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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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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인

강용준 2009. 12. 7. 21:44

창작희곡


간병인

강 용 준


등장인물


유지민 

정수남 : 안내인, 손님, 형사 등

문국성 : 의사, 청소부, 수남 부  등

여자 : 보호자, 간호사, 점쟁이. 식당 주인, 지민 모, 국성 모, 여죄수 등


무대

주 무대는 개인 병실이나 상황에 따라 여러 장소로 바뀐다

병실은 중앙에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가 놓여 있고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제1장


병실이 밝아지면 보호자가 넋두리하며 환자의 몸을 닦아내고 있다.


보호자 : 애고 녀석아, 이렇게 사지 멀쩡한 녀석이 왜 이렇게 누워 있니? 이제 그만 눈을 뜨고 에미 속 좀 풀어 줘. 자 이제 돌아눕자 (환자의 몸을 뒤집으려고)응차. 아이고 무거워. 이거 안 되겠다. (문밖으로) 이봐 간호사. (사이) 간호사 (대답이 없다) 에그, 이놈의 병원은 입원비는 쳐 받아먹으면서 서비스는 엉망이라니까? 안 되겠다. (여자 관객에게) 나 좀 도와줘요. 아니 당신 말고 이왕이면 쭉빵 아가씨로. 알게 뭐여. 우리 아들 깨어나면 며느리가 될지도 모르는데. 자 뒤집어.(관객, 환자의 벗은 몸을 보고 놀란다) 왜 남자 벗은 몸 처음 봐? 창피하면 눈 질끔 감고 뒤집기만 해. (뒤집고 나서) 저 양반 거 보단 낫지? 아니여? 이왕 이렇게 된 거 간병인 해 줄래? 난 사업해야 거든? 우리 집 부자여, 중심가에 빌딩도 두 채여. 다 아들 물려 줄 건데. 할래? (한다면) 자네 이 연극 대사 다 외웠어? (안한다면) 싫어? 그려 굴러 들어온 복 차는 것도 지 팔자지. 자 내려가세요. 수고했어요.


다시 환자의 몸을 닦는데, 문이 열리며 유지민 들어온다.


유지민 : 안녕하세요. 아까 전화 드렸던 유지민이에요.

보호자 : 그래. 어서 와요.

유지민 : (벌거벗은 환자를 보고 놀라며 돌아선다) 어머.

보호자 : 왜 간병인 처음이야?

유지민 : 아니요.

보호자 : 내숭 떨긴. 간병인에게 환자의 몸은 환자의 몸일 뿐이야. 보호 이외 어떤 상상도 금물이야

유지민 : 알겠어요.

보호자 : 매일 이렇게 몸을 닦아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욕창이 생기거든. 혹시 붉은 반점이라도 나타나면 (약병을 들며) 이걸 발라요.

유지민 : 예. 헌데 어쩌다 이렇게 됐어요?

보호자 : (환자복을 입히며)사랑하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내가 한사코 결혼 반대 하니까 둘이서 차를 타고 바다로 뛰어들었어. 여자애는 죽고 얘는 겨우 목숨을 건졌는데 석 달째 이런 꼴이야. 에그

유지민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전 딱 한 달 간만이에요.

보호자 : 왜 힘들어서 그래?

유지민 : 그게 아니라, 제가 할 일이 있어서 그래요.

보호자 : 그래, 알았어. 환자복은 매일 갈아입히고. 아침저녁으로 몸 닦아줘요.

유지민 : 예.

보호자 : 그렇게 깔끔 떨던 얘였는데.(환자에게)경수야, 간병인 새로 왔으니 눈 떠봐. 아주 미인이다.

유지민 : 잘 생기셨네요?

보호자 : 미스여?

유지민 : 약혼자가 있어요.

보호자 : 그래? 그럼 부탁해. 나 일 나가봐야 하니까. 배고프면 냉장고에 먹을 거 많아.

유지민 : 배 안 고파요. 안녕히 가세요.

보호자 : 그래(나간다)


유지민, 재빨리 냉장고를 열어 빵과 음료수를 꺼낸다.

빵 봉지를 뜯어 막 베어 무는데 보호자 들어온다.


유지민 : (넘기지도 밷어 내지도 못하고 멍청이 쳐다본다)

보호자 : 응?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핸드폰을 챙기며) 이걸 놔두고 갔어.

유지민 : (겨우 넘기고) 상 했나 검사 중이에요.

보호자 : 금방 나온 거니까 괜찮아. 뭔 일 있으면 연락하고.(나간다)

유지민 : 예. 에이 첫인상 잡쳤네.(음료수를 먹다가 관객을 쳐다보며) 왜 멀뚱히 쳐다봐요. 난 먹는데 쳐다보는 사람이 제일 불쌍하드라. (빵을 들고 가서)그렇게 먹고 싶어요? 돈 있으면 사 먹어요. 없다구요? 그럼 자(먹던 걸 주려다) 아참, (새것을 주고서) 거지.


의사와 간호사 들어온다. 간호사 환자에게로 가서 혈압과 맥박, 체온계를 본다.


간호사 : 체온, 맥박, 혈압, 모든 게 정상입니다.

의 사 : (눈을 까 보고) 거참 이상하네. (환자에게) 이봐요. 김경수씨 이 좋은 세상 두고 가는 게 억울하지도 않아요? 아들 하나 믿고 사시는 어머니는 어떻게 하라고 혼자 생각만 하세요. 제발 이젠 눈 좀 떠요.

간호사 : (지민에게)새로 온 간병인이세요?

유지민 : 예.

의 사 : (앞으로 나오며) 나 좀 봅시다. 환자의 상태에 대해 들었겠지만 김경수 씨는 자기폐쇄증 환자에요.

유지민 : 자기폐쇄증이 뭐죠?

의 사 : 한마디로 살고 싶은 의지가 없는 거지요. 외부 세계와 소통을 꽉 닫아버린 겁니다. 어쨌든 앞으로 한 달이 고비에요. 더 이상 의지가 없으면 뇌사 상태로 들어갈 겁니다.

유지민 : 영영 깨어나지 못한다는 말인가요?

의 사 :  예. 환자는 다 듣고 있으니까 격려의 말 자주 해줘요. 그러면 혹 깨어날지도 모르니까요. 간병인의 노력이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유지민 : 최선을 다 해 볼게요.

의 사 : 자 다음 방으로 가지.

간호사 : 수고 하세요.(의사와 함께 나간다)


신나는 음악소리 들린다.

유지민의 핸드폰 소리다.


유지민 : 여보세요?

문국성 : (한쪽에 등장하며) 지민이? 유지민 씨 맞죠?

유지민 : 맞는데 누구시죠?

문국성 : 나 누군지 모르겠어?

유지민 : 글쎄요?

문국성 : 이거 섭섭한데? 벌써 목소리마저 잊어버리다니.

유지민 : 혹시 국성 씨?

문국성 : 그래. 여기 일본이야.

유지민 : (놀라며)어머 국성 씨, 맞아 국성 씨, 어머어머 이 일을 어떻게. (말을 잊지 못하고 눈물을 닦는다)

문국성 : 너무 오래 만이군. 지민이 연락하려고 얼마나 노력한지 알아요. 대사관, 도청, 경찰서로 해서 겨우 찾았어. 나 보고 싶지 않았어?

유지민 : (말을 못하고 눈물만 닦는다)

문국성 : 지민이. 유지민?

유지민 : 예. 미안해요.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문국성 : 무척 보고 싶었어. 그렇게 황당한 일 겪고 소식도 없이 가버리면 어떻게 해?

유지민 : 죄송해요. 허지만 어떻게 연락할 수가 있어야죠. 제가 일했던 식당 주소마저 몰랐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다시 일본 가려고 알바... 아니 계획하고 있어요.

문국성 : 내가 비행기 티켓 보낼테니까. 다시 올 수 있지?

유지민 : 아니 괜찮아요. 제가 갈게요.

문국성 : 급해. 사실 부모님께서 일방적으로 혼처를 정하고 날짜까지 잡아놓았어. 지민이가 빨리 오지 않으면 깅제로 혼사를 치러야 되는 상황이야.

유지민 : 갈게요. 제가 가서 해결 될 일이라면 현해탄을 헤엄쳐서라도 갈게요.

문국성 : 그래. 기다릴게. 꼭 와야 해.

유지민 : 국성 씨. 절 아직도 사랑하세요?

문국성 : 지민이 그걸 말이라고 해. 지민이를 다시 만난 후 한 번도 잊어 본 적이 없어. 얼마나 사랑한다구.

유지민 : 그럼 갈게요. 저 작두 타는 연습도 많이 했어요.

문국성 : 고마워. 어머니도 좋아하실 거야. 당장 가서 티켓 예약하고 보낼게.

유지민 : 저도 얼른 뵙고 싶어요. 하지만 비자 발급받고 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요.

문국성 : 기다릴게. 사랑해. 지민이.

유지민 : 저두요.

문국성 : 그럼 안녕. (조명 사라진다)


유지민 눈물을 닦는데, 어느새 정수남이 등장해 있다.


정수남 : 정말 놀고들 있군. 눈꼴 시어 못 봐주겠네. 가긴 어디 간다는 거야. 당신은 갈 수 없어.

유지민 : (놀라며) 아니 당신 누구시죠?

