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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나무 가지치기

애랑이 넘실을 보고

강용준 2022. 7. 11. 09:42

제주 신화와 역사에 대한 오해 혹은 왜곡

- ‘애랑이 넘실을 보고

 

 제주특별자치도립예술단 산하 단체들이 모여서 제주특별자치도 문예회관에서 마련한 종합예술극 애랑이 넘실이라는 작품을 보았다.

 무대는 객석 앞부분을 덮어 돌출시킬 만큼 최대한 넓혔다. 이는 제주도립무용단, 제주교향악단, 제주시합창단, 서귀포시관현악단, 서귀포시합창단을 모두 무대 위에 올리기 위한 고육책이었으나 성공했다고 본다.

흥겨운 음악과 어우러진 춤, 연기자들의 잘 훈련된 절도 있는 움직임과 계산된 듯한 스웩은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의자와 깃대 등 소품 활용이나 조명을 다양하게 활용한 연출기법은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목사 역(최종원)의 능청스러우면서도 노련한 연기는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작품의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제주를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 배비장전을 재해석한다는 기획 의도는 좋았고, 워낙에 다양한 장르로 발표되었기에 흥미를 끌었다. 그러나 줄거리를 끌어가는 각본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재해석이라는 관점도 역사적 제도와 사실까지 왜곡할 때는 문제를 일으킨다. ‘애랑이 넘실이라는 작품에서 작가는 제주의 설화를 원용하는 등 의욕이 넘쳤으나 실상 잘못 해석하고 있는 부분이 눈에 거슬렸다. 제주 출신이 아닌 작가가 쓴 작품에서 이런 오류를 쉽게 발견한다. 물론 제주 출신이라고 해서 제주 소재 작품을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주 문화뿐 아니라 지역 콘텐츠를 활용할 때에는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체득하면서 깊은 이해가 있은 후에야 작품에 녹여 낼 수 있다.

 

 우선 소로소와 백주또가 다정한 해설자로 등장하는데 이 둘은 신화 속에서 결코 다정한 캐릭터가 아니다. 소로소를 수렵의 신, 백주또를 농사의 신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제주에서는 소로소라는 명칭은 쓰지 않는다. 소로소천국 또는 소천국으로 쓰고 있고 수렵의 신이라는 명칭이 맞는지도 의문이다.

 백주또를 농사의 신으로 명명하는 것 또한 표피적 해석이며 제주 설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보인다. 백주또는 자식을 삼백칠십여 명을 낳고 이들은 각 마을 당신이 된다. 그래서 농사의 신보다는 무조(巫祖)’, ‘당신(堂神)들의 어머니로 부른다. 제주에서 농신은 자청비다.

 이 둘은 화합의 아이콘이 아니라 불화 또는 분리의 아이콘이다. 소천국은 육식주의자, 백주또는 채식주의자로 결코 화합 동거할 수 없는 사이다. 결국 둘은 헤어져 백주또는 송당에, 소천국은 김녕에 좌정한다. 이런 설화에 대한 이해와 인식만 있더라도 이들을 배비장과 애랑을 맺어주는 매개자로 등장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배비장의 예방직함도 잘못 해석하고 있다. 예방은 외교, 교육, 문화를 담당하는 지방 아전이다. 그런데 작품에서는 융통성 없게 세금을 거두는 일을 하고 관덕정 짓는 일을 담당한다. 세금은 호방, 집 짓는 일은 공방이 하는 일이다. 한라산에 오르게 하자니 억지로 꿰어맞춘 듯하다. 그리고 한라산 중허리에는 관청(관덕정)의 기둥이 될만한 아름드리 나무가 없다는 것도 간과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목사가 배비장을 대정 현감으로 임명하는 것도 왜곡이다. ‘비장이라는 직책은 목사가 임명할 수 있으나, ‘현감은 과거 시험을 통과하고 오랜 경험을 쌓은 경력자 중에 임금이 임명하는 높은 벼슬이다. 역사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해프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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