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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희곡 열매 맛보기

무이파

강용준 2013. 3. 7. 14:54

 

 

무이파

강 용 준

 

등장인물

김동찬 : 원조국수집 대표.

전상식 : 전통국수집 대표.

고산댁 : 편의점, 민박집

박소장 : 파출소장

여인 : 민박객.

관광객들

 

무대

무대 중앙 뒤편에 나그네 편의점, 그 앞은 파라솔을 중심으로 둥근 탁자 서너 개.

왼쪽으로 바닷가로 통하는 길, 오른 쪽은 마을로 가는 길.

편의점 뒤에는 민박집이 있고 오른 쪽으로 화장실 가는 통로가 나 있다.

 

편의점 파라솔 아래 박 소장이 앉아있고 고산댁이 캔 맥주와 안주를 가져다 놓는다.

관광객을 태운 카트가 무대를 가로 질러 지나간다.

거리에서 호객하는 김동찬과 전상식.

 

김동찬 : 자 국수를 먹으면 카트로 관광시켜 드립니다.

전상식 : 땀 흘리며 걷지 마시고 카트 타고 편안히 구경하세요. 전통국수집입니다.

김동찬 : 기똥찬원조국수. 티브이에 나온 집입니다. 맛이 기똥찹니다.

전상식 : 전통국수, 전국맛자랑에 소개 된 집입니다. 맛이 죽여줍니다.

김동찬 : 야, 따라하지 말고 저리 가서 영업해.

전상식 : 여기 세냈냐? 선착장 길목인데 같이 먹고 살아야지.

김동찬 : (왼쪽에서 등장하는 관광객을 보자 달려가며) 금강산도 식후경.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모시고 간다)

 

이때 여인, 강아지를 안고 캐리어를 끌고 들어온다.

 

여 인 : 여기 민박집 있어요?

전상식 : 물론 있지요. 바로 오셨습니다. 여기 손님 받아.

고산댁 : 에그 깜빡 잠든 사이에 배 들어왔네?

전상식 : 잠은 여기서 주무시고 식사는 전통국수에서 하세요.

고산댁 : (캐리어를 받아들고)이리 오세요.

김동찬 : (들어오며) 거기 잠깐. 왜 우리 손님 가로채? (눈 찡긋하며) 전화 예약하셨죠?

여 인 : 아뇨?

김동찬 : 우리 집으로 가세요. 냉장고, 에어컨, TV 다 있고 깔끔하고 시원합니다.

고산댁 : 이거 왜 이래요? 아니라잖아요?

김동찬 어허. 선택의 기회는 드려야지. 자 일단 우리 집에 가보시고 결정하세요.

여 인 : 피곤해요. 그냥 여기 할래요.

고산댁 : 들었죠?

전상식 : 그놈의 욕심은?

고산댁 : 우리 집도 있을 건 다 있어요. 부식거리도 파니까 식사도 직접 해먹을 수 있어요. 어서 들어가세요.

여 인 : 나비야, 배고프지? 조금만 참어. 맛있는 거 줄께.

고산댁 : 아침 먹다 남은 밥 있는데 말아 줄까?

여 인 : 우리 나빈 계란에 우유, 치즈, 쇠고기만 먹어요.

고산댁 : 그려. 계란과 우유도 있어. (여인을 데리고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재채기 한다)

김동찬 : 고놈의 강아지 토실한 게 잘 먹였구나.

박소장 : (여인을 붙들고) 잠깐만. 어디서 오셨소?

여 인 : (멀뚱하게 쳐다보는데)....?

고산댁 : (다시 재채기하며) 파출소장님이세요.

박소장 : 일부러 사복 근무하고 있어요. 경찰이라면 괜히 거리감을 두니까요.

여 인 : 왜요? 제가 범죄자처럼 보여요?

박소장 : 아니요. 이 섬에 출입하는 사람들 파악하는 게 우리 의무거든요.

여 인 : 전라도 광주요. 민증도 필요해요?

박소장 : 아 됐습니다. 태풍 올라오니까 낼부터 너울이 심해질 텐데?

여 인 : 며칠 묵을 거예요.

박소장 : 어여쁜 분이 혼자 여길 오실 때는 꼭 사연이 있거든요?

여 인 : 저 피곤하니까요, 관심 끄세요.

고산댁 : 어서 들어갑시다. (코를 막고 데리고 들어간다)

박소장 : 직감이 틀린 적 없거든. 저 여인네 동태 주의해서 살펴. 특히 등대 근처에 가거든 즉시 파출소로 알리고. (캔 맥주를 마신다)

전상식 : 예.

