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정원joon

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제주설화의 연못

천지왕

강용준 2011. 5. 12. 13:21

천지왕 본풀이

 


제주도 무속제의인 '초감제'에서 무당에 의해 구술되던 창세이야기



(1) 천지가 개벽하다


태초에 천지는 혼돈 상태였다.

하늘과 땅이 구별이 없이 서로 맞붙고, 암흑과 혼합으로 싸여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이 혼돈 천지에 개벽의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갑자(甲子)년 갑자월 갑자시에 하늘의 머리가 자방(子方)으로 열리고, 을축(乙丑)년 을축월 을축시에 땅의 머리가 축방(丑方)으로 열려 하늘과 땅 사이에 금이 생겨 갔다. 금은 점점 벌어져 땅에는 산이 솟아오르고 물이 흘러내리며, 하늘과의 경계가 분명해져 갔다.

이 때, 하늘에는 청이슬이 내리고 땅에는 흑이슬이 솟아나 서로 합수되어 음양상통으로 만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먼저 별이 생겨났는데 동서남북과 중앙에 각각 견우성, 직녀성, 노인성, 북두칠성, 삼태성 등이 생겼다.

그러나, 아직 암흑은 계속되었고, 동서남북 중앙에 각각 청백적흑 황 구름이 오락가락하는데 천황닭(天王鷄)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우니 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 때, 하늘의 옥황상제 천지왕이 해도 둘, 달도 둘을 내보내어 천지는 활짝 개벽되었다.


(2) 천지왕과 총맹부인이 천정배필을 맺다.


그러나, 천지의 혼돈이 아직 다 바로잡힌 것은 아니었다. 하늘에는 해와 달이 둘씩 있었으므로 낮에는 인간이 더워서 죽고, 밤에는 추워서 죽게 마련이었다.

또 이때에는 모든 새, 짐승, 초목들이 말을 하고, 귀신과 인간의 구별도 없어서 사람을 부르면 귀신이 대답하고 귀신을 부르면 사람이 대답하는, 매우 혼란스러운 판국이었다.

이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는 일이 천지왕에게는 큰 걱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길한 꿈을 꾸었다.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 하나씩을 삼켜버리는 꿈이었다. 이야말로 세상 질서를 바로잡을 귀동자를 얻을 꿈이었다.

그래서 천지왕은 곧 지상의 총맹부인과 천정배필을 맺고자 지상으로 내려왔다. 총맹부인은 매우 가난했으므로, 모처럼 귀빈을 맞았으나 저녁 한 끼 대접할 쌀이 없었다. 생각 끝에 부인은 수명장자에게 가서 쌀을 꾸어 저녁을 짓기로 하였다. 수명장자는 근처에 사는 부자인데 마음씨가 고약했다. 쌀 한 되를 꾸어 주는데 흰 모래를 섞어서 한 되를 채워주었다. 총맹부인은 쌀을 열 번이나 깨끗이 씻어서 저녁밥을 짓고 첫 밥상을 차려와 천지왕과 마주 앉았다.

천지왕은 기쁜 마음으로 첫술을 드는데 당장 돌을 씹었다.

“어찌된 일입니까?”

하고 물으니 총맹부인은 수명장자가 쌀을 꾸어주며 모래를 섞은 사연을 말하였다. 괘씸하다고 생각한 천지왕은 수명장자의 됨됨이를 낱낱이 캐물었다.

수명장자는 가난한 사람이 쌀을 꾸러오면 흰 모래를 섞어주고, 좁쌀을 꾸러가면 검은 모래를 섞어주되 작은 말에 담아주고, 큰 말로 되어 받아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그 딸들은 가난한 사람에게 일을 시키고 점심을 먹이면 고린 간장을 먹이고, 자기네만 좋은 간장을 먹으며 부자가 되었다. 아들들은 마소에 물을 먹여오라 하면 말발굽에 오줌을 누어서 물통에 들어섰던 것처럼 보이게 하고 마소에게까지 물을 굶겼다는 것이다.


