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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설화의 연못

영등할망

강용준 2011. 6. 2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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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수호신 영등할망


음력 2월 초하루부터 보름간은 영등할망이 들어오는 날이라고 해서, 어촌에서는 농사일과 바다일은 물론 집안일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빨래도 하지 않는다.

 이때에 장을 담그면 구더기가 슬고, 빨래를 해서 밖에 널면 좀 같은 벌레가 생기며, 지붕을 고치면 비가 새고, 농사를 지으면 흉년이 든다고 믿고 있다.

또한 이 기간에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으며,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르게 되면 영등할망을 위해 따로 밥 한 그릇을 떠놔야 탈이 없다고 믿고 있다.

 영등달이라고 부르는 이 달엔 북쪽의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데 이를 영등바람이라고 하고 이는 영등할망이 들어오는 신호라 한다.

영등할망은 제주에 들어오면서 제주 앞바다에 있는 보말, 소라 등 고동류의 알맹이를 전부 까먹고 대신 새로운 해물의 씨를 뿌린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바다에 나가 고동류를 캐어보면 속이 모두 비어 있다.

 영등할망이 씨를 뿌리기 전에는 아무도 바다에 들어가 고기를 잡거나 밭을 경작하지 않고, 영등할망을 위해 마을마다 제를 올리며 축제를 벌인다.

영등할망은 제주시 한림읍 한수리로 들어와서 환영제를 받고 제주시 건입동을 거쳐 조천, 구좌, 성산을 거쳐 15일에 우도에서 송별제를 받아먹고 나간다.

영등할망이 도내를 돌아다니는 동안엔 궂은 날씨가 지속되다가, 영등할망이 우도를 나가게 되면 비로소 평년의 날씨로 돌아오게 된다.

육지에선 경칩이 지나는 3월 초순이지만 이 시절 제주에선 추위가 닥칠 때가 많다.

그러나 영등의 마음도 한결같지 못해서 포근한 날씨를 몰고 오면 이번엔 마음이 편안한 영등이 왔다고 하고, 비가 오면 영등이 우장을 쓰고 왔다고 하고, 궂은 날씨를 가져오면 배고픈 영등이 왔다고 한다.

영등할망이 온 기간에는 바닷가 어촌뿐만 아니라 중산간에서도 제를 지낸다.

영등할망이 이렇게 제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바다를 일터로 먹고사는 어부, 해녀들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농사의 풍년까지도 관장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기 때문인데, 여기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다.


제주도 서쪽에 한림읍 한수리라는 마을이 있다.

옛날 이곳에 사는 어부들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는데 망망대해를 떠돌다 바다에 사는 영등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바다에는 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외눈박이 거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배가 표류하면 영락없이 이들에게 잡혀 먹혔다.

영등도 이들처럼 몸집이 거인이었으나 마음은 어질고 착했다.

커다란 바위 위에서 놀던 영등은 이들을 구하려고 배를 바위 밑 동굴에 숨겨주었다.

잠시 후, 이마에 커다란 눈 하나가 달린 외눈박이들이 들이닥치며 영등에게 따져 물었다.

“아까 풍랑에 표류하여 이곳으로 오던 먹이감들을 봤는데 어디 있느냐?”

영등은 시치미를 떼고 보지 못했노라고 했다.

외눈박이들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진한 영등의 말을 믿고 돌아갔다.

외눈박이들이 돌아간 후 영등은 사람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법을 말해주었다.

“이제 배를 타고 돌아가면서 관음보살, 관음보살 하고 외우며 가라.

그러면 잔잔한 바람이 불어 너희들은 고향으로 인도할 것이다.”

사람들은 영등에게 고맙다고 하고는 관음보살을 외우며 고향 앞바다에 다다랐다.

그러나 고향의 포구를 본 사람들은 그만 반가움에 관음보살 외는 것을 잊어버리고 닻을 내릴 준비만 하였다.

무사 귀환을 준비하던 그때 갑자기 광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배는 도로 바다 한가운데로 밀려나고 사나운 파도에 다시 표류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관음보살 외는 것을 잊어버린 것을 알고 다시 관음보살을 소리쳤으나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었다.

그들이 정신을 잃고 배 위에 쓰러져 있는 동안 배는 다시 외눈박이가 지배하는 영역으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이를 본 영등은 다시 배를 인도하여 자기 바위로 끌고 갔다.

사람들은 잘못을 용서 빌고 한 번만 더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영등은 외눈박이들이 곧 들이닥칠 터인즉 절대로 배에서 내릴 때까지 관음보살 외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는 떠나라고 재촉했다.

그러면서 덧붙여 말했다.

“이제 너희들이 떠나면 다시는 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도 천상으로 올라갈 때가 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바다를 경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바쁜 세시 중 2월 초하루에서 보름 동안은 시간을 내어 인간 세상으로 강림할 것이니 도움이 필요하면 나를 위해서 먹을 것을 마련하고 제를 지내라.”

사람들은 꼭 그리하겠다고 약속하고 영등이 일러준 대로 포구에 도착할 때까지 관음보살을 외며 무사히 귀환했다.

한편, 뒤쫓아온 외눈박이들은 사람들을 내놓으라고 영등을 윽박질렀다.

영등은 모른다고 했으나, 외눈박이들은 개들을 데려와 냄새를 맡게 하여 거짓말하는 영등을 세 토막을 내어 죽여버렸다.

그래서 시체는 파도에 떠밀려 오다가 머리는 우도로, 올라왔다 몸체는 성산으로, 다리는 한수리로 올랐왔다.

사람들은 비로소 영등이 죽은 것을 알고 영등의 말을 전하였다.

그리고 비록 몸은 죽었으나 영혼은 살아 제주 바다를 지키며, 바다의 풍요를 관장하는 신이 되었다고 믿었다.

그 이후로 영등은 할망으로 숭앙받으며 선주나 어부들에겐 항해의 안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해녀들에겐 해물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풍요신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지금도 어촌마을에서는 그녀를 영등할망, 영등대왕, 영등하르방으로 부르며 음력 2월이 되면 영등제를 올리고 있다.

한편 영등제를 지낼 때 그 내력담을 구술하는데 그 원형이 잘 남아 있는 것이 중요 무형문화재 71호로 지정된 제주시 건입동의 칠머리당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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