 

다시 신혼부부 등장한다.

잽싸게 달려가는 김동찬.

 

김동찬 : 신혼부부시군요. 축하드립니다. 고기국수 드시고 관광하시죠? 국수 드시면 카트가 공짭니다.

신혼남 : 우리 신분 채식주의자예요.

김동찬 : 해물국수도 있습니다.

신혼여 : 죄송해요. 전 밀가루 음식 못 먹습니다. (나간다)

전상식 : 이봐, 양심이 있어야지. 아까 한 건 했으면 민주적으로 양보해야지.

김동찬 : 민주 좋아하네. 우린 카트가 네 대야. 자본주의 기본이 자유경쟁이라며? 능력 있으면 열 대라도 부리는 거라구. 억울하면 카트를 늘리던가.

전상식 : 지금 날 놀려? 카트를 더 이상 늘리지 못하도록 만든 게 누군데? 누굴 멍청이로 아나?

김동찬 : 그거 위에서 정한 거야. 난 아무 상관없다고.

전상식 : 위로 가서 압력 넣었다는 거 다 알아. 횡포 그만 부려.

김동찬 : 뭐? 횡포?

전상식 : 아니면 이장이라구 위세 떠는 거야?

김동찬 : 위세? 그려 정 아니꼬우면 이장을 해 보던가. 어때 다음 선거에 한 번 맞짱 뜰까?

전상식 : 왕년에 이장 안 해 본 사람 있나? 그놈의 이장 백년 해 먹을 것도 아니고 적당히 하란 말여.

김동찬 : 이거 왜 이래.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넌 더 했어. 임마.

전상식 : 상식적인 선에서 했는데 내가 뭘 어쨌다구?

김동찬 : 임마, 도에서 학자금 신청하는 거 알리지도 않고 혼자 받아 처먹었잖아?

전상식 : 입 있다고 주절대지 말고 똑똑히 알고서 말해. 학자금 신청은 이장 자녀만 대상이야.

김동찬 : 그럼 선거 때 양다리 걸쳐 양쪽에서 배달사고 일으킨 것도 아냐?

전상식 : 증거 있어?

박소장 : (편의점 파라솔에서 듣다가 끼어들며) 거 주먹다짐해야 할 일 말싸움만 하고 있네. 이리 와서 맥주나 한 잔 씩 합시다.

김동찬 : 소장님. 대한민국이 법치국가 맞습니까? 이런 놈 안 잡아넣고 뭐하시는 거예요?

전상식 : 소장님, 이게 뭡니까? 힘없고 빽 없는 놈은 죽으란 말입니까? 질서를 제대로 잡아 주세요.

박소장 : 지금 내가 놀고 있는 거로 보이세요?

전상식 : 카트를 쭉 세워놓고 차례대로 태우면 되잖아요?

김동찬 : 무슨 소리야? 미리 예약하고 오는 손님들은 어쩌라고?

전상식 : 예약은 무슨? 니가 컴퓨터가 있어. 인터넷을 할 줄 알아?

김동찬 : 이거 왜 이래? 난 못해도 우리 아들이 한다 왜? 너 브로끄가 뭔지 알어?

전상식 : 담 쌓는 브로끄 말이여? 그거 모른 사람 어딨어?

김동찬 : 그거 말고 컴쀼따에 기똥찬 원조국수 치면 내가 나온다 임마.

전상식 : 아 블로그? (웃는다) 크크크.

김동찬 : 브로끄나 블로그나. 여하튼 차례대로는 안 돼. 우리 아들 보내 주는 손님이 얼마나 많은데?

전상식 : 여하간 무슨 수를 써 주셔야지 이 대로는 안 됩니다.

박소장 : 그 놈의 카트는 누가 도입해서 이 난리요? 걸어서 30분도 안 되는 섬에 카트가 90대라니. 이러다 사고 나면 누가 독박 쓰는지 알지?

김동찬 : 알죠. 그래서 사고 안 나게 조심조심 운전 하고 있잖아요?

박소장 : 다 없애라고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 온 게 언젠데? 그래도 그간의 정리를 생각해서 미루고 있지만 당신들 이렇게 다투면 당장 원칙대로 할 거야?

김동찬 : 박 소장님.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을. 이 자식이 자꾸 성질 건들잖아요. 한 주먹도 안 되는 놈이.

전상식 : 한 주먹? 그래 쳐 봐. 아직도 양아치 근성 남았냐?

김동찬 : 아이구 옛날 같았으면 그냥. 참아야지.

전상식 : 왜 참아? 차라리 날 치고 제발 이곳 떠나줘.

박소장 : 이거 왜들 이래?