정수남 :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있어야지?

유지민 : 김경수 씨? (병상에 가서 살피고 나서)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정수남 : 난 김경수가 아니요. 잠시 저기 누었던 친구의 몸을 빌린 거지.

유지민 :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에요. 날 놀리려는 거죠? 그럼 저기 있던 환자 어쨌어요?

정수남 : 어허 그렇게 속고만 살아왔나? 똑똑히 봐. 날 모르겠나?

유지민 : 모르겠는데요?

정수남 : 나 정수남이야.

유지민 : 정수남?

정수남 : 그래 당신은 유지민이 아니라 자청비고.

유지민 : 자청비? 희한한 사람 다보겠네.

정수남 : 문국성인 기억하면서 이 정수남일 모른단 말야? 그래 알고 싶지도 않겠지. 니가 죽인 놈이니까?

유지민 : 제가 사람을 죽여요?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정수남 : 시치미 떼지마. 당신이 날 두 번이나 죽였잖아.

유지민 : 이봐요. 당신 누구에요? 남 뒷조사나 하고 다니구. 사람 잘못 보셨다구요.

정수남 : 잘못? 난 못 속여. (지민을 막아서며) 어딜 가?

유지민 : 의사를 부를 거에요.

정수남 : 그래? (비켜서며) 그럼 마음대로 해봐. 대신 당신은 모든 걸 잃게 될 걸. 간병비는 고사하고 일본도 갈 수 없을 걸?

유지민 : 다 들었군요. 왜 일본 못가요?

정수남 : (칼을 꺼내 자신의 목을 겨누며) 난 타살로 죽은 몸이 될테니까.

유지민 : (돌아오며) 여보세요. 왜 이러세요.

정수남 : 그럼 우리 타협하지.

유지민 : 타협?

정수남 : 당신이 계약을 파기 않고 한 달만 나와 함께 지내는 거야. 내가 정수남이란 걸 비밀로 하고, 그런 다음 당신은 어찌해도 좋아.

유지민 : 좋아요. 대신 엉큼한 생각은 않는 거죠?

정수남 : 당신이 원하지 않으면 털끝하나도 손 안 돼. 하지만 당신은 내게 돌아올 거야. 내 장담 하지.

유지민 : 전 일본 가면 다신 안 돌아와요. 그 사람과 결혼하고 살 거거든요.

정수남 : 과연 그럴까? 난 당신의 과거와 미래를 훤히 꿰뚫고 있는 걸?

유지민 : 당신 점쟁이야?

정수남 : 날 믿지 못하겠다? 그럼 당신 내력부터 말해 볼까? 당신은 시골 처녀였지. 관광 차 서울에서 내려온 재일교포 청년한테 한 눈에 반한 거야.

유지민 : 천만에 반한 건 내가 아니라 국성 씨였어요.

정수남 : 여자들은 항상 그래. 그걸 알아야지. 남자들의 ‘사랑해’라는 말에는 ‘지금은’ 이라는 말이 생략된 거고, 여자들의 ’사랑해‘라는 말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한‘이라는 전제가 빠진 거야. (관객들에게) 사랑은 변하는 거니까? 한시도 참지 못하고 앵무새처럼 ’사랑하니?‘ ’사랑해‘하고 확인하는 거지. 안 그래요? 매일 확인하죠? 아니라구요? 두 분 사랑하는 사이 아니세요? 그런 줄 알았어. 그 얼굴에...

유지민 : 그래, 우린 첫눈에 서로 스파크가 일어난 거죠. 사랑한 거 맞아요. 놓치면 영영 못 만날 거 같았어요. 그래서 그를 따라 서울로 유학을 떠났죠. 대학 4년이란 꿈같은 시간이었어요.

정수남 : 캠퍼스 커플이었단 말이지?

유지민 : 졸업하자 우린 다시 만나기로 하고 그는 일본으로 돌아갔어요.

정수남 : 실컷 볼 재미 다 보니까 헤어진 거군?

유지민 :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런 소리에요?

정수남 : 그럼 왜 못 만났지? 전쟁이라도 났나? 당신은 속은 거야. 그는 도망 간 거라구.

유지민 :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 마세요. 그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정수남 : 그럼 왜 당신은 찾아가지 않은 거야?

유지민 : 찾아 갔어요. 찾아갔는데

정수남 : 퇴자 맞았지? 차인 거지?

유지민 : (버럭) 정말 사람 부아를 건들 거에요?


이때 노크 소리. 정수남 재빨리 자리로 돌아간다.


유지민 : 예. (문으로 가서 열며) 들어오세요.

간호사 : (닝겔 병을 가지고 들어온다) 문 잠그고 무슨 일 있었어요? 큰 소리 들리는 거 같던데.

유지민 : 아뇨. 전 겁이 많아서요.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있었죠.

간호사 : (닝겔 병을 교체하고 주사기가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어머 주사바늘이 빠졌네.

유지민 : 그래요?. 아까 환자 돌아누이며 빠졌나 봐요.

간호사 : 주사바늘 꼽을 줄은 알죠?

유지민 : 그럼요.

간호사 : 환자, 혈색이 많이 좋아졌네요. 자 그럼 수고 하세요.

유지민 : 예.


간호사 나가면 암전 된다.





제 2 장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지민의 모(해녀) 망사리와 태왁을 들고 지민을 찾아 객석을 돌아다닌다.


지민 모 : 지민아, 이 녀석아. 어디 갔어? 이 에미만 남겨 놓고 어디 갔어? (관객을 붙들고) 우리 지민이 못 봤우? (다른 관객을 붙들고 )하이고 이년아. 여기 있으면서 연락도 못해? 이년아 뼈 부스러지도록, 숨넘어가도록 물질하며 키워놓았더니 지남철에 쇠쪼가리 붙듯 찰싹 붙어서 어멍 생각도 안 나냐, 이년아? 뭐 아니라구? 이년이 빠져도 홀딱 빠졌구나. 아이구 분해. 아이구 분해. 남자놈들 다 도둑놈이라더니? 어디 보자 어떻게 생긴 놈이여? (남자 관객에게 바싹 얼굴을 갖다 대며) 응? 이건 아닌데? (여자 관객도 찬찬히 보며) 응, 이것도 우리 지민이가 아녀. 아 이 사람아 아니라면 아니라고 당당히 말해야지. 남사스럽게 이게 뭔 짓거리여? 우리 지민인 솔직히 그쪽 보다는 조금 나아. 미안허여이. 나가 눈이 쬐끔 어두워서.(남자에게 사진을 보이며) 봐 잘 생겼지? 아니라구? 꼴에 자존심은 있어 가지구. 그렇다면 얘가 토라질까 봐 그렇지? 그려그려. 제눈에 안경이니까. 눈에 콩깎지 쓰이면 다 그런 거야. 참 보기 좋다. 혹시 둘이 불륜 아녀? 아니면 말고. 부럽다. 난 그런 거라도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에고 좋은 시절에 청춘은 다 가는디 봄바람처럼 이내 간장 녹여줄 놈 어디 없나? 지민아. 에고 서방복 없는 년이 자식복은 있을라고. 지민아.


유지민, 문국성과 함께 들어온다. 객석에 있는 모친을 발견한다.


유지민 : 어머니, 거기서 뭐 하세요.

지민모 : 누구여? 이 목소리.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린데?

유지민 : 어머니 저 왔어요.

지민모 : (무대로 오르며) 지민이여? 우리 지민이가 맞지?

유지민 : 예 맞아요. 어머니.

지민모 : 아이구, 이년아 어디 갔다 이젠 온 거여?

유지민 : 어머니, 저 서울 간다고 했잖아요? 공부 열심히 하라고 어머니가 학비도 부쳐주었잖아요.

지민모 : 그랬나? 내가 하도 외로움을 타니까, 건망증이 심해졌나보다.

유지민 : 어머니, 물옷은 물질할 때나 입는 건데 망사리까지 들고 이게 무슨 꼬락서니에요?

지민모 : 내가 망령이 들었나 보다. 물속에 들어도 물질을 하는 건지 서방질을 하는 건지, 오로지 너 생각만 하면 정신이 헤까닥 해버린다.

유지민 : 어머니, 이렇게 공부 마치고 돌아왔잖아요.

지민모 : 그려? 헌디 너 무슨 재주로 종놈까지 데리고 왔냐? 용돈도 수월치 않았을 건디?

유지민 : 어머, 종놈이라니요?

문국성 : 안녕하세요? 문국성이라고 하옵니다.

유지민 : 재일교포 2세에요.

지민모 : 조포? 시방 둘이 무슨 관계여?

유지민 : 어머니, 사위감이에요.

지민모 : 뭔 개소리여? 사위? 하이고야 사윗감은 내가 벌써 골라 놓았는디?

유지민 : 누구? 수남이 오빠?

지민모 : 그려, 허우대 멀쩡하겠다, 일 잘 하겠다, 지금꺼정 우리 밭농사 수남이가 다 해줬어.

유지민 : 어머니, 우린 벌써 결혼을 약속한 사이에요.

지민모 : 누구 맘대로? 그건 안 돼. 갈라 서.

유지민 : 어머니.

지민모 : 내가 죽거든 네 마음대로 해.

문국성 : 장모님. 제가 잘 모실게요.

지민모 : 자네 번지 수를 잘못 찾았네. 난 쪽바리 사위는 싫어.

