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정원joon

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제주설화의 연못

오돌또기

강용준 2011. 5. 24. 13:01

 

 

오 돌 또 기


제주민요 오돌또기는 민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쓰라린 이별의 사연이 담겨져 있는 노래다.

아주 오랜 엣날 제주 섬의 어느 마을에 김 복수라는 청년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복수는 집이 몹시 가난하여, 낮에는 산에 가서 나무를 베다 파는 일을 하고, 밤에는

부지런히 글공부를 하니, 동네 사람들은 효자이면서, 성품이 곧고 예의가 바르며 글공부에 열심이니 후에 크게 될 인물이라고 칭송이 자자했다.

동네 어른들은 글공부는 그만하면 되었으니, 과거 시험에 응시해 보라고 권유를 했다.

복수는 과거에 응시하고 싶었지만, 홀로 계신 어머니를 혼자 두고 먼길을 떠나기가 어려워 주저하였다.

제주 바다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변하는 터라, 뱃길을 떠나는데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기도 했던 것이다.

복수 어머니는 그런 아들에게 사내 대장부의 도리를 가르치며 부디 과거 시험 보러 떠날 것을 권했다. 복수는 어머니의 간곡한 권유에 과거를 보기로 작정하였다.

복수가 떠나는 날 바다는 하늘 빛 비단을 펼쳐 놓은 것처럼 잔잔했다.

동네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복수는 수륙 만리 한양을 향하여 돛배를 탔다.

배가 제주바다를 벗어날 즈음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은 폭풍우로 변하였고, 파도가 거칠게 일어서자 돛배는 거세게 흔들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사나운 파도에 뒤집히며 돛배는 난파하고 말았다.

복수는 살아야 된다는 일념으로 헤엄치다 간신히 부서진 뱃조각 하나를 붙잡게 되었다.

이윽고 바람은 자고 바다는 잔잔해 졌으나, 캄캄해진 바다 한 가운데 방향도 알 수 없이 어디로 떠가는지 모른 채 조류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며칠을 잤는지, 깨어보니 아름답게 치장된 방안이었고 이윽고 아름다운 처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떠내려온 복수를 구해낸 임 춘향이라는 처녀였는데, 그도 유구(오키나와 열도) 사람으로 일본에 있는 오라비를 만나러 가다가 풍랑을 만나 이곳 안남에 표류하였다는 것이다.

임 춘향의 할아버지도 본시 조선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는데, 난파를 당하여 유구까지 와서 정착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할아버지가 춘향전의 주인공처럼 정철을 지키는 아름다운 여자가 되라고 이름을 춘향이라고 지어주었다는 것이다.

먼 나라에서 표류해 온 동포라는 점이나 복수를 구해 준 은인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두 사람은 매일 바닷가에 나가 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자신들을 고향으로 실어다 주리란 기대에서 였다.

그러나 몇 달을 기다려도 배는 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단념하고 그곳에 정착하여 함께 살기로 했다.

그들은 동네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치렀고, 가정을 이루었다.

복수는 예전처럼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팔고, 춘향이는 삯바느질을 하며 화목하게 살았다.

춘향이는 손 맵시가 좋고, 복수는 부지런하여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둘이는 금슬이 좋아 해를 건너 하나씩 자식을 출산하여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남에 큰 배가 도착하였다.

일본국 사신이 타고 온 배였다.

배를 보자 복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 왔다. 홀로 두고 온 어머니 생각과 친구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복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춘향은 남편의 향수에 괴로워함을 눈치채고 가족 모두 복수의 고향으로 이주하자고 제의했다. 

복수는 사신들에게 돌아가는 길에 일본으로 같이 데려다 주길 간청하였다.

일본에는 춘향이의 오라비가 살고 있고, 잘만 하면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을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복수의 간곡한 부탁에 일본 사신은 김 복수의 동행을 허락했다. 그러나 여자는 배에 태우지 않는 게 금기로 되어있다며 끝내 춘향의 승선은 허락하지 않았다.