전상식 : 차라리 없애 주십시오. 그 편이 낫겠습니다.

김동찬 : 아니 이 자식 정신 나갔나?

박소장 : 그럼 당장 도로에 말뚝 박고 시행하겠소.

김동찬 : 어허 안 되죠. 이건 불공정 경쟁입니다.

박소장 : 그게 왜 불공정 경쟁이요?

김동찬 : 카트 때문에 다리 불편한 노인네들이 이 섬을 찾는데, 그게 없다면 누가 국수 먹으러 여길 오겠어요.

전상식 : 하이고 어디서 들은 풍월은 있어 가지고. 니 아들이 가르쳐 주던?

박소장 : 카트 운행이 불법인 건 알지?

김동찬 : 아니 내 돈 주고 내가 사서 굴리는데 뭐가 문젭니까?

박소장 : 이 섬이 원조국수 개인정원이요? 카트는 차도를 통행할 수 없어.

김동찬 : 거 젠장. 불법이라고 누가 애기라도 해 줬어야지.

전상식 : 왜 날 째려봐.

김동찬 : 카트를 맨 먼저 가져 온 사람이 누군데? 그것도 이장 하면서 각종 특혜를 받아서 말야.

전상식 : 특혜 받은 거 없어. 친척 아는 분이 골프장 카트 바꾼다고 해서, 구입해 온 거 뿐이야. 헌데 빚 내 가며 새 것으로 네 대씩 구입해 올 때부터 알아 봤지. 무슨 떼돈 

           벌겠다고?

김동찬 : 박 소장님, 카트 없애겠다는 거 누구 진정 들어 간 거 아니요?

박소장 : 모르죠. 난 상부의 지시대로 할 뿐이니 미리 대비들 하시오.

김동찬 : 누가 찔러 넣은 게 틀림없어.

전상식 : 왜 날 봐? 난 누구처럼 그런 야비한 짓 안 해.

김동찬 : 내가 야비하다고?

전상식 : 너라고 말 안했어.

김동찬 : 사돈이 밭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내 잘 되는 꼴 그냥 볼 수 없다 이거지. 좋아. 어떤 놈 짓인지 배 타고 나가면 다 알 수 있어. 그 비열한 놈을 꼭 밝혀내 이 섬에서

           쫓아내고야 말겠어.

전상식 : 맘대로 해. (나간다)

김동찬 : 박 소장님, 내 할 말도 있고 이따 저녁에 소주 한 잔 합시다.

박소장 : 뭐 좋은 안주감이라도 있어?

김동찬 : 드시고 싶은 거 말만 하세요. 냉장고에 안주 만땅 입니다.

 

이때 카트가 떨어져 부딪히는 소리.

 

박소장 : (벌떡 일어서며) 아니 이게 무슨 소리여?

전상식 : (들어오며) 큰일 났습니다. 카트가 바닷가로...

김동찬 : (밖을 바라보다) 저게 뭐야? 아이고, 우리 카트네.

박소장 : 아이고 내 목 날아가게 생겼다.

 

일동 달려간다.

나비를 부르며 나오는 여인.

 

여 인 : 나비야, 나비야.

고산댁 : 아무리 찾아도 집안엔 없어요.

여 인 : 그러니까 잘 봐달라고 했잖아요? 화장실 가는 사이를 못 봐줘요?

고산댁 : 아 그게 옆에서 잘 놀더니만 어느새... 강아지가 가면 섬에서 어딜 가겠어요? 곧 돌아 올 테니 걱정 말고 식사부터 하세요.

여 인 : 지금 식사가 문제에요? 난 나비 없으면 못 살아요. 살아도 못 살아요.

고산댁 : 그 강아지 비싼 거예요?

여 인 : 가격이 문제 아니라 반려견이란 말이에요.

고산댁 : 반려견?

여 인 : 평생을 함께 할 내 사랑이라고요.

고산댁 : 사랑? 그럼 남편은...?

여 인 : 남편, 자식보다 더 소중한 내 새끼에요. 억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내 보물이란 말이에요. 어서 찾아내요. 아이고 나비야.

고산댁 : 예. (나가며) 이놈의 개새끼가 사람 속을 썩이네. 나비야.

여 인 : (반대쪽으로 나가며) 나비야.

 

암전 되었다가 밝아지면

박 소장 일행이 들어온다.

 

박소장 : (들어오며) 자 이제 더 이상 할 말들 없겠지요. 이 시간 이후 카트는 통행금지요.

김동찬 : 박 소장님. 이거 너무 억울합니다. 우리 잘못이 아니라구요.

