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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옹달샘

인터넷 시대 문학의 진로

강용준 2009. 9. 19. 08:53

인터넷 시대 문학의 진로


강 용 준(희곡작가, 제주문인협회 회장)


정말 문학의 위기인가?


근래에 ‘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문학 동네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 근거는 책이 안 팔리는 것과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작가, 시인으로 많이 등단함으로써 문학의 질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수긍이 가는 면도 있지만 일면 시대의 흐름을 간과한 푸념에 지나지 않는 논리다.

책이 안 팔리니 위기라는 건 출판업자들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고, 문학인이 많아져서 위기라는 건 엘리트 문학인들을 배출하던 기존 잡지사들이 하는 말이다.


등단제도는 과거 일제시제의 잔재이면서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있는 문화현상이다.

사실 이제 등단은 의미가 없어졌다.

운전면허증을 따듯 문학에 대한 일정한 규칙만 알면 쉽게 등단할 수 있다.

심지어는 재능이 없어도 일정액의 책값만 내면 대필해서 등단시키기는 문예지도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서울 강남부인들 사이에 문학 등단증이 없으면 행세 못한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이건 시장경제 논리를 악용하는 일부 잡지사들의 생존전략과 그 잡지사를 통하여 등단한 문인들의 보은을 가장한 제 식구 늘리기로 문학의 권위에 대한 물 타기 작전의 결과이기도 하다.


문학의 위기는 잡지사들이 만들었지만 정작 등단한 문인들이 공부를 안 하는데서 문학인의 위기가 온다. 

그러나 어찌 보면 걱정할 것 없다.

문학 뿐 아니라 문인도 생존경쟁의 시대에 돌입했고 적자생존의 법칙이 작용할 것이다.

문인들은 제 실력을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치열한 작가의식이 없는 작품은 독자도 없고 금세 잊혀지기 마련이다.

노력하지도 않고 실력도 없는 무늬만 문인인 사람들은 도태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문학의 위기는 문학소녀, 문학청년이 사라져가고, 20대의 젊은 작가들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중고등학생들이 문학 책을 읽지 않으며, 학교 내 문학동호인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데 한국문학의 장래가 걱정된다.

그러나 이도 넓게 생각하면 걱정할 것 없다.

우리나라 문학의 발전은 뛰어난 한두 사람의 문인들에 의하여 성취되지 않았던가?

그리고 젊은 그들은 인터넷 상에서 문학을 읽고 쓴다.


인터넷 시대 문인의 권위


2000년대 우리나라에 문인이 양산된 것은 세계화의 흐름과 인터넷의 영향 때문이다.

과거 엘리트 문인들은 치열하게 문학을 공부하고 자기만의 색깔 있는 작품을 써서 많은 독자를 거느렸다.

그들의 작품은 절대성을 부여받았고 문학평론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홍보하기에 앞장섰고 쓰는 족족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컴퓨터 보급과 인터넷 사용 세계 1위인 나라에서 문학이라고 성역이 될 수는 없었다.

인터넷은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소통한다.

일부 독자들은 익명으로 철옹성 같던 작가의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은 자신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작품들에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다.

인신공격성 댓글을 달아 작가들을 상처 입히기도 했다.

인터넷은 권위주의 거부하면서 문인의 권위마저 무시하게 됐다.

그래서 작가가 별 거냐는 의식이 팽배해지면서 문학이 무력화 됐다.

거대한 성벽이 무너지자 문인이라는 명함을 얻기 위해 너도나도 등단의 길로 나선다.

이런 시류에 편승하여 잡지사들은 앞 다투어 작가지망생들을 찾아 나서고 아직 덜 익은 작품이지만 잡지사의 적자경영을 면하기 위해 한 달에 십 수 명 씩 문인 자격증을 남발했다.

 거기다 어설픈 작품집들을 출판해놓고 작품이 안 팔린다고 문학의 위기 운운하며 난리를 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문학의 외연확대를 위하여


인터넷, 영상 시대에 문학이 위축됐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문학의 저변인구가 확대되면서 오히려 문학의 표현의 장이 더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활자매체 시대에서 영상매체 시대로, 다시 인터넷매체 시대로 변화하면서 종이를 활용한 인쇄매체는 다소 위축됐지만 문학의 활동범위는 더 넓어졌다는 말이다.