유지민 : 어머니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너무 해.

지민모 : 너도 이 다음 자식 낳아보면 안다. 아무리 돈 잘 벌고 힘 좋아도 눈에서 멀어지면 이웃사촌보다 못한 법이다. 게다가 서울도 아닌 일본으로 가버리면 난 누굴 의지하고 살어? 난 싫다.

문국성 : 어머님, 자주 찾아 뵐 게요.

지민모 : (유지민을 때리며) 에그 이 녀석아 내게 무슨 원한이 맺혀 이러니? 공부하러 서울 보냈더니 서방질만 배웠어? 아이고 내 팔자야, 아이고 못살아. 이런 꼴 보려고 짠물 먹으며 너 키운 줄 아니? (문국성에게) 가. 이 도둑놈아 어서 가. 어떻게 키운 딸인데 날로 먹으려 들어? 안 돼, 어림없다 이놈아. 어서 내 앞에서 사라져.

유지민 : 어머니 이러지 마세요.

문국성 : 어머니, 죄송합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뵐게요.(바닥에 넙죽 엎디어 절을 한다)

지민모 : 올 필요 없어. 우리 지민이 짝은 정수남이여.

문국성 : (나가며) 지민아 나중에 연락할 게.

유지민 : (따라나가며) 국성 씨.

지민모 : 지민아, 가지마.


이 광경을 숨어 지켜보던 정수남 들어온다.


정수남 : 어머님, 잘 하셨어요. 제가 잘 모실 게요.

지민모 : 그려, 다신 나타나지 못하겠지.

정수남 : 전 어머님만 믿어요.

지민모 : (등을 두들기며) 오냐, 오냐, 에그 정서방.

정수남 : 어머님, 시장하시죠? 밥 다 지어 놓았으니까 어서 들어가세요.

지민모 : 에그, 정서방. 그려 수고했어. 같이 들어가서 먹자.

정수남 : 어머님 먼저 들어가세요. 전 지민이가 온 다음...

지민모 : 거 뒤에 감춘 거 뭐여?

정수남 : 아무 것도 아니에요.

지민모 : 에그, 꼴에 생각은 있어가지고. 오늘은 쪽 뺐구나. 알았어, 내가 도와 줄테니까, 안 돼면 자빠뜨리고 꾹 눌러버려. 여자는 순결을 먼저 차지한 사람을 잊지 못하니까.

정수남 : (좋아라하며) 해해. 알았어요.


유지민 울면서 들어온다.


지민모 : 저기 온다. (들어가며) 나 피해 줄테니 잘 해이.

정수남 : 예.

유지민 : (정수남을 보고) 치이. 우리 어머니 어떻게 꼬셨길래.

정수남 : 고향에 돌아 온 거 축하한다. (엉성한 꽃다발을 내밀며)이거 받아. 왔다는 소식 듣고 들에 가서 꺾어왔어.

유지민 : (팽개치며) 이러지 마. 나 약혼한 사람 있어.

정수남 : 다 봤어. 헌데 나 관상 조금 볼 줄 알거든. 그 사람 시기해서가 아니라 진정 네 짝은 아니야. 분명 널 배신할 상이야.

유지민 : 그런 엉터리 사이비 누가 관상을 믿는데? 옆구리 터진 김밥 건들지 말고 가만 있어줘. 내 인생에 태클 걸지 말라구. (들어간다)


정수남, 들어가는 유지민을 멀뚱이 쳐다보는데 암전.





제 3 장


해녀노래소리 잠깐 들린다.

지민 모 무대로 나와서 관객들에게 해녀노래를 가르친다.


지민모 : 여러분들 이거 무슨 노랜 줄 알아졈수가? 우리 좀수들이 먼바당에 물질하러 배타고 나가멍 노저으멍 부르는 노래우다. 이왕 돈 주고 들어와시난 몇 소절만 배워 보쿠과? 예 경허민 나 따랑 헙서양. (노젓는 흉내를 내며)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사나(자 여러분은 후렴으로 이어도사나만 계속하면 되어마씀. 자 다시 한번.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요내 상창 부러진들 요내 홀목 부러지리(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한라산에 곧은 남기 엇일말가 이어도사나(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우리 선앙 가는 디랑 메역좋은 여끗으로(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놈의 선앙 가는 디랑 감태좋은 엉덩개로(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자 다와수다. 나 물에 들어감수다 양(헤엄을 치는 형태로 무대 밖으로 나간다) 


몇 달 후 봄 저녁이다.

바닷가, 지민 바다를 쳐다보며 한숨 짓고 있다.

잠시 후, 지민 모가 망사리 가득 해물을 싣고 들어온다.


지민모 : 아 이년아, 물질도 않을 거면 뭐하러 바당에는 나와서 청승이여?

유지민 : ….

지민모 : (망사리를 내밀며) 이거 봐라. 날 잡아가주 하고 눈에 잡히는데 안 아까워? 어릴 적부터 물질 배운 년이 몇 년 물질 안했다고 바릇 잡는 기술 녹슬진 않했을텐데. 물에 들어라.

유지민 : ….

지민모 : 아이고 이 화상아. 오지도 않을 놈을 뭐 하러 기다려.

유지민 : 꼭 올 거에요.

지민모 : 올 거라면 벌써 몇 번 기별이 왔겠지. 해 지나고 강남 갔던 제비도 돌아왔는데 여태 소식 없는 걸 보면 포기한 거지. 정서방 속 그만 태우고 이제 식 올리자. 응.

유지민 : 싫어요. 전 그 사람이 아니면 혼자 살 거야.

지민모 : 미친년. 니가 어디 병신이냐? 늙은 어멍 앞에 두고 못하는 소리가 없어. 정서방이 얼마나 지극 정성인데, 네가 없을 때도 아들노릇 다 했어. 니가 뭐 잘났다고 구박이니? 에그 공부 시키는 게 아닌데 바람만 잔뜩 들어가지고. 그래 너 마음대로 해. 나 혼자 살다가 저 바당에서 뒈져버릴테니까. (나간다)

유지민 : 어머니, 그게 아니에요. 국성 씬 꼭 올 거에요. 어머니한테 일등 사위 될 거에요. (관객들을 보며) 아 꽃 피고 쌍쌍이 모두 정겹게들 연극구경 다니구 좋은 시절인데. 나만 왜 이렇게 외롭게 지내나. 어디 한 번 점이나 쳐 봐야겠다. (관객에게) 우리 국성 씨 돌아올 거 같아요? 안 온다구요? 왜요? 틀렸어요. (다른 관객에게) 더 기다려요? 정수남에게 시집가요? 시집가라구요? 시집가면 이 연극 여기서 끝내야 하는데? 그렇죠. 기다려야 연극이 계속되는 거죠? 자 그럼 함께 기다려 봐요. 헌데 정수남이가 가만 놓아둘 거 같지 않아요. 저도 그의 끈질긴 집념에 마음이 약간 흔들리거든요.


정수남, 술병이 든 봉지를 들고 들어온다. 술이 약간 취했다.


정수남 : 이봐, 지민이.

유지민 : 어머 오빠. 술 드셨어요?

정수남 : 나도 이젠 지쳤어. 너 나 바보로 아니?

유지민 : 제가 언제 바보라고 했어요?

정수남 : 그런데 왜 날 무시하는 거야?

유지민 : 수남 오빠 마음 다 알아요. 어렸을 적부터 절 보살펴주고 우리 집안 일 해주신 거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정수남 : 헌데, 일생을 나한테 못 맡기겠다는 이유가 뭐야?

유지민 : 오빠도 알잖아요. 장래를 약속한 사람이 있다는 거.

정수남 : 언제 까지 기다릴 건데?

유지민 : 무슨 일이 있는 지.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정수남 : 그럼 일본으로 가겠다는 거야?

유지민 : 예. 여비만 마련되면.

정수남 : 그럼 난 뭐야? 지민이만 바라보고 산 난 뭐냐고?

유지민 : 오빠, 우린 갈 길이 다른 사람이에요.

정수남 : 놀고 있네. 좀 배웠다고 나 같은 건 사람으로 안 보인단 말이지?

유지민 : 오빠, 화내지 말고 이리 앉아 한잔 줘요. 오늘은 취하고 싶어요.

정수남 : 그래 오늘은 이리됐든 저리됐든 결판내자. (잔에 부어 권하며) 자 마셔.

유지민 : (술잔을 받아 단숨에 마신다) 자 한잔 더.

정수남 : 어쭈구리 제법인데. (다시 따라주며) 술은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마셔.

유지민 : (다시 한숨에 마시고)오빠, 나 그렇게 좋아?

정수남 : 어렸을 적부터 널 각시 삼으려고 했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널 다른 놈한테 뺐기진 않을 거야.

유지민 : (일어서며) 나 잠깐만 소변 좀 보고.(나간다)

정수남 : (관객에게) 자 여러분 절 좀 도와주세요. 오늘밤 저 여자에게서 시집오겠다는 말을 꼭 들어야 합니다. 일본으로 내빼기 전에. 방법은 있습니다. 지민이를 오늘밤 내 것으로 만드는 거죠. 두고 보세요. (주머니에서 수면제를 꺼내 지민의 술잔에 탄다)

유지민 : 더운 물을 뺐더니 춥네. 