박소장 : 억울한 건 나요. 이제 상부에서 알게 되면 직무유기에 명령 불복종 죄로 옷을 벗어야 할 거야. 당신 목격자니까 진술 잘 하시오.

전상식 : 운전 미숙한 사람한테 교육도 없이 카트를 맡긴 게 잘못이죠. 우린 아들이 직접 운전하니 그런 문제는 없습니다.

김동찬 : 이 자식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나? 갑자기 강아지가 달려드는 바람에 피하다 사고 났다고 피해자가 진술 했잖습니까?

고산댁 : (들어와 듣다가) 그 강아지 우리 집 손님 건데 어디로 갔어요?

김동찬 : 뭐야? 그럼 손해 배상 청구는 그 아줌마한테 해야겠군? 노상 방견에 의한 사고는 당연히 주인 책임 맞죠?

박소장 : 그건 그렇지만 증거 있소? 개라면 어느 갠지? 목격자도 없고.

김동찬 : 이 자식이 봤다지 않아요?

전상식 : 아니 난 몰라.

김동찬 : 그놈의 개새끼 잡히기만 해봐라.

고산댁 : 내가 듣기론 신혼부부가 카트 속에서 껴안고 뽀뽀하다가 그리 되었다던데요? 언덕 위에서 브레이크 밟는다는 것이 거 뭐시기를 밟아서

박소장 : 엑셀레타를 밟았다? 거 말이 되네.

김동찬 : 그럼 운전미숙으로 인한 자기 과실이네. 우린 책임 없구만?

박소장 : 거 애초에 브레이크 고장 난 거 아니야?

김동찬 : 그런 소리 마세요? 매일 아침 제가 직접 정비합니다.

전상식 : 자네 밤새 낚시하고 오늘 새벽까지 여기서 마셨으면서 어느 시간에 정비해?

김동찬 : 누가 술 마셨다고 그래?

전상식 : 고산댁 같이 마셨죠?

고산댁 : 난 몰라요. (들어가며) 하이고 하필 애물단지 데리고 왔네.

김동찬 : 야, 왜 나한테 독박 씌우려는 거야?

전상식 : 난 사실을 얘기하는 거야?

박소장 : 조사하면 다 나와. 사고의 원인은 카트니까 책임을 면할 순 없지.

전상식 : 마지막 배가 있기 다행이지. 환자 수송을 못했으면 큰 일 날 뻔 했어요.

김동찬 : 배가 왜 없어? 태풍이 불어도 우리 배는 까딱없어. 넌 좀 빠져 줘.

박소장 : 같이 갔어야 했는데... 왜 막았어?

김동찬 : 아휴, 걱정도 팔자시네. 소장님 가시면 괜히 일만 커져요. 팔 탈골되고 이마 조금 찢어진 것뿐인데, 우리 아들한데 연락했으니 알아서 잘 처리 할 겁니다.

박소장 : 하지만 이 시간부터 카트 운행은 당장 중지야.

김동찬 : 예? 다신 사고 안 나게 주의한다니까요?

박소장 : 안 돼. 내 모가지 달아나는 거 보고 싶어? 당장 도로에 말뚝 박게 하겠어. (나가려 한다)

김동찬 : 대원들 입단속 시키구요. 오늘 저녁 잊지 마시고 오세요.

박소장 : 알았어. (나간다)

전상식 : 난 어떻게 할 거야?

김동찬 : 뭘 어떻게 해? 굶든 처먹든 내가 알 바 뭐야?

전상식 : 나도 목격잔데?

 

갑자기 암전.

밝아지면 밤.

파라솔 밑에서 울고 있는 여인.

달래고 있는 고산댁.

 

고산댁 : 이러고 여기서 밤 세울 참이요? 밤엔 이슬도 내리고 추워요. 찾아볼 만큼 찾아 봤잖아요? 날이 밝으면 저 숲속을 한 번 뒤져 봅시다. 사람들 두려워서 거길 숨어들

           었을지 모르잖아요?

여 인 : 우리 나비 추운데 두고 어찌 잠이 오겠어요? 당장 가 봐요.

고산댁 : 거긴 길이 없어서 한낮에도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에요. 낼 동네 사람들 동원해서 뒤져 보도록 할 테니 어서 그만 들어가요.

여 인 : 정말 우리 나비가 사고 낸 거 맞아요?

고산댁 : 피해자가 그랬대요.

여 인 : 우리 나비 다친 거 아닐까요? 그래서 그 가여운 것을 어디다 버린 건 아닌지? 아니면 누가 발로 걷어차서 놀랐을지 몰라요. 그 아까운 것한테 감히 폭력이라니? 짐

         승 같은 놈들 때문 내 손 밖을 벗어난 적 없는데. 어디 가서 고생이냐 나비야.