음악이나 무용, 미술, 영화 등은 이미 시대의 흐름에 맞춰 드라마나 TV프로그램, 인터넷방송 등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여 발 빠른 대응을 하고 있지만 활자매체에만 매달려 있는 문학만은 적응이 느리다.

영상포엠, 영상드라마, 영상소설, 영상수필 등 얼마든지 개척이 가능하지만 너무 소극적이다.

활자매체에선 시각을 통한 상상의 즐거움을 얻지만 인터넷시대 독자들은 다각적인 감성의 자극을 원한다.


인터넷은 더욱 문인들의 활동공간을 넓혀 놓았다.

인터넷 공간에 들어가 보면 인터넷 소설이 꽤 인기가 있다.

어떤 인터넷소설 사이트는 94만 여명의 회원을 거느리며 인터넷 소설계를 평정하고 있다.

황석영, 공지영, 박범신 등의 작가들이 일찌감치 인터넷을 통한 소설 연재에 뛰어들었고, 그 밖에 젊은 수필가, 시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인기 작가는 등단 과정도 거치지 않은 젊은 작가들이다.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은 이들의 작품은 활자화 되어 서점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인터넷에서 소설에 사진, 그래픽, 애니메이션, 음향, 음악까지 수시로 활용하는 게 하이퍼픽션이고, 만화, 소설, 영화, 연예인의 팬들이 작품 속의 인물이나 현실의 아이돌스타를 주인공으로 하여 기존의 작품들을 패러디하거나 작자 마음대로 재창작해내는 게 팬 픽션(일명 팬픽)이다.

이런 하이퍼픽션, 팬 픽션이 정통소설에 맞서 인터넷 상에서 많은 작가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이게 인터넷 문학의 주류이고, 환타지소설, 무협소설, 전쟁소설 들이 하나의 부류를 이루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작가라면 인터넷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정통소설로 이들과 선의의 경쟁을 할 의무가 등단 문인들에게 있다.

그게 문학의 외연을 넓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인이여 인터넷 속으로 들어가라


작품을 발표하고 독자를 기다리던 시대는 지났다.

인터넷 시대 문인들은 독자를 찾아 나서야 한다.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만들어 작품을 홍보하라.

문학관련 사이트에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고 독자들과 만나야 한다.

 독자들의 평가를 두려워해서는 문인이 될 자격이 없다.

독자는 현명하며 항상 진화한다.

작가는 어떤 비난과 비평도 정연한 논리로 맞서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종이 뒤에 숨어 지내던 시대에 작가는 의식 있는 일부 독자만 상대하면 됐지만, 인터넷 시대에는 익명의 독자가 던지는 비수가 작가에 꽂히는 형국이 실시간 생중계되고 수많은 독자들은 흥미롭게 관전한다.

 그들은 자객의 편에서 쩔쩔매는 작가에 낄낄댄다.

문인의 권위에 의지하지 말라.

이미 문인의 권위가 사라진지는 오래다.

 치열한 작가의식으로 철저하게 무장을 하지 않으면 언제든 일지매(?) 같은 자객에 의해 문학적인 암살을 당하게 된다.

이런 소리 없는 살벌한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자 만이 진정한 문인이다.


그래서 실력으로 무장한 문인들만이 오래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이것이 문인이 양산되는 시대에 문인의 위기가 도래하리라는 근거다.

기존 문학인이나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은 이런 시대의 흐름에 대비하여 내공을 쌓아야 한다.

무엇을 위해 쓰는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구도하는 치열한 작가의식으로 자기 작품과 승부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나 혼자만의 문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제주문학 도약의 기회


인터넷 시대에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인기검색어가 되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애니메이션, 인터넷 게임, 영화 등을 만드는 기본적인 이야기 줄거리가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것은 문학인의 몫이다.

이런 점에서 제주 문인들은 특혜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제주의 도처에 깔린 독특한 문학 소재 - 신화, 전설, 민담, 민요, 본풀이, 바다, 해녀, 수난의 역사, 문화유산 등 지천으로 널린 게 문학 소재가 아닌가.

이러한 문학적인 환경에서 듣고 보고 느끼며 자랐기에 제주에는 유독 시인, 작가가 많다.

무엇을 쓸 것인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제주의 색채를 드러낼 수 있는 작품, 제주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야 한다.

아울러 제주의 독특한 문화를 담아내기 위해 제주어를 활용하면 금상첨화다.

이것이 제주문학이 외지문학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며, 또한 제주문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인터넷시대 제주문인들에게 문학은 위기가 아니라 제주문학의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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