가 아닙니다. 원래 여기 있어야 할 가방은 진짜 황금으로 치장된 우리 가문의 비조입니다. 이탈리아의 가죽공예 명장인 피렌쪼가 만들어 일본의 유력 정치인에 선물했는데 어떻게 해서 한국으로 건너오게 됐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난 이탈리아 태생이 맞습니다. 피렌쪼는 인기 있는 브랜드로 고가의 가죽제품입니다. 뼈대는 단단한 플라스틱으로 사각을 유지하고 모서리마다 금도금이 된 보호 장치가 박혀 있고 붉은색이 도는 소가죽 옷을 입었습니다. 피렌쪼란 이름표는 이마에서 빛납니다. 속을 들여다보려면 갈색 혁대를 풀고 굵은 이빨의 지퍼를 ..

김종현과 사진 제주 초가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 강준(극작가/소설가) 50년 전만 하더라도 하늘과 맞닿은 지상의 선은 타원형의 곡선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육지에서도 초가지붕이 있었지만 제주에서는 오름의 선과 더불어 아름다운 타원형의 곡선이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고 여유 있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좁고 천정이 낮은 집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의아하기도 하지만 서로 보듬어 안고 보살피면서 오순도순 정겹게 살았다. 제주의 초가는 육지의 그것과 구성 방식에서 조금 다르다. 비바람 때문에 천정을 낮게 지었고 새를 덮은 지붕은 새끼줄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하게 엮어 맸다. 초가의 집 구조도 안꺼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로 나누어져 있었고, 부모와 큰 아들네가 함께 살면서도 경제는 독립적이었다. 이렇게 부모와 자식이 독립적으로 생..

이별은 웰메이드 영화처럼

욕망과 인간성 사이 어딘가...제주 작가 강준, 새 소설집 발간 기자명 한형진 기자 (cooldead@naver.com) 입력 2023.07.18 15:06 / 사진=알라딘 제주 극작가 겸 소설가 강준은 최근 새 소설집 ‘이별은 웰메이드 영화처럼’(문학나무)를 발간했다. 이 책은 강준이 최근 3년 간 각종 문학지에 발표했던 소설을 묶었다. 단편 7개와 2~3장 분량의 짧은 소설 2편을 실었다. 소개 자료에 따르면, 짧은 소설(명품가방 피렌쪼, 모모는 어디로 갔을까)은 각각 사물과 고양이 입장에서 인간의 행태를 바라본 작품이다. 단편 ‘산불감시원’은 조직 사회에서의 갑질 문화의 폐해를 꼬집었다. ‘야수와의 산책’은 문학에 대한 작가의 집념과 욕망의 상관관계를 고찰한다. ‘우영팟’은 땅의 의미와 가족 해체의..

문학의 옹달샘 2023.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