고산댁 : 강아지가 영리하면 제 집을 찾아온다잖아요. 자 들어가서 밥 먹고 기다려 봅시다.

여 인 : 안 돌아오면 멍청한 거예요? 그럴 수도 있잖아요. 분수도 모르고 세상 물정 모르게 컸으니까? 모를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다고 멍청이란 말이에요?

고산댁 : 아이고 어지럽다. 취소. 내가 한 말 취솝니다.

여 인 : 사람이 두려워 꼭꼭 숨어 있을 거예요. 어쩌면 인간세계에 실망해서 안 돌아 올지도 몰라요. 우리 나빈 똑똑하거든요.

고산댁 :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러니 나비의 판단을 믿읍시다.

여 인 : 우리 나비가 안 돌아와도 좋다는 거예요?

고산댁 : 예? 그런 뜻이 아니라. 기다려 보자는 거지요? 뭔 말을 못하겠네.

여 인 : 우리 나비가 어떤 애인데?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난 못살아요.

고산댁 : 이 섬 안에 있다면 꼭 찾을 수 있어요.

여 인 : 있다면? 아 그 생각을 왜 못 했을까? 누가 나빌 훔쳐서 섬을 빠져 나갈 수도 있겠네요?

고산댁 :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고.

여 인 : 이걸 어떻게 하죠? 그 배에 탄 사람들 확인해 볼 수 없을까요?

고산댁 : 그거야. 파출소장한테 부탁하면 알 수도 있을 거예요. 몇 사람 되지도 않고 강아지가 워낙 특이하게 단장해서 첫눈에 알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여 인 : 아줌마. 우리 나비한테 무슨 불만 있어요? 특이하다니요?

고산댁 : 하이고 이놈의 주둥이. 헤헤헤 난 동정하는 뜻으로...?

여 인 : 동정이 아니라 당신은 처음부터 우리 나빌 귀찮아하는 눈치였어요.

고산댁: 아이고 손님 비위 안 맞추면 이 장사 못해 먹어요. 헌데 내가 왜?

여 인 : 비싼 것만 먹는다고 미워했잖아요? 개 팔자가 상팔자라고?

고산댁: 그거야 부러워서 그런 거지?

여 인 : 혹시 샘이 나서 어디 숨겨 둔 거 아니에요?

고산댁: 하이고 난 개띠도 싫어해요. 우리 서방도 개띠였는데 개처럼 일만하다가 개처럼 차에 치여 세상 이별한 지 오래요.

여 인 : 싫다고 내다 버린 건 아니구요?

고산댁: 이거 참. 이봐요. 난 개털에 알레르기 있는 사람이에요. 가까이만 가도 재채기하는 거 못 봤어요? 그런데 내가 뭘 어쩌겠어요?

여 인 : 개장수한테 넘겼는지 어찌 알아요?

고산댁: 내가 개장수 각시처럼 보여요? 의심하면 한도 끝도 없어요. 날 믿어요. 꼭 찾아드릴 테니.

여 인 : 그 말 참 말이죠?

고산댁: 그럼요. 개도 충격 먹었을 거예요. 난생 처음 당하는 일이라. 사람도 그렇잖아요? 세상 살기 싫어지면 가끔 가출해서 방황하잖아요? 그 개 사춘기 아녀요?

여 인 : 뭐라구요? 사람 나이로 따지면 중년도 더 됐는데 그런 망발이 어딨어요?.

고산댁: 나이 먹어도 철 안든 사람 많아요. 사람이나 개나 겉으로만 봐선 몰라요.

여 인 : 의지할 건 우리 나비 밖에 없어요. 정말 인간 세상이 싫어요.

고산댁: 대충 짐작은 해요. 오죽하면 막다른 골목까지 오셨겠어요.

여 인 : 여기서 기다리다 들어갈 테니 제 걱정 말고 가서 쉬세요.

고산댁: 그럼 자리 봐 놓을 테니 일찍 들어와요.

여 인 : (대답대신 주변을 기웃 거린다) 나비야.

고산댁 : (혼자 소리로) 에그 그놈의 성질머리 하고는...

 

고산댁 들어가면 암전.

파도가 심하게 부딪치면서 조명 들어오면 다음날 아침이다.

전상식이 낚시 도구와 강아지 옷을 가지고 들어온다.

고산댁 슈퍼 앞을 청소하고 있다.

 

고산댁 : 매일 아침 부지런도 하시네요. 오늘은 많이 잡았어요?

