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정원joon

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제주설화의 연못

설문대할망

강용준 2011. 4. 24. 09:54

제주섬을 창조한 설문대할망


강 용 준 (희곡작가)


제주의 문화는 본토와 달리 독특하여 문화만으로 본다면 가히 탐라국의 독립을 외칠 만하다.

탐라문화는 다른 곳에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신화와 전설, 민담, 각 마을 본향당의 내력을 담아낸 본풀이, 그리고 척박한 자연을 경작하며 생활의 지혜를 담은 민요와 고어의 형태가 남아 있는 제주어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제주 신화의 대표적인 것이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거인 여성 창조주 신화를 가졌다는 점이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처럼 그리스 로마 신화에 거인이 등장하지만 제주신화에도 이런 거인이 등장한다.

제주를 삼다의 섬이라 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주에는 유독 여신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모계사회가 남긴 유물이다.

제주를 만든 설문대할망에 대한 이야기는 몇 가지 에피소드 형식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여기서 할망(할머니)의 호칭은 나이가 들어서 할머니가 아니라 위대한 능력을 가진 설문대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설문대 할망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단지 설문대 할망은 망망 대해를 바라보다 바다 한가운데 섬을 만들기로 하고 본토에서 흙을 퍼다 제주섬을 만들었다.

치마에 흙을 퍼 날라 하늘에 닿을 듯이 높게 한라산을 만들고 계곡과 폭포를 만들었다.

산이 얼마나 높았던지 밤하늘의 은하수를 잡아다닐만 하다고 해서 한라산이라 불렀다.

그런데 설문대 할망은 가난했다.

그래서 노상 헤진 단벌치마를 입고 다녔는데 흙을 실어 나르다가 터진 치마 구멍 사이로 흙이 흘러내렸다.

이것이 오름(산)이 되고 관탈섬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군데군데 만들어진 오름의 숫자가 360여 개나 된다.


설문대 할망은 섬사람들을 사랑했다.

사람들이 심심할까봐 산에는 나무가 자라게 하고 온갖 새들과 짐승도 살게 하였다.

그리고 섬생활이 무료해 질까봐 곳곳에 아름다운 경치도 만들어놓았다.

부드러운 바람과 알맞은 기온, 깨끗한 물과 공기, 싱싱한 해물과 과일로 지상의 낙원을 만들고자 했다.

사람들도 온순하여 다툼이 없고 인정이 많아 남을 돕는 걸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섬사람들에게 바다는 식량을 얻는 밭이었지만 때로 풍랑이 사나워 사람들이 멀리 나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수가 많았다.

때문에 육지를 구경하고 싶어도 뱃길이 무서워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설문대할망에게 부탁했다.


“섬을 만들어 저희를 살게 하신 설문대 할마님,

억만세세로 칭송을 받으실 설문대 할마님.

할마님 덕으로 저희가 부족함이 없이 무병장수하며 살고 있습니다만 딱 한 가지 불편한 게 있어서 부탁드리오니 전능하신 설문대 할마님께서는 거절하지 마옵소서.”

“그게 무엇이냐?”

“저희들이 걸어서 육지에 갈 수 있게 다리를 놓아주십시오.”

“그건 어렵지 않다. 허나 나도 너희들에게 부탁이 있다.”

“할마님의 부탁이라면 어찌 저희들이 거절할 수가 있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내게 속곳이 없다. 그러니 명주 백 동을 모아오면 너희들의 소원을 들어줄 터이니 그리하겠느냐?”

“그거야 문제없습니다. 백 동을 모아오면 분명 다리를 놓아주시겠습니까?”

“내가 어찌 거짓 약속을 하겠느냐? 내 당장 지금부터 다리를 놓기 시작할 것이니 너희들도 어서 서둘러라.”

섬사람들은 그날부터 온 섬을 다 뒤져 명주를 모았다.

그러나 모인 명주는 아흔아홉 동, 한 동이 부족했다.

이 사실을 설문대할망에게 알리자, 설문대할망은 토라져서 그만 다리공사를 중단하고 말았다.

설문대할망이 이때 다리를 놓던 흔적이 조천읍 조천리와 신촌리 앞바다에 남아 있는데,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바위섬들이 그것이다.


설문대 할망에게는 설문대 하르방이라는 남편이 있었는데, 그도 역시 무척 큰 거인이었다.

이들은 큰 만큼 먹는 것도 대식가였다.

하지만 자그만 제주섬에는 먹을 것이 많지 않아 걱정이었다.

그래서 주로 바닷고기들을 잡아먹었다.

헌데 이들이 먹이를 사냥하는 법은 참으로 재미있다.

설문대 할망이 치마를 걷고 성산포 신양리 섶지코지 앞 바다에 엉덩이를 담그고 앉으면 설문대 하르방이 커다란 성기를 휘두르며 우도 쪽에서 부터 고기를 몰아왔다.

쫒기던 고기들은 다리를 벌리고 앉은 설문대 할망의 하문이 피난처 동굴인 줄 알고 모두 숨어들었다가 설문대 할망이 일어서는 바람에 모두 잡히게 되고 그렇게 해서 하루의 식량을 해결했다.

또한 한라산에서 짐승들을 잡을 때도 마찬가지 였다.