정수남 : 자 이거 마셔. 술 마시면 다시 따뜻해 질 거야.

유지민 : (술잔을 받고 단숨에 비운다) 술맛이 왜 이래?

정수남 : 왜? 써?

유지민 : 아니 왜 이리 밍밍하게 싱겁냐구? 자 한잔 더.

정수남 : (술을 채우며) 오빤 아직 한 잔도 안마셨는데 벌써 넉 잔 째야.

유지민 : 오빠한테 할 말이 있는데 난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얘기 못하겠어.

정수남 :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무슨 얘긴데? 해봐.

유지민 : 오빠 미안해. 날 포기해 줘.

정수남 : 이런 제기. 난 포기 못해.

유지민 : 어어, 머리가 왜 이래.(푹 쓰러진다)

정수남 : 지민아, 지민아. 정신 차리...지 말고 가만 있어.

정수남 : (지민을 들쳐 매고)작전 성공입니다. (나간다)




제 4 장


정수남 부친이 객석을 돌아다니며 수남을 찾는다.


수남부 : 수남아, 수남아. (관객을 붙들고) 우리 수남이 못 봤어요? 아 이 녀석이 농사일 벌려놓고 어딜 간 거야. (관객의 뒷모습을 보고) 아 이 녀석이 저기 앉아서 한가하게 연애질을 하고 있었구나? 야 이놈아. 보리가 다 익어 낟알이 떨어지는데,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여? (관객의 뒷통수를 때리며) 어 아니네?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어찌 뒷통수가 우리 수남이랑 닮아서. 아저씨도 뒷짱구네. 아 글쎄 우리 수남이가 온다간다 말도 없이 집 안 들어온 지 한 달이 넘었어요, 보리를 베어야 하는디, 나 혼잔 어림도 없구. 이놈을 찾아야 하는디,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지민인 일본 갔다 하니께 거기 따라 갔을리는 없구. 아무래도 점쟁일 찾아가 봐야겠소. 여기 점쟁이 없소? 용한 점쟁이 없소?


무대 위에서 소경 점쟁이 등장한다.


점쟁이 : 거 날 찾는 사람 누구요?

수남부 : (무대로 올라가며) 당신이 거 신통방통 잘 맞힌다는 처녀보살 맞소?

점쟁이 : 거 목소릴 들어보니, 누굴 잃어버린 모양이군?

수남부 : 정말 신통하게 맞추네.

점쟁이 : 점쟁이라고 다 같은 점쟁인 줄 알아? 급이 있어 급이. 당신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잘 찾아 온 거야. 어서 아들 사주를 대봐.

수남부 : 거 초면에 나이 많은 사람한테 반말이요?

점쟁이 : 허어. 나가 나가 아니여. 점 처음 봐? 이러면 우리 보살님 화 나 가버려.

수남부 : 아닙니다. 갑자년 을축월 병인일 정묘시 올시다.

점쟁이 : (혼자 손을 비비며 주문을 외운다) 어허, 식은 방귀 꼈군?

수남부 : 식은 방귀 뀌다니요?

점쟁이 : 이 사람아 점쟁인 공기 먹고 사나? 복채를 내야지 복채.

수남부 :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며) 여기 있습니다.

점쟁이 : (돈을 코로 냄새 맡으며) 이 사람, 내가 소경이라고 천 원짜리도 구별 못할 줄 아나? 날 싸구려 취급하면 싸구려 점을 받게 될 거고 멍든 돈을 내면 그 값을 받게 될 것이여.

수남부 : 하이구,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찾는데 돈이 문제겠습니까? (만 원짜리를 꺼내주며) 여기 있습니다.

점쟁이 : (돈을 받고) 진작에 그럴 것이지.

수남부 :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점쟁이 : 자네 아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네.

수남부 : 예? 그럼 죽었단 말입니까?

점쟁이 : 가만 있어봐.(다시 주문을 외우며) 보인다, 보인다. 그래, 아이구. 여자에게 당했구만?

수남부 : 여자에게 당해요?

점쟁이 : 암, 아들이 여자를 괴롭히다, (귓가를 가리키며) 여기서 여기로 대나무에 찔려서 죽었어.

수남부 : 그 여자가 누굽니까?

점쟁이 : 그런 거 알려주면 법에 걸려. 경찰도 먹고 살아야지. 헌디 아들은 다시 살아날테니 걱정 마.

수남부 : 죽은 사람이 살아나요?

점쟁이 : 그 여자가 살리러 올 거야.

수남부 : 언제요?

점쟁이 : 복채 더 내.

수남부 : (주머니를 뒤지다가)없어요.

점쟁이 : 없어? 그럼 오늘 장사 끝.(가려고 한다)

수남부 : (막아서며) 분장실에 있는데.

점쟁이 : 지금 관객들 앞에서 장난해?

수남부 : (막아서며) 그럼, 시체는 어디 있어요. 신고는 해야 할 거 아니요.

점쟁이 : 수미산 구렁을 찾아 봐.(나간다)

수남부 : 아이고 수남아. 이거 어떻게 된 일이냐. 아니야 안 죽었어. 저놈의 엉터리 점쟁이. 늙은이가 처녀보살 노릇할 때부터 다 알아봤어. 이 돌팔이 할망구야. 수남아. 아이고 수남아.


수남부, 울면서 퇴장.




제 5 장


비행기의 착륙하는 소음.

이윽고 일본어 안내 방송이 들린다.

(이마 미나사마와 오사까노 고꾸사이 구-고니 도짜꾸시마시다. 오사까오 호우몽시떼 미나사마오 고꼬로요리 강께이시다시마스)

무대 밝아지면 유지민, 커다란 가방을 들고 기웃거리다가, 한국인 관광안내데스크를 찾아온다.


유지민 : 저기요, 말씀 좀 묻겠는데요.

안내인 : 예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유지민 : 저 여기 탐라식당 어디 있는지 아세요?

안내인 : 이 공항 안에 그런 곳은 없는 데요?

유지민 : 그게 아니라 오사카에 있다고 들었는데?

안내인 : 밑도 끝도 없이 탐라 식당이라면 어떻게 찾아요? 오사카 그렇게 작은 곳 아니에요. 적어도 어느 지역에 있다는 것쯤은 알아야 전화번호라도 찾아보죠.

유지민 :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 들었어요.

안내인 : 한국 사람이 사는 곳이 한두 곳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는 찾기가 어려워요.

유지민 : 전 초행이라서 일본 말도 잘 모르고 무슨 방법이 없을 까요?

안내인 : 취업하러 오셨어요?

유지민 : 아니에요. 사람을 찾으러 왔어요.

안내인 : 아 그러면 오사카 민단이나 조총련을 찾아가 보면 되겠군요. 제가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 드릴 게요.

유지민 :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암전




제 6 장


오사카의 제주식당.

유지민은 취업해서 일하고 있다.

주인은 카운터에 앉아 있다.

손님이 나가면 지민은 테이블 위 그릇을 치우고 닦는다.


주 인 : 사요나라. 아리가도 고자이마스. 참 지민아 그거 끝내고 이리 좀 와 봐.

유지민 : 예. (가까이 온다)

주 인 : (돈을 든 봉투를 건네며) 어제 주려고 했는데 깜빡했다. 섭섭했지?

유지민 : 아니에요. 고맙습니다.

주 인 : 헌데 어떡하나? 돈 벌러 온 것도 아니고 비자 만기는 다 돼 가는데... 분명 명함도 받았는데 하필이면 그 명함만 없지?

유지민 : 원래 그래요. 개똥도 약에 쓸려면 귀하다고 하잖아요.

주 인 : 개똥? 그 사람 이름이 개똥이라 했나?

유지민 : 아뇨. 문국성이죠.

주  인 : 아직 비자 기간이 좀 남았지?

유지민 : 예 한 보름 남았어요.

주 인 :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오시던 손님인데... 우리가 뭘 잘못한 일이 있나?

유지민 : 바쁘신 모양이죠.

주 인 : 하긴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회사가 어려운가?

유지민 : 예전부터 여기 단골이셨어요?

주 인 : 그럼 탐라식당 부도나고 그 손님들 다 인수했어. 여긴 한국 사람들 특히 제주사람들이 아지트처럼 드나들지. 우린 제주도에서 직수입한 흑돼지 고기를 쓰거든. 헌데 문국성이란 이름 들어 본 적 없지만 틀림없이 그 자제분이 맞을 거야.

유지민 : 제주출신은 아니구요. 못 만나면 운명인가 생각할래요.


나이든 손님 들어온다.


유지민 : 이랏샤이마세.(물과 컵을 가지러 간다)

주 인 : (그 손님을 자세히 살피다가) 아이구, 김 사장님 그간 너무 바쁘셨나 봐요? 너무 오랜만에 오셨네요.

손 님 : 예, 그간 고향에 좀 다녀왔어요.

주 인 : 김 사장님 고향이 어디랬죠?

유지민 : (물과 물수건을 가져다 놓고, 주문을 받으려고 기다린다)

손 님 : 제주도죠. 십년만인데 아주 많이 변했더라구요.

유지민 : (반가움에) 제주도요?

주 인 : 참, 김 사장님 문 사장님 잘 아시죠?

손 님 : 문 사장?

주 인 : 아이 여기 같이 오시는 문 사장님 있잖아요.

