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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나무 가지치기

열다섯 편의 연극을 보고 나서

강용준 2023. 7. 7. 16:27

41회 대한민국 연극제에 출품된 각 시도에서 예선을 거쳐 올라온 15편은 연극을 보기 전에 희곡을 정독했다.

작가로서 좋은 기회였고 그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수상한 작품들은 탄탄한 구조로 인물의 성격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주제의식이 선명한 희곡들이었다.

결국 연출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창의적인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는 희곡이 좋은 희곡이다. 좋은 연출은 희곡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감동적인 맛있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무대의 세프다. 희곡을 활자화된 그대로 재현해내는 연출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과다한 부분은 도려내면서 자신만의 해석으로 독창적인 색체를 입히는 게 연출의 할 일이다. 그래서 연극을 연출가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나 명작으로 꼽히는 희곡들이 수백 년을 이어오면서 공연되는 이유가 연출가마다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에 대상과 금상을 수상한 작품들을 보면 희곡 자체도 주제의식이 뚜렷하나 마지막 부분이 사족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연출 능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희곡을 읽는 것만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 높은 무대를 연출의 안목으로 재창출해 냈다.

많은 작품들이 배경으로 영상을 사용했지만 상위 수상작들은 영상에 특별하게 의지하지 않았다. 트랜드처럼 되어 있는 양식에서 벗어나 독특한 길을 찾아낸 것이다. 희곡에 나와 있는 무대 설명을 따르지 않고 무대를 적절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독창적인 소품을 창출해 냈고 특히 조명 디자인을 잘 활용했다.

 

희곡 <배소고지 이야기> 에서는 옥정호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매운탕집이라고 되어 있지만 무대상에서는 그 어떤 표시도 없이 마루 형태의 빈 무대만 놓여 있다. 그 무대에 금강혼식을 맞는 노파와 친구가 등장한다. 무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다 혼령들이다. 과거 기억 속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무대 공간을 만들어 나간다. 그들은 음식점 손님이 되었다가 토벌대가 되었다가 바위가 되었다가 창고를 만들기도 한다. 그것들은 잘 디자인 된 조명이나 음향과 마루 주변에서 관극을 하다가 스피디하게 무대에 오르는 코러스의 동작을 통하여 긴장감을 조성했다. 이 작품은 코러스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으며 성공적으로 잘 활용됐다.

연극 <1945>도 희곡에서는 무대장치에 대한 설명이 없다. 다만 장소가 조선인전재민구제소라고 되어 있다. 연출은 구제소가 예전 정미소였다는 것을 드러내며 공장의 커다란 나무 기둥 여러 개를 무대를 둘러가며 세우고 뒷면에 여닫이 대문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큐브(직사각 상자) 9개를 가지고 옮기면서 여러 가지 공간과 시간을 창출해 냈는데 조명의 각도나 효과가 적절하게 활용되었다. 이 작품도 두 소녀를 해설자로 내세워 작품을 설명하는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연극은 날로 발전한다. 그 발전에는 앞서가는 작품들이 있다. 좋은 희곡이 그것을 새롭게 해석하는 연출가를 만나 관객들의 공감을 얻으면 좋은 연극이 된다.

몇 십 년 희곡을 썼고 연극제에 출품도 여러 번 했지만 이렇게 연속적으로 많은 작품을 보기는 처음이다.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으면서 공부도 많이 했다.

수상한 작품들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나 입상을 못했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다. 경연대회는 상대적인 것이기에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운이 없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연극제는 내년에도 열린다. 좋은 연극을 위하여 연극인의 분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