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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설화의 연못

신들의 휴양지, 웰빙의 섬 제주

강용준 2009. 9. 20. 09:19

신들의 휴양지, 웰빙의 섬 제주


신들의 나라, 제주도


태평양에 핀 한 떨기 신비스런 꽃.

제주는 향기와 빛깔마저 예사스럽지 않은 환상의 섬이다.

천혜의 절경을 지닌 동양 제일의 휴양지 제주도는 한반도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가졌다.

그 문화의 저변에는 절해고도라는 지정학적 영향과 그 척박한 환경을 지혜롭게 대처해온 해 온 제주 선인들의 정신적 숨결이 깔려 있다.

그 숨결은 수많은 신화와 전설과 민요로 남아 한국어의 고형이 살아있는 제주어로 전해지고 있다.


제주 사람들은 1만 8천신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신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제주도 창조신화인 ‘천지개벽신화(천지왕본풀이)’와 ‘설문대할망’ 신화이다.


- 천지개벽신화

각 나라마다 개국에 관한 많은 신화를 가지고 있지만 천지창조에 관한 신화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제주의 ‘천지왕본풀이’ 신화는 천지창조에서 부터 인간의 현세와 내세관, 그리고 도덕율을 다루고 있어 그리스․로마 신화에 비견될 만하다.

‘천지왕본풀이’라는 말은 천지왕에 대한 근본 내력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 시작은 다음과 같다.


‘태초에 천지는 혼돈으로 있었다. 하늘과 땅이 금이 없이 서로 맞붙고, 암흑과 혼돈으로 휩싸여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 혼돈천지에 개벽의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하늘의 머리가 자방(子方)으로 열리고 을축년 을축월 을축일 을축시에 땅의 머리가 축방(丑方)으로 열려 하늘과 땅 사이는 금이 생겨났다. 이 금이 점점 벌어지면서 땅덩어리에는 산이 솟아 오르고 물이 흘러내리곤 해서 하늘과 땅의 경계는 점점 분명해져 갔다...’


 이렇게 해서 천지를 창조한 천지왕은 지상에 내려와 총명부인을 얻고 그 사이에 대별왕, 소별왕 형제를 낳게 된다. 그런데 이들 형제는 창조된 세계를 누가 다스릴 것인가를 두고 다툰다.

이승과 저승 가운데 서로 이승을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것이다.

둘은 수수께끼 놀이로 승부를 겨루지만 소별왕이 간계를 부려 이승을 차지하게 된다. 그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엔 살인, 역적, 도둑, 사기, 간음이 많아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설문대할망’ 신화는 제주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개한다.

설문대할망은 본토에서 치마에 흙을 퍼 날라 한라산을 만들고 계곡과 폭포를 만들었다.

이때 뚫린 치마 구멍 사이로 흙이 흘러내렸는데 이것이 오름이 되고 관탈섬이 되고 우도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오름의 숫자가 360여 개나 된다.

설문대할망은 섬사람들을 사랑했다.

사람들이 심심할까봐 산에는 나무가 자라게 하고 온갖 새들과 짐승도 살게 하였다.

그리고 섬 생활을 무료해 할까봐 곳곳에 아름다운 경치도 만들어놓았다.

부드러운 바람과 알맞은 기온, 깨끗한 물과 공기, 싱싱한 해물과 과일로 지상의 낙원을 만들고자 했다. 사람들도 온순하여 다툼이 없고 인정이 많아 남을 돕는 걸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천제연폭포에 칠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는 등, 신들은 천상에서 내려와 제주사람들과 어울렸다.

설문대할망은 얼마나 키가 컸는지 한라산을 베고 누우면 다리가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이르렀다. 이 관탈섬과 서귀포 앞에 있는 지귀도에 발을 걸치고 성산일출봉 앞에 있는 섬 우도를 빨래판으로 삼아 빨래를 했다.


설문대할망은 오백 명이나 되는 자식을 두었는데 그들의 끼니를 마련하는 게 걱정이었다.

어느 날도 예전처럼 커다란 솥을 걸고 오백 명이 먹을 죽을 끓였다.

솥 위에 올라서서 국자로 저어가며 죽을 끓이던 설문대할망은 그만 발을 헛디뎌 죽 솥에 빠지고 말았다.

자식들이 놀다가 돌아와보니 어머니는 없고 솥에는 죽이 펄펄 끓고 있었다. 어머니의 행방을 찾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식들은 배가 고파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왕 자기들을 위해 끓인 죽이니 먹으며 기다리자고 했다.