전상식 : 며칠 째 맹탕이여, 헌데 손님 일어났는가?

고산댁 : 밤새 끙끙 앓다 새벽에야 잠이 든 것 같아요.

전상식 : (강아지 옷을 보이며) 이거 혹시 그 강아지 거 아녀?

고산댁 : (받아들고) 맞네요. 나비 것이 틀림없네요. 이거 어디서 났어요?

전상식 : 저기 등대 절벽 아래 있더구만.

고산댁 : 하이고 그럼. 나비가 절벽 아래로...?

전상식 : 근데 그것이 나무 위에 걸려 있더란 말이야.

여 인 : (나오며) 우리 나비 찾았어요?

고산댁: (옷을 보이며) 이거 보세요. 이게 맞지요?

여 인 : (받으며 운다) 아이고 나비야. 이거 어쩐 일이냐? 우리 나비. 나빈 어딨어요?

고산댁 : 안됐지만 아마도 자살한 모양이에요.

여 인 : 우리 나비가 뭐가 부족해서 자살을 해요?

전상식 : 절벽 아래서 주었어요.

고산댁 : 그럼 밤중에 길을 몰라서 발을 헛디딘 게 틀림없어요.

여 인 : 그런데 어떻게 옷을 벗었지?

고산댁 : 떨어지다 나뭇가지에 걸렸겠죠. 발버둥치다 바닷가에 빠졌을 거예요.

전상식 : 거참 이상하다? 개는 헤엄을 잘 친단 말이야.

여 인 : 그렇죠? 살아 있죠? 거기가 어디에요?

고산댁 : 거 봐요. 살아있을 거라 했죠?

전상식 : 주변 다 살펴봤는데 떠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이 바람에 떠내려갔겠지.

여 인 : 찾아야 해요. 온 바다를 다 뒤져서라도 찾아야 해요.

고산댁 : 자 가 봅시다.

전상식 : 나 막걸리 한 병 먹어.

고산댁 : 주방에 어제 먹던 김치찌개 있어요.

전상식 : 안주 필요 없어.

고산댁 앞장서고 여인 뒤따라간다.

전상식 가게에서 막걸리와 잔을 꺼내들고 나오는데

박 소장 말뚝을 들고 등장한다.

박소장 : 아침부터 무슨 술이야? 자네도 어제 한 잔 했어?

전상식 : 난 이게 아침밥입니다. (술을 마신다)

박소장 : 근데 어떤 놈이 박아 놓은 말뚝 뽑아 놓았을까?

전상식 : 난 몰라요.

박소장 : 이거 공무집행 방해에 공공기물 파손 죄야.

전상식 : 제 이름이 뭡니까? 전상식. 전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이라고요.

박소장 : 어떤 놈인지 잡히면 본 떼를 보여주겠어. 카트 운행할 생각 아예 말어.

전상식 : 예. 잘 하셨어요. 그 말썽 많은 카트 없을 때도 장사했는데. 해장술 한 잔 하세요. 어제 진하게 대접하던 가요?

박소장 : 대접은 젠장. 근데 자네 고양이 고기 먹어봤나?

전상식 : 고양이 고기도 먹어요?

박소장 : 거 신경통에 최고라던데. 내가 신경통이 좀 있거든?

전상식 : 동찬이 놈이 고양이 고길 대접했어요?

박소장 : 그거 참 독특한 게 맛이 좋더군. 헌데 내 몸엔 궁합이 안 맞는지 설사했어.

전상식 : 거 이상하네 그게 어디서 났을까? 아이고 나도 뒤가 급하네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전상식 어거적 거리며 나가고 박 소장 움직이는데

김동찬 카트를 타고 나타난다.

 

박소장 : 어 카트? 기똥찬 거기 스톱.

김동찬 : 왜 그러세요? 형님. 배 도착할 시간 됐는데.

박소장 : 오늘 배 안 뜬다는 거 몰라? (말뚝 내밀며) 이거 자네 짓이지?

김동찬 : 예. 내가 했습니다. 공무집행을 해도 정당한 영업은 방해 말아야죠? 그걸 도로 한가운데 탁 박아버리면 배에서 오는 식재료는 어떻게 퍼 나릅니까?

박소장 : 그런 일이 있으면 파출소로 와서 따져야지 제멋대로 이걸 뽑아버려? 공권력에 저항하는 거야 뭐야?

김동찬 : 아따 형님 너무하시네. 그 까짓 일에 공권력 들먹일 건 뭡니까? 형님과 나 사이에.

박소장 : 자넨 똥오줌 못 가리는 게 문제야. 술 먹을 때야 형님이지만 지금 근무 중이란 말이야.