손 님 : 아 문태선 사장? 그럼 잘 아다마다. 친구처럼 지내지.

유지민 : 그럼 혹시 그 자제분이 문국성 씨 맞는 가요?

손 님 : 문국성? 글쎄? 그거야 들어 보면 알겠지. 헌데 왜?

주 인 : 이 애가 제주도에서 그 청년을 찾으러 왔대요.

손 님 : 하이고 먼 길 찾아오신 동포로구만?

유지민 : 확인해 봐 주실 수 있으세요? 꼭 부탁 드려요.

손 님 : 그거야 어렵지 않지. (휴대폰을 꺼내며 이리저리 누르다) 이 친구 유럽 여행 간다던데 돌아왔나? (전화가 걸린다) 모시모시. 아 거기 문 사장 아니오? 아노 조또 스미마생. (전화를 끄고) 아 이거 하도 오래 연락을 안했더니 전화번호를 까먹었네. 여기 전화번호부에 문태선이 좀 찾아 줘.

주 인 : 제가 할게요.

유지민 : 참, 주문하시겠어요?

손 님 : 가만 전화부터 하고. 헌데 제주도 어디서 왔나?

유지민 : 저 애월이라고 아세요?

손 님 : 아다마다 내가 귀덕 출신이거든 한림 귀덕. 애월은 바로 근처 마을 아닌가?

유지민 : 그렇습니다.

손 님 : (찾아서 버튼을 누른다) 신호 가네요.(전화기를 건넨다) 아 문 사장? 난 김국동이야. 오랜만일세. 그래 유럽은 잘 다녀왔소? 그래? 그래. 헌데 자네 아들 있지? 아니 중매 서려는 게 아니고 찾는 사람이 있어서, 이름이 뭐였지? 뭐? 아니 한국식 이름 말야?  국성? 문국성이 맞아?

주 인 : 문국성 맞지?

유지민 : (끄덕이며) 맞아요.

주 인 : (기뻐서 지민을 손바닥으로 치며) 찾았다. 아이구, 찾았다.

유지민 : (주인과 박자 맞춰 손바닥 치며 호응한다) 고마워요. (전화를 거는 사람한테 눈물을 흘리며 절한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주 인 : 아이구 좋아라.


유지민과 주인 서로 붙들고 깡충깡충 뛰며 호들갑스럽게 좋아한다.


손 님 : (일어서며 버럭) 조또마떼. 거 조용히 해봐, 소리가 안 들리잖아? (밖으로 나가며) 여보세요. 여보세요?


지민과 주인 손님 나가는 걸 멀뚱히 쳐다보는데 암전.




제 7 장


일본 오사카의 ‘제주식당’.

‘삼다도 소식’ 전주가 울려 퍼지면, 주인이 나와 구성지게 노래를 부른다.


주 인 : (노래를 다 부른 다음 관객에게) 어때 괜찮았어요? 앵콜요? 난 하고 싶은데 연출이 하지 말랬어요. 연출 말 안 들으면 나 다음 공연(목에다 손을 그으며) 이거 에요. 죄송합니다. 자 다시 시작해 봅시다. 이제 유지민이 꿈속에서도 잊지 못하던 문국성을 만날 장면이거든요. 기대되죠? 지금 지민이는 국성이 온다는 기별을 받고 꽃단장 중이에요. 자 그럼 재회 장면으로 빠져 봅시다.


주인이 카운터로 돌아가면, 문국성 들어온다.


주 인 : (허리를 굽히며) 이랏사이마세.

문국성 : 저 여기 지민이라는 한국여자 일하는 곳 맞습니까?

주 인 : 그럼, 혹시 문국성 씨?

문국성 : 예 맞습니다. 제가 문국성입니다.

주 인 : 이거 이거 생긴 게. 끼리끼리 노는 구만.

문국성 : 끼리끼리라니요.

주 인 : 아니 잘 어울린다구.

문국성 : 지금 지민이 어디 있습니까?

주 인 : 여기서 잠깐 대기하고 있어요. (들어가다 돌아서서) 참. 지민이가 눈이 퉁퉁 부은 거 오해하지 말아요. 그거 다마네기 까다 그리 된 거니까. 다마네기 까봤어요? 거 눈물 많이 나요. 저기 앉아 기다려요. 내 곧 보내 줄테니. 식사는 여기서. 알았죠?

문국성 : (마지 못해) 예.

주 인 : 참 지민이가 부탁한 게 있어요. 그냥 짠하고 만나면 재미 없다고, 눈을 가려 달랬어.(준비 해 둔 가면을 주며) 자 내가 시키는 대로 해요. 거기 의자에 앉아서 이걸 써요.

문국성 : (의자에 앉아 눈만 가린 가면을 쓴다)

주 인 : 다 썼으면 손을 이리 내요.

문국성 : 이거 뭐하는 겁니까?

주 인 : 응 다 재미있자고 하는 거니까 걱정 말아요. 손?

문국성 : (손을 내민다)

주 인 : (손을 묶으며) 이거 지민이가 풀어 줄 거에요. (다 묶고) 자 갑갑하겠지만 잠간만 기다려요. 곧 나올 거에요.(들어간다)

유지민 : (역시 눈을 가린 가면을 쓰고 주변을 더듬거리며 나온다) 국성 씨. 국성 씨 정말 왔어요?

문국성 : 지민이? 지민이구나?

유지민 : (가까이 오며) 오 이 목소리. 꿈속에서도 잊지 못하던 이 목소리.

문국성 : 어서 와 이 손 좀 풀어 줘. 어떻게 변했는지 빨리 보고 싶어.

유지민 : 안돼요. 내가 그렇게 기다려도 안 오더니, 당신은 벌을 받아야 해요.

문국성 : 미안 해, 지민이. 내가 한국에 가고 싶었지만 사정이 있었어.

유지민 : 사정이라구요? 거짓말.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날 버리려 했던 거죠?

문국성 : 아니야, 말 못할 사정이 있었다니까.

유지민 : 난 국성 씨 진실한 맘을 알고 싶어 일부러 이렇게 한 거에요. 저도 가면을 써서 당신을 볼 수 없어요. 눈은 요사한 거에요. 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거짓말을 하게 만들어요. 그러나 이렇게 보지 않으면 서로 진실을 말할 수 있어요.

문국성 : 진실?

유지민 : 그래요, 진실을 말해 줘요. 지금도 저를 사랑하나요?

문국성 :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난 아직도 지민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있어.

유지민 : 내가 어떤 상태라도 설령 불구가 되었다고 해도 사랑할 수 있나요?

문국성 : 어떤 상태라니? 어디 다치기라도 한 거야?

유지민 : 예, 많이 다쳤죠.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어요.

문국성 : 제발 내손으로 만져 보게라도 해 줘.

유지민 : 그걸 못 참나요? 멀리 이국에서 당신을 기다리다 내 속은 숯덩이가 됐는데 이 정도도 못 참나요?

문국성 :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지 않겠어.

유지민 : 목소리만 듣고 판단해 줘요. 당신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우린 서로의 모습을 보지 않은 채 돌아서는 게 나아요.

문국성 : 도대체 이거 무슨 해괴한 짓거리야. 당신이 나를 만나러 이 먼 곳까지 왔으면 내 모습을 보아야 할 것 아니요. 어서 이거 당장 풀어요.

유지민 : 당신은 많이 변했군요. 참을성도 없어졌고 온화하던 성격도 변했어요. 아참 그걸 먼저 물었어야 했는데. 결혼은 했나요?

문국성 : ... 아직은.

유지민 : 그럼 계획은 잡힌 모양이군요?

문국성 : 이런다고 변하는 건 하나도 없어. 내 다 말 할테니 이걸 어서 풀어요.

유지민 : (가면을 벗고) 그렇다면 이건 아무 소용도 없는 짓이군요. (손을 풀어준다)

문국성 : (가면을 벗고 지민을 살펴보다 껴안는다) 지민이. 보고 싶었소.

유지민 : (포옹에서 풀려나며) 이제 다 끝난 일이죠.

문국성 : 미안해. 미안. 사실 난 일본에 돌아와 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했어. 아버지 재산까지 피해를 주고 쫓겨다니는 신세가 됐어. 그 빚 갚기 위해 별별 안해 본 짓이 없어. 작년에야 다 갚고 이제야 일어서고 있는 중이지. 헌데 어떻게 내가 한국엘 갈 수 있었겠어?

유지민 : 아직은 이라는 의미는 약혼자가 있다는 말인가요?

문국성 : 아니 그건 집안 어른들끼리의 얘기지.  난 마음에도 없이 만나 본 것뿐이야.  당신과의 약속 때문에 결혼할 수가 없어. 잘 와 주었어. 난 부모님을 설득할 거야.

유지민 : 여기 오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어요.

문국성 : 다 갚을게. 당신과 결혼해서 두고두고 갚을 게. 미안해.


이때 국성모 들어온다.


국성모 : 누구 마음대로 결혼한다는 게야?

문국성 : 어머니, 어떻게 여기까지.

국성모 : 내 이럴 줄 알았지. 집에서 전화하는 소리 듣고 뒤좇아 왔더니, 너 어쩌자고 처음 보는 여자애한테 결혼 소릴 하는 게야?

문국성 : 처음이 아니에요. 지민아 인사 드려.