복수는 가족을 내버려두고 혼자서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도 승선을 포기하려 했다.

그러나, 춘향은 그를 말렸다. 복수라도 먼저 고향에 돌아간다면 차후에 가족들을 데리러 올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복수는 아내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가족들과 뜬눈으로 마지막 이별의 밤을 지새고, 재회를 거듭 약속하며 일본국 배에 몸을 실었다.

일본에 도착한 복수는 춘향이 알려 준대로 처남인 임 춘영을 찾아갔다.

처남은 포목상을 하면서 꽤 여유롭게 살고 있었다.

처남은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 매우 기뻐했다. 배가 파선하여 죽은 줄만 알았던 누이가 살아 있다니 당장 만나고 싶어했다.

처남은 우선 유구로 가서 배를 구해 보자고 했다.

두 사람은 유구로 향하는 배를 탔다.

배가 육지를 떠나 섬 사이를 빠져 나와 한참을 망망대해를 달리는데, 멀리서 산봉우리가 우뚝 솟은 큰 섬이 보였다.

틀림없는 한라산, 김 복수의 고향 제주 섬이었다.

 복수의 가슴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뛰기 시작하였다.

복수는 고향을 그대로 지나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고향을 들르지 못하면 영영 어머니를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꾀를 생각해 냈다.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물통에 구멍을 내어 식수를 바다로 빠지게 하였다.

복수는 이 사실을 선장에게 알리고, 배를 제주 섬에 착륙시켜 식수 통을 채워 가자고 말했다.    

 자기가 저 섬 지리를 잘 아니 직접 선원들과 함께 상륙하겠다고 했다.

선장은 이에 동의하여 배를 섬 근처에 멈추게 했다. 그리고는 비상시를 대비하여 마련해둔 자그만 배를 내려 물통과 선원들과 함께 복수를 하선시켰다.

그들은 힘차게 노를 저어 제주 땅에 내렸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다행히 고향과 멀지 않은 이웃마을이었다.

복수는 선원들에게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이 나는 곳을 안내해주고는, 그가 살던 곳으로 줄달음 처 갔다.

 고향에서는 그가 죽은 줄로 알고, 그가 고향을 떠난 날을 기일로 삼아 제사를 지내고 있었는데, 마침 그날이 복수의 제삿날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엔 귀신이 나타났다고 소란을 피웠으나, 이내 복수가 살아 돌아온 것을 알고는 기뻐했다.

 늙으신 어머니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복수임을 확인하자 졸도까지 하였다.

복수는 동네 사람에 둘러 쌓여 이국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배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물을 다 실은 배는 복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임 춘영이 만류를 했지만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하여 유구를 향하여 고동을 올리며 떠나고 말았다.

배를 놓친 복수는 바닷가로 달려 가 통곡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울어도 춘향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는 없었다.

그날부터 복수는 춘향이가 생각나면 바닷가를 찾아갔다.

휘엉청 밝은 달밤에 갯가에 부서지는 파도는 복수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복수의 입에서는 저절로 흥얼거리듯 노랫가락이 흘러 나왔다.


오돌또기 저기 춘향 나온다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거나

둥그대 당실 둥그대 당실

여도 당실 원자 머리로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거나


복수는 한숨을 쉬며 노래를 되풀이했다.

바다 일을 하는 해녀들은 사정을 전해 듣고는 복수를 동정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복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고, 그 노래를 따라 읊조리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복수가 보이지 않았다. 누구는 바다 건너갔다고 했고, 누구는 배를 타고 춘향이에게로 갔다고 했다.

노래는 금새 섬 전체에 퍼졌다.

해가 갈수록 김 복수와 임 춘향의 애처로운 사연은 사라져 버리고 오늘은 노래만 남아

전하고 있다.

81

'제주설화의 연못'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등할망  (0) 2011.06.29
삼성혈과 혼인지  (0) 2011.06.15
천지왕  (0) 2011.05.12
사랑의 농신 자청비  (0) 2011.04.25
설문대할망  (0) 2011.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