김동찬 : 알겠습니다. 소장님.

박소장 : 여하튼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니까 알아서 기여.

김동찬 : 소장니~임. 오늘 밤엔 소고기 파티 할까요?

박소장 : 필요 없어. 좋다고 먹었다가 밤새 변소엘 들락 거렸다구.

김동찬 : 에그 그러게 그 고기에 맥주는 안 좋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여인과 고산댁 들어온다.

 

여 인 : 나비야, 어디 있니? 나비야.

고산댁: 저기 박 소장님 계시네. 우선 신고부터 해요.

여 인 : 소장님 우리 나비 좀 찾아 주세요.

박소장 : 나비? 해군?

고산댁 : 잃어버린 강아지 말입니다.

김동찬 : 그 사고 낸 개새끼?

여 인 : 개새끼라니요? 말조심 하세요.

김동찬 : 개새끼를 개새끼라 하지 그럼 개 삼촌이라고 해요?

고산댁 : 바다에 빠진 거 같아요.

여 인 : 수색대 동원시켜 찾아줘요.

박소장 : 그 깐 개 한 마리에?

여 인 : 당신에겐 그 깐 개일 테지만 제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이에요. 헬리콥터 동원시켜서라도 찾아야 해요. 숨 떨어지기 전에 어서 서둘러 줘요.

김동찬 : 점입가경이네. 아예 군함을 동원해 달래지?

여 인 : 비용은 얼마든지 댈 테니까 경비 함정 있잖아요?

박소장 : 이봐요. 정신 차려요. 헬리콥터가 그런데 쓰라고 있는 줄 아세요? 해경 경비정은 놀고 있는 줄 아느냐고?

고산댁 : 어쩜 죽었을지 몰라요. 온 섬을 다 뒤져 봐도 없잖아요.

여 인 : 죽긴 왜 죽어요? 죽을 이유가 뭐에요?

김동찬 : 이유 있지. 개가 하도 영악스러워서 나이도 들고 지 갈 때를 안 거지. 그래 주인에게 피해 안 끼치려고 몰래 (목을 자르는 흉내) 끽 한 거야.

여 인 : 영악스럽긴 하지만 우리 나빈 절대 그럴 애가 아니에요. 어서 다시 찾아봐요.

박소장 : 나 참 평생에 개가 자살했다는 소린 처음 듣는 구만. 거 소용없어요. 무이파 태풍 온다고 못 들었어요? 저기 파도 봐요. 바다에 빠졌대도 구하기 힘들어.

고산댁 : 에그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밥 올려놓고 올 테니 잠깐 기다리세요. (들어간다)

여 인 : 정말 너무들 하네. 정말 이놈의 세상 싫다. (뛰어 나간다)

김동찬 : 미친 년. 요즘 굶어죽는 아이들 얼마나 많은데. 그 정성 사람한테나 적선하지. 난 강아지 끼고 사는 사람 이해가 안 돼.

전상식 : (들어온다) 동찬이. 네 놈 짓이지?

김동찬 : 아닌 밤에 홍두깨라더니 무슨 소리야?

전상식 : (비닐봉지에 싼 뼈다귀를 꺼내며) 이거 개뼈다귀 맞잖아? 너희 집 쓰레기통에 있던데?

김동찬 : 이거 왜 이래? 그거 고양이 뼈라구.

전상식 : 조사하면 금방 들통 날 텐데 언제까지 거짓말 할 거야?

박소장 : 뭐야 그럼 어제 먹은 게 개고기였어?

고산댁 : (나와서 듣다가) 이거 큰 일 나게 생겼네. (뛰어 나간다)

김동찬 : 아닙니다. 고양이 고기 맞아요. 야옹. 야옹. 야아옹.

전상식 : 고양이 고기가 어디서 나? 자 이거 국과수에 넘겨 조사하세요.

박소장 : (넘겨받으며) 헌데 그 개가 그 개 아니지?

김동찬 : 그 개 맞아요. 홧김에 때려잡았어요. 방견인데 뭐가 문제에요? 이거 없는 일로 합시다.

박소장 : 하 이거 참. 이 사실을 그 아줌마 알면 어휴. 말년에 몸조심하라더니. 야 임마. 왜 날 끌어들여? 전통국수 어떻게 할 거야? 모르겠다. 너희 둘이 알아서 해.

           (나간다)

김동찬 : (사이) 상식아 미안하다. 한 번만 눈 감아 주라.

전상식 : 이 병신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옷을 나무에 걸어둔다고 강아지가 절벽에서 뛰어내렸다고 믿을 사람 어딨어?