유지민 : 처음 뵙겠습니다. 유지민이라 합니다.

국성모 : (냉정하게 돌아서며) 이봐 아가씨, 우리 국성이와 어떻게 되는 사인진 몰라도 국성이 약혼녀가 있소.

문국성 : 어머니, 지민이완 서울 유학 때 이미 결혼을 한 사입니다.

국성모 : 어허. 뭐라고 결혼? 부모가 두 눈 멀쩡히 뜨고 있는데 둘이서 결혼? 하이고야.

유지민 : 아직 정식으로 식은 안올렸지만..

국성모 : 됐다. 식도 안올리고 둘이만 약속했으면 없던 걸로 해.

문국성 : 어머니 한 가지만 물어봐요. 장은 묵은 장이 좋습니까? 새 장이 좋습니까?

국성모 : 그야 묵은 장이 좋지 헌데 그건 왜 묻노?

문국성 : 친구도 새 친구보다는 묵은 친구가 좋은 법 아닙니까? 전 지민이랑 4년을 함께 지냈어요. 그러니 누구보다도 절 잘 알아요.

국성모 : 공부하라고 서울 유학 보냈더니 연애질만 했단 말이가? 하이고 그럼, 에이꼬는 어찌 할 거고? 너 그 집 아니었으면 지금 네가 이러고 밝은 대낮에 돌이다닐 수 있었겠니?

문국성 : 어머니, 그 집 신세는 졌지만 결혼 문제는 다르지 않아요?

국성모 : 듣기 싫다. 통시 갈 때 마음 올 때 마음 다르다더니 사내가 그러면 안돼. 약속은 지켜야지.

문국성 :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약속은 지민이가 먼저에요.

국성모 : 좋다. 그럼 아가씨. 하나 물어보자. 우리 집안 며느리가 되려면 작두를 타야하는데 할 수 있겠나?

유지민 : (놀라며) 작두요?

문국성 : 어머니 이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에이꼬는 그런 것도 안했잖아요.

국성모 : 에이꼬는 다른 방법으로 이미 통과 한 거야. 자신 있으면 덤비고 아니면 일찌감치 포기해요. 국성이 너 내 허락 없이는 결혼 못하는 거 알지? (나간다)

문국성 : (따라가며) 어머니, 어머니.

유지민 : (넋이 나간 듯 의자에 털석 주저 앉는다)

문국성 : (다시 돌아와서) 지민아, 내가 잘 설득할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

유지민 : 날 못마땅해 하는 눈치였어. 그러니 감당할 수 없는 과제를 내는 거지. 하지만 난 할 거야. 발바닥이 끊어지고 발가락이 잘려나가더라도 난 꼭 작두를 건너고 말 거야.

문국성 : 고마워.

유지민 : 국성 씨 마음만 내게 있다면 난 못할 게 없어.

문국성 : 하지만 그게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야.

유지민 : 그럼 어떡하란 말이야. 국성 씰 포기하란 소리야?

문국성 : 그게 아니고 지민이가 다칠 가 봐 그런 거지.

유지민 : 정말 많이 변했네. 도망 다니더니 이렇게 소심해 진 거야? 그 좋던 호기 다 어디 갔어?

문국성 : 하지만 지민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어.


이때, 형사가 들어온다.


형 사 : 유지민 씨. 당신 유지민 씨 맞죠?

유지민 : 그런데 누구십니까?

형 사 : (신분증을 보이며) 한국에서 온 형삽니다. 당신을 정수남 살해혐의로 체포합니다. (수갑을 채운다)

문국성 : 아니 이거 뭐 하는 짓입니까? 살인혐의라니요? 지민아 무슨 말이야?

유지민 : 전 죽이지 않았어요.

형 사  : 그거야, 재판에서 밝혀지겠죠.

문국성 : 도대체 어찌 된 일이야?

유지민 : 어쩔 수 없었어. 당신을 만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 미안해요 국성씨.

형 사 : 자 갑시다. (지민을 끌고 간다)

문국성 : 지민아,  

유지민 : 나 아직도 사랑해요?

문국성 : 그럼. 사랑해. 이 목숨 다 할 때까지 사랑할 거야.

유지민 : 고마워요.

문국성 : 만나자 마자 이게 무슨 꼴이야. 지민아.

유지민 : 기다릴 거죠?

문국성 : (뒤다라가며) 그래. 내가 꼭 연락할 게. 이번엔 안 놓칠 거야. 기다려 뒤따라 갈게.(퇴장한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 음악이 흐르면서 암전.




제 8 장


감옥

어둠 속에서 신음 소리 한참.

이윽고 무대 밝아지면 죄수복 입고 쪼그리고 누워 있는 지민.

여죄수 일어나 지민에게 다가간다.


여죄수 : 야.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유지민 : 아뇨. 몸에 열이 좀 있나 봐요.

여죄수 : 어휴. 땀 좀봐. 옷이 다 젖었어. 감기야?

유지민 : (일어나 벽에 기대며) 몸살인가 봐요. 몸이 쑤시고 힘이 하나도 없어요.

여죄수 : 이런 제기. 너 혹시 신종플루 아냐? (피하며) 야 임마 저리 가. (문쪽으로 가서)이봐요. 간수. 여기 환자 생겼어. (사이) 야. 귀에 당나귀 거시기 박았냐? 왜 대답 없어?

유지민 :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병원 갈 정도 아니에요. 좀 있으면 나아 질 거에요.

여죄수 : 이년아. 난 죽기 싫어. 너 병원 가. 안 아파도 병원에 가라고. 너랑 한 방에 있는 거 싫어. 가서 오지 마. 독방으로 옮겨 달라든지.

유지민 : 저 그런 병 아니에요. 요즘 며칠 잠을 못자서 그래요. 밤마다 악몽을 꾸어요.

여죄수 : 악몽?

유지민 : (끄덕이며) 제가 서천 꽃밭에 가는대요. 웬 부엉이가 앞길을 막으며 부리로 날 쪼는 거예요. 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고통스러워하다 잠이 깨곤 해요.

여죄수 : 서천 꽃밭이라면 환생꽃과 멸망꽃이 있다는 서천서역국인데. 거기 가는 걸 방해 한다면 거 사랑하는 사람이 잊지 못해서 그런 거야.

유지민 : 왜 방해를 해요?

여죄수 : 자네가 죽인 사람이 부엉이로 환생한 거라구.

유지민 : 부엉이로요?

여죄수 : 암, 죽은 사람 위해서 해원굿이라도 했어?

유지민 : 아뇨. 그래서 하루는 활을 준비했다가 그 부엉일 쏘아 죽였어요.

여죄수 : 죽였다고 죽는 게 아니야. 반드시 다른 모습으로 변해서 뒤를 쫓아다닐 걸?

유지민 : 그랬더니, 이젠 웬 할머니가 나타나 날 괴롭혀요.

여죄수 : 그거 봐. 할머니로 변신한 거야.

유지민 : 나타나선 내 몸 속으로 들어오려는 거에요.

여죄수 : 몸속으로? 한번 하자는 소리야?

유지민 : 아니요. 제가 딸이라면서 막무가내에요. 전 그걸 피하려 도망치다 보면 날이 새요. 잠자기가 겁나요.

여죄수 : 어떻게 들어오는데? 아래 거시기로?

유지민 : (끄덕이며) 예.

여죄수 : (깔깔대고 웃으며) 하이고 너 신 내리려는 거야.

유지민 : 신 내리다뇨?

여죄수 : 너 작두 타야 한다고 했지?

유지민 : 예. 그래야만 국성 씨와 결혼 할 수 있어요.

여죄수 : 할마님께서 네 소원을 들어주신 거라구.

유지민 : 그럼 제가 무녀가 됐단 말인가요?

여죄수 : 암. (얼굴을 들여다보며) 날 쳐다 봐.

유지민 : (시키는 대로 한다)

여죄수 : 이미 들어와 있구만. 눈빛이 틀려. 내림굿을 해서 할마님을 모셔야 할 팔자야. 자업자득이지.

유지민 : 싫어요. 전 한 번만 작두 타면 되는데...

여죄수 : 이년아, 발 안적시고 조개 잡을 수 있어? 너 평생을 할마님이 따라 다니며 괴롭힐 걸?

유지민 : 난 국성 씨 말곤 누구도 모시지 않을 거에요. 전 신 내림을 받지 않아도 작두를 탈 수 있어요.

여죄수 : 타기는커녕 올라서면 발바닥은 두 쪽이 되고 말텐데?

유지민 : 아니요. 전 비법을 연구하는 중이에요.

여죄수 : 연구? (관객들에게) 얘 미친 거 아냐? 거 무슨 종교 집단처럼 공중부양 하려나 보네?

유지민 : 몸을 가볍게 해야 해요. 그래서 밥도 하루 한 끼 양도 줄이고 있어요.

여죄수 : 덕분에 난 포식하고 있어 좋지만, 너 그러다가 죽어.

유지민 : 몸이 많이 가벼워 졌어요. 하늘을 날 것 같아요.

여죄수 : 야. 너 굿쟁인가 뭔가 하는 사람 사랑한다고 했지?

유지민 : 굿쟁이가 아니고 국성씨에요.

여죄수 : 헌데 짝사랑 아냐?

유지민 : 아뇨. 죽도록 사랑한다고 했어요.

