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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오솔길 세상이야기

너 돌아갈래?

강용준 2022. 3. 1. 10:14

2022년 2월 마지막날 제주

 3월이다. 새 봄이 시작된다. 봄은 기다릴 것이 없는 사람에게도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대를 하게한다. 취학이나 진학을 하는 학생들에게도 3월은 희망의 시간이다.

 

 밀레니엄이 시작되던 해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을 봤다. 주인공 영호(설경구)가 마주오던 열차 앞에 서서 나 돌아갈래를 외쳤던 그 장면은 아직도 마음 속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 박하사탕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시나리오 구성 자체가 특이해서다. 영호를 덮쳤던 열차가 뒤로 밀려나면서 과거에서 과거로 즉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차적인 독특한 구성 때문에 스토리텔링을 강의하면서 모델로 사용해서다작품은 왜 주인공이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를 7개의 챕터로 보여 주고 있다. 20년 전 소풍 장면에서 첫사랑 순임에게서 받았던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다는 박하사탕의 풋풋하면서도 달콤한 첫사랑. 이 장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추억을 되새김해 봤을 것이다.

 

 지인과 대화 중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몇 살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순간 나의 머릿 속으로 고통스런 순간들이 초고속 영상처럼 재생되며 지나갔다. 행복했던 시간보다 왜 고통스런 순간들이 남는 것일까?

누구나 십 대는 우울하고 불안한 나날이었을 것이고, 이십 대의 청운의 꿈을 품었던 시절은 시간과 싸움을 하며 쫓기듯 살아서 인생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미욱한 시간들이었다. 나 역시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30~40대는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연극 무대에 젊음의 에너지를 쏟아 고민하고, 열악한 환경에 부딪히며 투쟁하고, 시대 상황에 목소리를 높이고, 구도자의 마음으로 기도하고, 애원하며 타협하고, 마음에 없는 아첨도 해야 했던 열정의 질풍노도 시대였다. 그래도 의도하던 것들이, 애를 태우며 땀을 흘린만큼 열매가 되어 돌아왔다.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느끼던 시간들이었다.

50대에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어려웠다. 차라리 작품 쓰는 일은 혼자 머리를 싸매면 그만이지만, 사람을 대면해야 하는 일은 아주 힘들었다. 예기치 못한 사고와 절망, 배신과 분노, 야심과 좌절,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동물이 사람이라는 말이 진실임을 느꼈던 때였다. 욕망과 열정의 무게를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기억 밖에 없다. 다시 돌아가서 그 때를 살라면 자신이 없다.

경제적인 사정도 나아지고 자식도 품을 떠나니 이제야 조금은 삶을 돌아볼 여유를 느낀다.

지나온 삶보다 앞으로 펼쳐질 세상이 궁금해진다. 고해를 건너 저마다의 시간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즐겁고, 그들이 풀어내는 과거의 서사도 듣고 싶다.

아프면 아픈 만큼, 노래의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었다.

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제 그 어떤 고난도 두렵지 않다.

세월의 채에 걸러 얻은 지혜가 나를 편안케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