효성이 지극한 막내만은 어머니가 먼저 손을 대기 전에는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형들은 막내의 의견을 무시했다. 형들은 다른 때와 달리 죽이 기름지고 맛있다고  권유했지만 막내는 끝까지 먹지 않았다.

밑바닥이 보일 때까지 정신없이 퍼먹는데 솥 바닥에서 뼈가 나왔다. 자식들은 의아하게 여겼다. 한밤중이 되어서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자식들은 그게 어머니의 뼈라는 걸 알았다.

어머니의 살을 먹은 자식들은 잘못을 뼈저리게 반성하며 몇 달을 통곡하다 그 자리에서 바위가 되었다.

 이 바위의 형상이 인간의 번뇌를 구도하는 수행자의 형상이라 해서 불가에서는 ‘오백나한’이라 부르기도 하고, 무가에서는 이들을 장군으로 추앙하여 ‘오백장군’이라 부르며, 일반적으로는 신령스런 감실에 있는 기이한 바위란 뜻으로 ‘영실기암’이라 부른다.

막내는 바다로 뛰쳐나가 울다가 ‘외돌괴’가 되었다.

이런 거녀창조주신화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신화다.


- 지상 낙원 ‘이어도’

이밖에도 사랑의 농신 ‘자청비설화’, 출산과 죽음을 관장하는 ‘삼신할망과 저승할망’ 등 유독 제주에는 여성중심의 신화가 발달되어 있다.

이는 제주가 오랫동안 모계중심사회였으며, ‘삼다의 섬’으로 불리는 근거가 되고 있다.

‘삼다’란 여자와 바람, 돌이 많은 것을 말한다.

제주에서 흔히 보게 되는 돌은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집 울담, 밭의 경계, 묘지의 울타리, 돌하르방 등 제주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제주 문화의 정체성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최근까지도 제주도의 인구는 남성에 비해 여성이 많았다.

그 중에도 ‘해녀’는 바닷일을 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존재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에 있다. 해녀들은 추운 겨울철에도 바다 속에 들어 가 물질을 한다.

이들은 바다에 뜨는 태왁에 의지하여 한 번 물속에 들어가면 2-3분 정도 숨을 참아가며 해산물을 채취 하는데, 이런 힘든 작업을 통해 자녀들을 육지로 유학 보내고 가정경제를 이끌었다.

해녀의 강인한 생활력과 억척스런 삶의 의지는 제주인의 정신적 자산으로 남아 있으며 이들은 고달픈 생활을 위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어도’를 만들어 냈다.

‘이어도’는 일하지 않아도 되고, 온갖 산해진미가 풍부하여 먹을 것 걱정 없고 세상사의 시름과 근심, 질병, 다툼이 없는 환상의 섬이다.

해녀들은 바다에서 죽으면 이어도로 간다고 믿는다.

해녀들이 만들어 낸 ‘이어도’라는 이상향은 제주가 지상의 낙원임을 암시하고 있다.


제주도의 풍속과 명물


제주에는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다.

이는 삽상한 공기, 싱싱한 해산물과 과일 그리고 미네랄이 풍성한 화산암반수 때문이다.

사철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며 전복, 옥돔, 흑돼지, 밀감 등 먹을거리가 풍부한 웰빙의 섬이다.

제주 선인들은 철에 따라 많은 전통적인 놀이를 만들어 냈고, 노래를 부르며 힘겨운 노동을 지혜롭게 이겨냈다.

이런 주민들의 낙천적인 성격은 마을마다 많은 축제를 만들어 냈다.

지금도 해마다 40개가 넘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중 10월에 열리는 전통문화를 집대성한 ‘탐라문화제’가 대표적인 축제다. 

40여년의 역사를 가진 탐라문화제는 전도적으로 개최되며 성읍민속마을과 덕수리민속마을에서는 전통재현행사가 열리는데 제주만의 독특한 민속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또한 매년 봄 입춘을 전후하여 풍농과 무사강녕을 기원하는 ‘입춘굿놀이’, ‘들불축제’가 열려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제주의 관광지 곳곳에 입을 다물고 무뚝뚝하게 서 있는 돌하르방이라는 석상을 볼 수 있다.

돌하르방은 과거 마을 입구에 세워져 다른 곳에서 침입하는 액운을 막는 수호신인데, 신혼부부들은 아들을 점지 받기위해 돌하르방의 코를 만지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한편, 제주에는 육지에는 없는 독특한 풍속이 오늘날까지도 이어내려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신구간’이다.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들은 일 년의 임기를 끝마치고 천상으로 올라가 다시 임지 교대의 명을 받고 돌아오는데 신들이 없는 사이에 이사를 하거나 집을 고쳐야 아무런 탈이 없다고 믿고 있다. 이를 옛 신들과 새로운 신들의 임무교대기간이라 하여 신구간이라 한다.