여죄수 : 그 말 믿어? 하이고 이거 순진한 건지 맹한 건지 모르겠네. 남자들 거 변소에 갈 때 마음, 올 때 마음 다르다는 거 몰라? 결혼해서 석 달 열흘은 좋지. 콩깍지 벗겨지고 배불뚝 해서 그거 못하게 되면 한 눈 파는 게 남자야. 하긴 요즘은 신혼여행 가서 뒷날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더라. 

유지민 : 국성 씬 절대 그럴 사람 아니에요.

여죄수 : 그런 사람이 여태 면회도 한 번 안 와?

유지민 : 무슨 사정이 있겠죠. 아참 그 사람 출국정지 당해서 못 와요.

여죄수 : 출국정지?

유지민 : 예. 부도가 나서. 하지만 이제 빚 다 갚고 재기 했어요.

여죄수 : 빚 다 갚았다면 왜 못 와?

유지민 : 그건...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를 수도 있잖아요.

여죄수 : 이봐. 정신 차려. 내가 보기엔 이미 딴 살림 차렸어. 그리고 평생 일본에서 살려고? 아무도 모른 곳에서? 사랑 하나로?

유지민 : 나 돈 벌 자신 있어요. 식당 차릴 거에요. 한국 식당. 나 요리도 잘해요.

여죄수 : 그래. 돈 많이 벌어라. 헌데 좋아 쫓아다니던 남잔 왜 죽였다고 했지?

유지민 : 그 자식 술 먹여놓고 내 알몸 찍어 협박하잖아요? 자기 하고 결혼 안하면 인터넷에 올린다고.

여죄수 : 그런다고 살인을 해?

유지민 : 통 사정했어요. 돈도 주고, 잠자리도 한 번 더 했지만 날 놓아주지 않는 거에요.  그래 어느 날은 산에 놀러갔는데 같이 죽자는 거에요. 술도 마셨겠다. 나도 지치고 자포자기 상태로 약이 든 음료수를 같이 마시고 잠들었죠.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그가 정말 죽어 있는 거에요.

여죄수 : 그 사람 정말 지민이를 사랑했나 보군.

유지민 : (끄덕이며) 얼마나 괴로웠으면... 자신은 독이 든 음료수를 마시고.... 시신을 보자 겁이 나서 그냥 구덩이에 눕혀 낙엽을 덮고 도망쳤어요. (눈물을 흘리며) 내가 죽인 게 아니에요. 난 억울해요.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죠? 국성씨가 보고싶은데, 국성씰 만나야 하는데...

여죄수 : (등을 도닥이며) 울지마. 울지마.

유지민 : 너무 억울해요.

여죄수 : 여기 억울하지 않은 사람 어디 있어. 울지마.


음악이 흐르며 암전




제 9 장


병실

청소부 들어온다.

청소부 청소를 하다가 맥주캔과 소주병을 집어든다.


청소부 : 거 이상하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환자 병실에 매일 아침마다 맥주 캔에다 소주병까지. 아주 소맥폭탄주를 말아 드셨군. 간병인이 그렇게 술을 좋아하나? 헌데 어디 갔어? (주변을 살피고 나서) 에고 엊저녁 먹은 술이 아직도 안 깼는데 어디 해장이나 해볼까? (냉장고를 열어 맥주 캔을 꺼내 마신다)

정수남 : (소리만) 네 이놈!

청소부 :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환자 침상도 확인하고서) 거 이상하네? 내가 잘못 들었나? (다시 캔을 들이킨다.) 거 요즘 나이롱 환자가 너무 많아요. 겉은 멀쩡한 게 보험금 타내려고 병실로 출퇴근하는 사이비 환자도 있어요. 밤새도록 술 퍼먹다가 새벽되면 고양이처럼 숨어들어 환자 인 척. 술 냄새가 병실에 진동하지만 병원에서도 수입 올려 좋으니 나가라고 말도 못해요. 그에 비하면 이 환잔 퍽 양심적이죠. 사랑을 위해 목숨 버리다니... 사람들은 말합디다. 거 둘이 도망가면 되지 왜 죽느냐고? 허지만 닥쳐 보지 않으면 몰라요. 그 캄캄한 절망의 늪,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말입니다. 사랑이 뭔지. 내가 지금은 요처럼 청소부 신세지만 거 한 때는 잘 나가던 중소기업 사장이었단 말이오. 그 놈의 아엠에프에 회사 부도 맞고 죽으려고 여러 번 생각했지만 그것도 용기가 필요합디다. 아무나 못 죽어요. 근데 여기 와서 일용직이지만 다니다 보니까, 그래도 죽는 거 보다 사는 게 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병원에 한 달만 근무해 보세요. 자살했던 사람들도 전부 살려 달라고 아우성이에요. (관객을 가리키며)거 둘이 아무리 싸우더라도 죽지는 말아요. 예? 왜 대답 없어요? 죽지 말라고. (관객의 대답을 듣고) 그려. 어디 안주거리 없나. 봐야지 (냉장고로 가서 문을 열고 살피는데 뒤에서 정수남이 엉덩이에 똥침을 놓는다. 아파하면서 정수남을 확인하고 놀라며) 다...당신 누누누...구요?

정수남 : 이 도둑놈아, 왜 남의 물건 함부로 훔쳐 먹어?

청소부 : (침상으로 가 확인하며) 아니 이거 어떻게 된 일이야? (눈을 비비며) 내가 헛 것을 봤나? 뇌사 상태인 당신이 이렇게 멀쩡하게? 아아니야... 귀귀 귀신?

정수남 : 그래 난 죽은 영혼이다. 어서 꺼져.

청소부 : (먹던 캔을 버리고 나가려한다)

정수남 : 잠깐, 입조심해. (다가가 멱살을 잡고 협박조로) 여기선 아무 것도 못 본 거야.

청소부 : (겁에 질려) 예, 예...

정수남 : 만약 소문이 내면 당신은 물론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

청소부 : 예. 예.

정수남 : 내가 누구라고?

청소부 : 김경수 씨. 아아니. 귀귀신.

정수남 : 그래 귀신이니까 난 뭐든 할 수 있어. (냉장고 문을 열고) 자 마음대로 가져 가요.

청소부 : (물러서며) 아아니 됐어요.

정수남 : 내 성의야.

청소부 : 그 그게 목에 넘어 가겠어요? 나 여기서 나가면 기절할 지도 모르는데.

정수남 : 당신은 아무 것도 못 봤다니까? (캔 두개를 집어주며) 자 그럼 평상시대로 일 하세요.

청소부 : (받으며) 근무 중에 이러면 안 되는데...

정수남 : 근무 중에 남의 것 훔쳐 먹는 건 괜찮고? 말만 않으면 아무 일 없어요. 나 참을려고 했는데 오줌이 마려워서 말이지. 당신이 빨리 나갔으면 이런 일도 없잖아. 자 어서 가요.

청소부 : 예. 고맙습니다. (나간다)

유지민 : (소리) 아저씨, 그거 왜 들고 나가세요?


정수남 화장실로 향하는데 인기척이 나자 재빨리 병상으로 돌아가 눕는다.

곧이어 청소부와 유지민 들어온다.


정수남 : (돌아가며) 아이고 오줌 마려 미치겠네.

유지민 : 아저씨, 아무도 없는 방에서 이러시면 안돼죠.

청소부 : 하 이거. 글쎄, 훔친 게 아니고 줬다니까요?

유지민 : 누가요? 뇌사상태인 환자가 맥주를 꺼내 줬다구요?

청소부 : (손짓 발짓으로 상황을 설명하려하나 여의치 않다) 하 이거 답답해 미치겠네. (환자의 눈치를 살피며) 내가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관객들에게) 뭐라고 말 좀 해줘요.


간호사 들어온다.


간호사 : 무슨 일이세요?

청소부 : 글쎄, 저 환자가... (말은 하지 못하고 환자를 가리키며 죽은 게 아니고 살았다는 뜻을 전하려 한다) 아이고 답답해.

유지민 : 아저씨. 알았어요. 그냥 가지고 가세요.

청소부 : 예, 고맙습니다. (나간다)

간호사 : 저 사람 맥주 냉장고에서 훔쳐 간 거죠?

유지민 : 왜 상습적이에요?

간호사 : 간병인이 자리 비우면 꼭 저래요. 한번 걸려 혼 좀 나야 정신 차린다니까요.

유지민 : 아니에요. 제가 그냥 드린 거에요.

간호사 : (환자 쪽으로 가며) 여하튼 조심하세요.

유지민 : (냉장고를 열어 확인하고) 과일 좀 드실래요?

간호사 : (놀래서 나오며) 어머나! 어머나 망측해라.

유지민 : 왜 그러세요?

간호사 : 환자 거시기가...섰어요. 몸은 땀으로 젖었고. 무슨 일 있었어요?

유지민 : 무슨 일이라니요? 제가? 아니에요. 별 상상을 다하시네. 저 환자 몸 가지고 장난 안쳐요. 방금 들어왔는 걸요.

간호사 : 그럼, 아까 그 청소부 아저씨가 장난친 게 틀림없네. 변태.

유지민 : (가서 보고는) 오줌이 마려워서 그러는 걸 거에요. 호수를 꼽을 게요.

간호사 : 참 이 환자 알 수가 없어요. 맥박이나 혈압은 정상인데 깨어나질 못하니 말이에요.