김동찬 : 솔직히 상식이 네가 미웠다. 그렇게 공부 잘했으면 그냥 도시에 살지 뭐 하러 섬 구석에는 기어 들어와?

전상식 : 이 꼴로 오고 싶어 왔겠냐? 이것저것 하는 것 마다 깡통 차고 그래도 고향에 있으면 굶어 죽기야 하겠냐 싶었지. 너 건달 노릇한다고 들었을 때 사람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돌아올 생각했냐? 용타.

김동찬 : 양아치 짓 하다 사랑하는 여자 죽여 먹고 마음잡았다. 고향을 위해 헌신하려 했는데 널 보니 화가 치밀더라. 우리의 우상이었는데. 공부 잘 해 시내로 전학가고 서

            울 대학까지 나온 놈이 뭐 하러 섬에는 오냔 말이다. 그래서 고작 이장이냐?

전상식 : 미안하다. 너희들이 많이 기대했구나?

김동찬 : 카트 못 다니게 되니 좋냐?

전상식 : 이제 화인 플레이 하자. (손을 내민다)

김동찬 : (악수하며) 좋다. 이제 맛으로 진검 승부하는 거다.

전상식 : 우리 집 손님 많다고 샘 내기 없기다.

김동찬 : 태풍 온대 임마. 가게 날아가지 않게 잘 동여 매.

전상식 : 무이파? 그래 우린 예부터 다름이 없는 하나였지. 우릴 하나로 만든 태풍이군.

박소장 : (다시 들어오며) 큰 일 났어. 일이 크게 벌어졌다고. (전화기를 꺼내 전화하며) 아 여보세요. 여기 파랑돈데 헬기 좀 보내 줘요. 사람이 절벽에서 뛰어내렸소.

           (사이) 뭐라구요? 고장 수리 나갔다고요? 그럼 어떻게 해요. 해경 경비정이라도...? 훈련 중이요? 그럼 죽어가는 사람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요? (전화 끊긴 듯)

           개자식들 알아서 하래.

김동찬 : 아니 그 까짓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전성식 : 네가 사랑을 알어? 사랑이란 그런 거야 임마. 넌 사랑의 진실을 짓밟았다구.

김동찬 : 그랬지. 우리 분이도...

박소장 : 이거 어떻게 하지. 그냥 놔두면 과다 출혈로 죽을 텐데. 나쁜 자식들...

김동찬 :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나간다)

박소장 : 가지 마. 고산댁이 업고 오고 있어. 그나저나 그 여자 죽으면 나도 끝장이야. 기똥찬 새끼 때문에 내 말년 절단 나게 생겼다고. 하필 재수 없는 개를 건드려 가지

            고 ....

전상식 : 걱정 마세요. 개고기는 모른 걸로 할 게요.

박소장 : 상식이 고마워. (고산댁이 들어오는 걸 보고) 어째 혼자 나타난 거여?

고산댁 : 기똥찬이 알아서 한다고 업고 갔어요.

박소장 : 그 놈이 의사야?

전성식 : 도대체 뛰어 내릴 때까지 뭐 했어?

박소장 : 여편네가 입이 싸서 일을 만든 게지?

고산댁 : 그럴 줄 몰랐어요. 그냥 죽었다고만 했어요. 안 그러면 포기 않겠더라구요. 불쌍해요. 소장님도 그렇지. 그 자그만 거 뭐 뜯어먹을 거 있다고 된장 발라요?

박소장 : 이거 왜 이래? 나 개고기 먹는 거 봤어?

고산댁 : 어휴 몸서리 처지네. 그렇게 가는 순간에도 강아지 생각은 끔찍이 하더라고요. 이 옷 넣고 무덤 만들어주고 천도제 올려 달라고 돈 까지 주고선 순식간에 ...

전상식 : 아니 저거 보세요.

고산댁 : 아니 너울이 이렇게 센데 배를 놓았네?

박소장 : 저거 어떤 미친놈이야?

전상식 : 동찬이 배에요.

박소장 : 미쳤어. 아주 끝장내려고 환장들 했어. 어서 돌아와. 이놈아. 저 자식 말 안 듣고 그냥 가네? 야 이놈아. 돌아오란 말이여.

고산댁 : 그 고집 누가 말려요?

전상식 : 돌아오면 어쩔 거예요. 어차피 아줌마가 죽을 텐데. 하늘에 맡길 수밖에.

고산댁 : 무이파도 저 깡다구 못 이길 거예요.

박소장 : 하이고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일행 바다를 응시하는데 파도소리 높아지고 장엄한 음악이 흐르면서 어두워진다.

막.

 

(계절문학 2012년 12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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