대한 후 5일째부터 입춘 3일 전까지 약 7일 정도의 신구간에는 전셋집을 옮기거나, 새집으로 이사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또한 음력 8월 초하루날에는 ‘벌초’행사가 정례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날이 되면 전국에 흩어져 있는 형제 가족뿐 아니라 먼 친족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다.

그래서 섬 곳곳에 흩어져 있는 조상 묘소를 찾아다니며 길게 자란 봉분의 풀들을 잘라내고 제를 지내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보를 교환한다.

조상의 음덕에 감사드리고 끈끈한 친족애를 확인하는 풍속이다.


제주도의 역사와 국제도시


제주의 역사는 ‘탐라국’에서 시작 된다.

1천년의 역사를 지닌 탐라국은 자치권을 지닌 독립국가로 출발했으나 오랜 세월 주변 강국들의 지배를 받았다.

고려시대에는 정통 정부임을 주장하는 ‘삼별초’가 제주까지 내려와 제주 사람들과 함께 1년 여간 몽골의 침입에 항쟁을 하였으나 여몽연합군에 격멸을 당했다.

이후 몽골은 제주를 일본 침략의 거점기지로 삼아 목마장을 만들고 100년 동안 지배했다.

이때부터 제주도는 말의 산지가 되었고 제주토종인 ‘조랑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절해고도이기에 나라에 큰 죄를 지은 중죄인이 유배 오는 유형지로 원악도(遠惡島)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도 제주는 외부세력의 침탈을 많이 당했다.

그러나 유배인의 영향을 받은 섬사람들은 불의를 용납하지 못했다.

그래서 외세에 대항하다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었다.

탐관오리의 횡포에 대항한 방성칠난과 천주교난으로 불리는 이재수난, 그리고 일제의 수탈에 대항한 해녀항쟁 등이 대표적이다.

그 중 제주인들의 가슴에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 것은 1948년 일어난 4․3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국이 30여 년간의 일본 압제에서 해방되어 건국을 준비하는 과정에 좌․우익의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해 일어났다.

해방이후 38선 이남에는 미국이, 이북에는 러시아가 통치하고 있었다.

건국 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가 남한만 이루어지는데 이를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과의 다툼이 있었다. 반대 측에서는 동맹파업에 들어갔다.

1947년 제주시 관덕정 마당에서 3․1절 기념식을 거행하는 과정에서 시위하는 군중을 해산하기 위해 경찰이 발포하여 사상자가 났다. 이에 경찰이 파업주도자와 시위참가자 검거령을 내리자 젊은이들은 한라산으로 도피하게 된다.

여기에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은 좌익 세력들이 끼어들어 1948년 4월3일 산사람들은 일제히 경찰서 등 관공서를 습격하면서 비극적인 사건은 전개됐다.

이들을 폭도로 규정하여 소탕하려는 군․경과 산사람 사이에서 죄 없는 도민들이 희생당했다. 이 사건으로 도민의 1/3이나 되는 수 만 명의 희생자가 났으나 아직도 진상은 규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 사건이 공권력에 위한 희생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사과했고 4․3평화재단이 만들어지고 평화공원이 조성되었다.


이런 아픈 역사를 간직한 제주도지만 성산일출봉에서 거문오름에 이르는 일대의 용천동굴과 빼어난 자연 경관은 유네스코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또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제주도는 동북아시아의 관광수도를 자임하고 국제자유도시를 선포했다.

제주국제자유도시는 금융, 물류의 허브도시로서 외국인들이 비자 없이 입국하여 관광과 비즈니스를 할 수 있으며 외국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만들고 있다.

 이에 걸맞게 아세안정상회의 등 각종 국제회의와 국제스포츠대회를 유치하고 있으며, 40여개의 환상적인골프장과 관광 위락시설은 세계적인 휴양지로서 손색이 없다.

한편 정부는 2006년 제주도를 특별자치도로 선포하여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 자치권을 확대했다.

지금은 영어전용타운인 영어교육도시를 건설 중이고 외국의 교육기관을 유치하고 있으며, 외국의 의료기관, 재벌자본그룹 등을 유치하여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고 있다.

머지않아 제주는 홍콩과 싱가포르를 능가하는 동북아 최고의 국제도시가 될 것이다.

 

* 이 글은 2009.9.9~9.14 개최된 제3회 제주세계델픽대회 프로그램에 게재된 것을 전재했습니다


글 : 강용준(희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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