유지민 : (나오며) 맞아요. 시원하게 싸고 있어요.

간호사 : 아직 미스인 거 같은데 대단하시네요.

유지민 : 뭐가요?

간호사 : 남자의 거시기 만지는 거 아무렇지도 않아요?

유지민 : 살아 있다면 못하겠죠. 의식 없는 환자잖아요. 

간호사 : 그래도 대단하세요. 이 환자 아가씨가 온 이후부터 상태가 많이 호전 됐어요.

유지민 : 살려는 의지가 대단한 거겠죠. 꼭 일어서는 걸 보고 싶었는데....

간호사 : 왜 계약 기간 벌써 다 됐나요?

유지민 : 예.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내일 일본 가거든요.

간호사 : 여행 떠나세요?

유지민 : 아뇨. 아주 살러 가요. 약혼자가 비행기표 보내 왔거든요.

간호사 : 그럼 국제 결혼하는 거네? 어머 좋겠다. 언니 나도 일본 사람 소개해줘요 응. 언니.


의사가 문 열고 들어온다


의 사 : 여기 있었구만. 김 간호사 뭐해. 얼른 627호 가 봐요. 환자가 난동을 피우고 있어.


간호사와 의사가 퇴장한다.

유지민,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데 정수남 일어나 나온다.


정수남 : 정말 갈 거야?

유지민 : (놀라며) 내일 떠나요.

정수남 : 이미 늦었어.

유지민 : 무슨 뜻이죠?

정수남 : 그의 부모는 정략결혼을 시키려는 거야. 그 여자 아니면 그의 집안은 다시 쓰러지게 돼있어.

유지민 : 이간질 시키려 말아요.

정수남 : 당장 전화해서 확인해 봐. 지민이가 가면 두 사람 다 파멸하고 말 거야. 그리고 작두 타다 죽을 수도 있어.

유지민 : 죽는 건 두렵지 않아요.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어요.

정수남 : (자신을 가리키며) 그럼 이 친군 영영 죽게 내벼려 둘 거야?

유지민 : 애초에 저하곤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정수남 : 왜 상관없어. 알바로 시작했지만 정성으로 돌봤잖아? 티끌만한 온정이면 살릴 수 있는데 왜 피하는 거지?

유지민 : 당신이 있으면 되잖아요? 당신이 계속 남아 있다면 죽지 않잖아요.?

정수남 :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몸을 빌린 것뿐이야. 당신이 떠나면 나도 떠나. 영원히 당신 주변을 맴돌 거란 걸 몰라? 제발 부탁이야. 우리가 다시 만나야 한다면 이 청년을 통해서 만나자. 응?

유지민 : 죄송해요. 당신을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아요. 제발 절 괴롭히지 말아요. 절 사랑한다면 제 앞길 행복 빌어주면 안돼요?

정수남 : 그건 내가 할 소리지. 첫사랑은 추억을 위해 존재 하는 거야. 진정으로 그를 사랑한다면 그의 행복을 빌어줘. 당신은 그와 어울리지도 않고 오히려 앞길을 막을 뿐이지.

유지민 : (시계 보며) 어서 병상으로 가서 누워요. 보호자가 올 시간이 지났어요. 곧 나타날 거에요.

정수남 : (병상으로 가며) 좋아. 정 그렇다면 당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인한 인간인지 확인시켜 주지.

유지민 : 그러지 말아요. 제발. 내가 떠날 때 까지만 이라도 함께 있어줘요.

정수남 : (누우며) 다 필요 없어.


보호자 들어온다.


보호자 : (환자쪽으로 가며) 하이고 내가 좀 늦었지? 퇴근 시간이라 좀 막혀야 말이지.

유지민 : 괜찮아요.

보호자 : (돌아오며) 콧소리하며 잘 자네. 환자를 잘 돌봐줬는데 보내기 너무 아쉽네.

유지민 : 저도 일본 가는 일 아니면 더 하고 싶어요. 정도 들었고...

보호자 : 나도 며느리 삼고 싶어. 일도 똑 부러지게 잘 하고 어디 가든 사랑받을 거야.

유지민 : 예쁘게 봐주어서 고맙습니다.

보호자 : (봉투를 꺼내며) 자. 이거 그간 수고비에 축의금 좀 보탰어.

유지민 : (받으며) 한 일도 없는데 괜히... 고맙습니다.

보호자 : 시간 되면 식사라도 같이 해야 하는 건데, 내가 좀 바빠야지. 미안해.

유지민 : 아니에요. 제가 더 미안하죠. 간병인 구할 때까지 있어야 하는데. 내일 새벽비행기라 챙겨야 할 것도 있고.

보호자 : 그래, 어서 가 봐요. 새 간병인이 오기로 했으니까, 괜찮아요.

유지민 : (환자에게로 가서) 꼭 일어나셔야 해요. 멀리 가지만 쾌유를 기도할 거에요.

보호자 : 고마워.

유지민 : (인사하며) 그럼 안녕히 계세요.

보호자 : 그래, 내 명함 가졌지? 한국에 오게 되면 한 번 연락해요.

유지민 : 꼭 연락드릴게요. (나간다)

보호자 : (문 앞까지 환송하며) 잘 가요. 그간 수고 많았어요.


보호자, 돌아와 환자 병상으로 간다.

그리고는 갑자기 놀라며 나온다.


보호자 :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얼굴이 왜 이래. 이런 맥박과 혈압이... 안 돼 경수야. 정신 차려. 살아야 돼. (인터폰에 매달려) 여보세요. 의사 선생님 빨리 보내줘요. 환자가 이상해요. 빨리요.


암전.




제 10 장


다음 날.

환자가 산소 호흡기를 끼고 누어있다.

의사 진찰을 하고 있다.


의 사 : 어쩌다 이렇게 악화 된 거지? 어제 까지도 혈압 맥박 다 괜찮았었는데...

보호자 : 하이고 의사 선생님,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 주세요. 이렇게 그냥 보내는 건 아니죠?

의 사 : 상태가 호전되다가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보호자 : 혼백이 간병인을 따라 갔나 봐요. 멀쩡하던 애가 간병인이 병실을 나가더니 금새 이렇게 됐어요.     

의  사 : 그렇다면 간병인을 붙잡았어야죠.

보호자 : 사랑 찾아 결혼하러 간다는데 어찌 잡아요. 지금 쯤 일본 가는 비행기 속에 있을 거에요.

의 사 : 지금 다시 뇌사 상태에요.

보호자 : 전혀 가망이 없단 말씀이세요?

의 사 : 죄송합니다. 현재까지는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어요.

보호자 : 아이고 이 일을 어쩌지?

의 사 : 일본으로 연락해서 간병인을 다시 부르세요. 많은 사람들 요청은 하느님도 거절할 수 없다지 않아요?

보호자 : 하지만 혼사를 앞둔 사람이 와줄리 있겠어요. 와서 금방 떠나면 또 이런 상태 일텐데.

의 사 :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 아닙니까? 한 번 해봅시다. 그 사람 이름이 뭐죠?

보호자 : 유지민이라 했어요.

의 사 : 어디 불러 봅시다.(관객들에게) 여러분 도아 주실 거죠. 여러분의 힘으로 일본 가는 비행기를 되돌리는 거에요. 할 수 있죠? 제가 유지민 씨 하면 ‘나오세요’ 함께 하는 겁니다. 유지민 씨, 나오세요.


음악과 함께 유지민 문을 열고 등장한다.


유지민 : 여기 아직 간병인 자리 비었나요?

보호자 :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일본 안 갔어?

유지민 : 밤 새 고민했는데 정수남씨 말이 옳아요. 제가 낮선 땅에 가서 뭘 할 수 있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는 게 제가 할 일이라 결론 냈죠.

보호자 : 정수남인 누구야? 약혼자?

유지민 : 아니 환자 분요.

보호자 : 오 우리 경수? 그럼 다시 일본 안가는 거야?

유지민 : (끄덕이며) 그래요. 제가 일본으로 가면 거기 두 사람이 파탄날 거고, 여기 남으면 두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

보호자 : 두 사람이라니...? 여하튼 고마워. 제발 우리 경수 살려줘. 살려만 내면 내 모든 거 다 넘겨줄게.

유지민 : (환자에게로 가며) 오래 기다렸죠? 저 돌아왔어요. 아주 당신에게 온 거에요. 어서 일어나세요.

의 사 : 하 이거. 믿을 수가 없네. 기적이 일어났어요. 환자의 뇌가 다시 움직이고 있어요. 맥박도 혈압도 정상이에요.

보호자 : (환자의 상태를 보며) 경수야 퍼뜩 일어 나거라.

의 사 : 간병인이 환자를 만지자 죽은 사람이 살아났어요. 예수처럼 기적을 행했어요.

보호자 : (연신 절하며) 하이고 고맙습니다. 우리 집안에 복둥이가 들어왔네. 환생꽃을 들고 왔네. 우리 경수 살아났네.

정수남 : (일어나며) 돌아올 줄 알았어. 당신이 날 살린 거야. (손을 맞잡으며) 고마워.

유지민 :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정수남 : 천만에. 사랑을 위해 천만년은 못 기다릴까.

유지민 : 사랑해요.


둘이 포옹을 하는데 보호자와 의사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좋아한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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