천지왕은 화를 참지 못하고 당장 벼락장군과 우뢰장군, 화덕진군(化德眞君) 들을 보내어 수명장자의 집을 불태워 버렸다. 불 탄 자리에 사람이 죽어 있으니 그 원혼을 위로하는 굿을 했고, 화재가 났던 자리에는 화덕진군을 보내어 불찍굿을 했는데 그로부터 불찍사자(화덕진군의 사자) 는 불찍굿에서 얻어먹는 법이 마련되었다.

 또 고약한 딸들은 꺾어진 숫가락을 하나 엉덩이에 꽂아서 팥벌레로 환생시키고 아들들은 마소에게 물을 굶겼으니 솔개로 환생하여 비온 뒤에 꼬부라진 주둥이로 날개에 묻은 물을 핥아먹도록 하였다. 그런 후에 천지왕은 합궁일을 받아서 총맹부인과 천정배필을 맺고 달콤한 며칠을 보내고 하늘로 올라갔다.


(3) 대별왕, 소별왕 하늘에 오르다.


천지왕이 하늘나라로 올라가면서 총맹부인에게 “아들 형제를 두었으니, 솟아나거든 큰아들은 대별왕, 작은아들은 소별왕으로 이름 지어라”라고 했다. 총맹부인은 천지왕을 붙들고 무엇이든 증거물을 하나 주고 가라 부탁했다. 천지왕은 박씨를 두개 주며, “아들이 나를 찾거든 정월 첫 돝날(亥日)에 박씨를 심으면 알 도리가 있으리라.”고 했다. 과연 총맹부인은 쌍둥이 형제를 낳았다. 이들 형제가 자라 서당에 다니면서 글공부, 활쏘기를 하는데 늘 벗들에게 "아비 없는 호로자식”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형제가 아버지가 누구냐고 따져 물으니, 총맹부인은 사실을 다 일러주었다. 형제는 아버지가 남기고 간 박씨를 받아 정월 첫돝날 정성껏 심었더니 곧 박덩굴이 자라서 하늘로 뻗어 올라갔고 아버지가 이 줄기를 타고 올라오라는 것임을 알아챘다. 형제가 박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보니 박줄기는 아버지 용상 왼쪽 뿔에 감겨 있었고 아버지는 안계셨다. 형제는 이 용상이 바로 내 차지라고 그 위에 걸터앉아 기세를 올렸다.

"이 용상아, 저 용상아, 임자 모르는 용상이로구나.”

하며 용상을 흔들었더니 그만 용상의 왼쪽 뿔이 부러지며 지상으로 떨러지고 말았다. 그 법으로 우리나라 임금은 왼쪽 뿔이 없는 용상에 안게 되었다. 얼마 후에 천지왕이 와서 아들들을 맞고 크게 기뻐하였다. 이제 세상의 혼잡한 질서를 바로잡을 때가 왔다고 생각한 천지왕은 곧 이승은 형 대별왕이, 저승은 동생 소별왕이 통치하라고 했다.


(4) 이승과 저승을 놓고 내기를 하다.


천지왕이 이승은 형 대별왕이, 저승은 동생 소별왕이 통치하라고 했으나, 누구에게나 욕심이 나는 것은 이승이었다. 소별왕은 이승을 어떻게든 차지하고 싶어 꾀를 내었다.

"우리 수수께끼나 해서 이기는 자가 이승을 차지하고 지는 사람이 저승을 지배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어서 걸랑 그리해라”

형은 곧 수락하고 먼저 수수께끼를 내었다.

"어떤 나무는 주야 평생 잎이 아니지고 어떤 나무는 잎이 지느냐?”

"형님아, 마디가 짤막한 나무는 주야 평생 잎이 아니지고, 속이 빈 나무는 잎이 집니다.”

"동생아, 청대, 갈대는 속이 비어 있어도 잎이 아니진다.”