설문대 하르방이 한라산 위에서부터 짐승들을 내어 몰면 다리를 벌리고 앉은 설문대 할망의 하문 속으로 숨어들었다가 이들로 끼니를 마련했다고 한다.

설문대 할망은 오줌발도 쌨다.

지금의 우도도 원래 섬이 아니었다.

어느 날 설문대 할망이 일출봉과 우도봉에 다리를 걸치고 오줌을 누었는데 오줌발이 하도 쌔어 육지가 패이고 그 사이에 바닷물이 들어와 우도 섬이 생긴 것이다.

육지가 얼마나 깊이 패었는지 성산포와 우도 사이 바다는 물살이 유난히 빨라서 이 부근에서 조난당한 배들은 거센 조류에 밀려 일본까지 흘러간다고 한다.


설문대 할망은 키가 무척 컸다.

한라산을 베고 누우면 다리가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이르렀다.

지귀도와 관탈섬에 발을 걸치고 우도를 빨래판으로 삼아 빨래를 했다.

이런 설문대 할망이 키 자랑 하기를 좋아했는데 용연이 수심이 깊다고 하나 할망의 무릎에도 미치지 못했다.

여기저기 깊다고 하는 곳에 가 보았지만 설문대 할망의 허리까지 차는 물도 없었다.

그러다 사람들이 ‘물장올’이라는 곳이 깊다고 해서 깊으면 얼마나 깊겠는가 생각하고 들어갔다가 그만 빠져 죽었다.

이를 이곳 사람들은 설문대 할망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한편 설문대할망의 죽음에 대해서 이와 다른 설이 있다.

한라산 중턱 영실에 있는 오백장군과 연결된 설이다.


설문대 할망은 오백 명이나 되는 자식을 두었다.

아들들은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며 끼니를 장만하였다.

허나 그들을 위해 끼니를 마련하는 게 걱정이었다.

설문대 할망은 어느 날도 예전처럼 커다란 솥을 걸고 오백 명이 먹을 죽을 끓였다.

솥 위에 올라서서 국자로 저어가며 죽을 끓이던 설문대 할망은 그만 발을 헛디뎌 죽 솥에 빠지고 말았다.

자식들이 놀다가 돌아와보니 어머니는 없고 죽 솥에는 죽이 펄펄 끓고 있었다.

 어머니의 행방을 찾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식들은 배가 고파서 더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식들은 이왕 자기들을 위해 끓인 음식이니 죽을 먹으며 기다리자고 했다.

허나 효성이 지극한 막내가 어머니가 먼저 손을 대기 전에는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형들은 막내의 의견을 무시했다.

자식들이 다른 때와 달리 죽이 기름지고 맛있다고 막내에게 먹기를 권유했지만 막내는 끝까지 먹지 않았다.

밑바닥에 보일 때까지 한동안 맛있게 퍼먹는데 솥 바닥에서 뼈가 나왔다.

자식들은 의아하게 여겼다.

한밤중이 되어서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자식들은 그게 어머니의 뼈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막내는 어머니의 살을 먹은 형들을 용서할 수 없다면서 서귀포로 달려가 삼매봉 앞에서 울부짖다가 바위가 되었는데 그것이 외돌괴가 되었다.

어머니의 살을 먹은 자식들은 잘못을 뼈저리게 반성하며 몇 달을 통곡하다 그 자리에서 바위가 되었다.


 이 바위의 형상이 인간의 번뇌를 구도하는 수행자의 형상이라 해서 불가에서는 오백나한이라 부르기도 하고, 신령을 모시는 무가에서는 이들을 장군으로 추앙하여 오백장군이라 부르며, 일반적으로는 신령스런 감실에 있는 기이한 바위란 뜻으로 영실기암이라 부른다.


* 덧붙이는 글


필자는 오래 전부터 국제자유도시에 걸맞은 이미지 개선을 위해 제주의 상징물을 만들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지금 제주도하면 떠올리는 게 돌하르방인데 돌하르방은 남국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개성이 없는 장승이다.

역사성도 창의성도 제주도를 대표할 수 있는 어떤 상징성도 없다.

있다면 동네 어구를 지키는 수호신 정도다.

이에 필자는 설문대 할망상을 만들어 제주도 상징물로 삼자고 제안했다.

제주를 창조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거인여성 창조주를 왜 문화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가?

설문대 할망이 가졌던 개척과 창조정신, 청빈하면서도 꿋꿋했던 자강불식의 자세, 항상 새로운 것을 향한 도전의식 등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국제자유도시의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다.

설문대 할망상이 만들어지면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인상,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싱가포르의 멀라이언 등에 뒤지지 않은 상징물이 될 것이다.

설문대 할망상을 만든다면 설문대 할망의 막내와 관련이 있는 서귀포 삼매봉이나 중문단지가 제격일 것이다.

태평양으로 향하는 관문에 전망대와 쇼핑센터 등 복합공간을 갖춘 건축물로 외형을 설문대 할망상을 이미지화해서 건축한다면 제주의 잊혀졌던 정신적 원류를 찾고 제주문화의 독특성과 정체성을 국내외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77

 

 

 

 

'제주설화의 연못'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성혈과 혼인지  (0) 2011.06.15
오돌또기  (0) 2011.05.24
천지왕  (0) 2011.05.12
사랑의 농신 자청비  (0) 2011.04.25
신들의 휴양지, 웰빙의 섬 제주  (0) 2009.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