이 말에 동생이 졌다. 형은 다시 물었다.

“아우야, 어째서 언덕의 풀은 성장이 나쁘고 낮은 쪽의 풀은 무성하게 자라느냐?”

“형님아, 2 ,3, 4월 샛바람에 봄비가 오더니 언덕의 흙이 낮은 쪽으로 내려가니 언덕의 풀은 잘 자라지 않고, 낮은 곳의 풀이 잘 자랍니다.”

“동생아, 그러면 어째서 사람의 머리털은 길고, 발 등의 털은 짧으냐?”


이 말에 이것도 동생이 졌다. 동생은 다시 꾀를 내었다.

“형님아, 꽃이나 심어서 잘 번성하는 꽃의 임자는 이승을 차지하고, 시들어가는 꽃의 임자는 저승을 차지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형은 곧 수락하고 같이 지부왕(地府王)에게 가서 꽃씨를 받고 은동이 놋동이에 각각 꽃씨를 심었다. 형이 심은 꽃은 잘 자라서 번성한 꽃이 되어 가는데, 동생이 심은 꽃은 날마다 이울어 가서 그대로 두면 동생이 질 것이 뻔했다. 동생이 다시 묘책을 내어 제안하였다.


“형님, 누가 잠을 잘 자나 경쟁해봄이 어떻습니까?”

“어서 걸랑 그리해라.”

형은 승낙하여 형제는 곧 잠자기를 시작했다. 동생은 눈을 감고 자는 척하다가 형이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얼른 두 꽃을 바꿔 놓았다.

“형님, 일어나십시오. 점심도 잡수십시오.”

동생이 깨우기에 일어나보니 형의 꽃은 동생 앞에 있고 동생의 꽃은 형 앞에 가서 형이 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승은 동생인 소별왕이. 저승은 형인 대별왕이 다스리게 되었다.


(5) 이승의 혼돈을 바로잡다.


형은 저승을 차지해 가면서 동생에게 말했다.

“아우 소별왕아, 이승법을 차지해 들어서라마는 인간에게는 살인, 역적, 도둑들이 많으리라.”

소별왕이 이승에 내려가 보니 과연 질서가 문란했다. 하늘에는 해와 달이 둘씩 떠서, 백성들이 낮에는 더워 죽어가고 밤에는 추워서 죽어가고 있었다. 초목과 새와 짐승들이 말을 하여 세상은 뒤범벅이고, 남녀간에 제 남편, 제 부인을 놓아두고 간음이 퍼져 있었다.

소별왕은 이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대별왕에게 도움을 청했다. 대별왕은 이승에 내려와서 먼저 천근 활과 천근 살을 마련하여 두 개씩 떠 있는 해와 달 하나씩을 쏘아서 각기 동해와 서해에 던졌다.

그래서 오늘날 하늘에는 해도 한, 달도 하나씩 뜨게 되어 백성들이 살기 좋게 된 것이다. 또 소나무 껍질 가루 닷 말 닷 되를 세상에 뿌리니 모든 새, 짐승, 초목은 혀가 굳어 말을 못하고 사람만이 말을 하게 되었다.

다음에 귀신과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저울을 가지고 하나하나 달아서, 100근이 차는 놈은 인간으로 보내고, 100근이 못되는 놈은 귀신으로 처리했다.

이로써 세상의 질서는 일단 바로 잡혔으나, 대별왕은 더 이상은 수고를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 인간 세상에는 여전히 역적, 살인, 도둑, 간음이 많은 법이고, 저승법은 맑고 공정한 법이다. (현용준의 제주도신화 참조)

80

'제주설화의 연못'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성혈과 혼인지  (0) 2011.06.15
오돌또기  (0) 2011.05.24
사랑의 농신 자청비  (0) 2011.04.25
설문대할망  (0) 2011.04.24
신들의 휴양지, 웰빙의 섬 제주  (0) 2009.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