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정원joon

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희곡 열매 맛보기

나순량 후보

강용준 2009. 9. 18. 21:55


나순량 후보


강  용 준


등장인물


나순량 

부  인

사무장 

나미진 

남자 다역 : 나달건, 김봉출, 이영훈. 기자1 등

여자 다역 : 봉출처, 선거운동원, 검찰수사관, 건달, 기자2 등


제1장


 에어로빅 음악 소리 들린다.

응접실에서 부인이 에어로빅 복장으로 음악에 맞춰 흥겹게 운동을 하고 있다.

잠시 후 나순량 들어온다.


나순량 : (한참 구경하다) 꼴에 지금 뭐하는 짓이야?

부  인 : 보면 몰라요? 여보 따라 해봐요. 얼마나 신나는 데요? 건강이 최고 예요.

나순량 : (녹음기의 버튼을 눌러 음악 끈다) 이봐, 돼지가 춤을 춘다고  송아지 되나?

부  인 : 뭐, 돼지? 이 양반이 술이 덜 깼나? (몸매를 자랑하며) 이 에스라인 몸매를 돼지라니?

나순량 : 시끄럽게 녹음기 방방 틀어놓고. 동네 사람들 잠 못 자게 꼭두새벽부터 무슨 난리 부르스야?

부  인 : 하이고 밤늦게 술 취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건 어떻구?

나순량 : 허어. 누구 망하는 꼴 보려구 이러나? 운동을 하려면 내 선거운동이나 도와 줘.

부  인 : 선거? 시의원은 아무나 합니까? 개망신 당하지 말고 제발 지금이라도 꿈 깨세요.

 돈 잃고 사람 잃고 건강까지 잃게 돼요.

나순량 : 이봐, 사람 무시 하지 마. 나순량이가 어때서? 돈 있겠다. 깡다구 있겠다. 포주, 피쟁이, 양아치 같은 놈들도 다하는데 나라고 못할 거 뭐 있어?

부  인 : 허이고, 그래요? 당신은 어떻게 돈 벌었는지 잊어버렸어요?

나순량 : 그래 정직하게 돈 번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이 나순량이 돈은 개같이 벌었지만 좋은 일 많이 했어. 양노원 어르신, 시장 아줌마들한테 들어봐 얼마나 인기가 좋다구.

부  인 : 그거 본심에서 그런 거에요? 다 선거 출마하려니까, 명함에 직함 내걸려고 그런 거지. 표 달라면 본인 앞에서 나 안 찍겠소 하는 사람 어디 있어요?

나순량 : 당신 혹시, 나보다 처남이 당선되기를 바라는 거 아냐?

부  인 :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 영택이가 뭐가 부족해요. 법대 나와 변호사 하겠다. 한눈팔지 않고 바른 길을 살아왔지, 국회의원 감으로도 손색이 없다구요.

나순량 : 그럼 국회의원으로 나서지 왜 내 앞길을 막느냔 말이야?  대학등록금에 용돈까지 대주다보니 호랑이 새낄 키운 꼴이잖아? 당신이 좀 말려 봐.

부  인 : 왜 안 말렸겠어요. 처남매부 싸우는 집안 꼴 창피하다고 삼촌들도 말렸지요.

나순량 : 헌데 그놈 왜 말 안 들어? 

부  인 : 당신은 안 된답디다.

나순량 : 뭐 안 돼? 건방진 놈. 당선되기만 하면 그놈 가만 안 놔 둘 거야.

부  인 : 마음대로 하세요. 난 중립이에요. (방으로 들어가는데)

나순량 : 이거 봐. 뭐 중립? 남편이 선거에 나서는데 중립? 너 어디 간지럽니?

부  인 : 왜 또 치려구? 어디 쳐봐.

나순량 : (주먹을 불끈 쥐고 칠듯이) 아이고 이걸 콱.

부  인 : 쳐. 왜 못 쳐. 내 몸에 손만 대면 이번엔 정말 끝장이야.(들어간다)

나순량 : 아이고 선거만 아니라면 저걸 그냥(주먹을 날리며) 주먹이 운다. 울어.


나순량 주먹을 이리 저리 뻗어 날리는데 사무장 들어온다.


사무장 : 운동 중이세요?

나순량 : (권투 폼을 잡고 집안을 돌며) 그래, 개구쟁이 시절엔 한 싸움 했지.

사무장 : 듣자니 깡다구가 좋았다면서요?

나순량 : 암, 별명이 포인터였지. 어느 놈이든 한 번 물면 놓질 않았거든.

사무장 : 똥개가 아니구요?

나순량 : (버럭) 어떤 놈이 똥개래?

사무장 : 농으로 한 말에 왜 화내십니까?  여론조사 결과 나왔습니다.

나순량 : 그래. 어찌 되었나?

사무장 : 예. 근소한 차이로 2위입니다. 첫 여론조사 치고는 흐름이 좋습니다.

나순량 : 그럼? 공들인 게 얼만데. 헌데 1위는 누군가? 이영택은 아니지?

사무장 : 이영택 맞습니다.

나순량 : (난감해 하며) 허어 이런. 하지만 상관없어. 공천을 못 따면 무소속으로 나갈 거야. 시장도 무소속 아닌가? 우리 지역에선 오히려 무소속이 유리할 지도 몰라.

사무장 : 하지만 조직의 도움을 받기 위해선 당 공천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오 의원님께 매달려 보십시오. 공천권을 쥐고 있지 않습니까? 여론조사는 어떻게든 만들어 보겠습니다.

나순량 : 그래, 오 의원과 김 시장을 당선시킨 게 누군가? 내 청을 거역할 순 없지. (주위를 살피고 나서) 조용하게 큰 거 한 장 전달해.

사무장 : 알겠습니다. 오늘의 스케줄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금 삼달공원으로 가서 아침 운동 나오신 분들께 인사드리고, 다비치목욕탕 들르시고. 아침은 공설시장에서 유권자들과 함께 순대국 드시겠습니다. 9시에 동신초등학교에서 열리는 총동문회체육대회 방문하시고, 10시 30분에는 동신성당 앞에서 신자들 만나시고, 11시 30분에는 부자식당에서 영남향우회가 있는데, 자리에 앉지는 마시고 지나가다 들렸다고 인사만 드리십시오.

나순량 : 식사 값은 잘 처리한 거지?

사무장 : 장사 한두 번 해봅니까? 이리저리 돌리고 세탁해서 잘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1시에는 박이정 씨 딸 결혼식장...

나순량 : 됐네, 스케줄 표를 운전기사에게 넘기게.

사무장 : 알았습니다. 차 대기 중이니 가시죠.


나가려는데, 나미진이 녹음기를 들고 나온다.


나미진 : 아빠 잠깐만. 이거 들어보고 가. 부탁한 로고송이 왔어.(녹음기를 틀고 따라 부르며) 여러분이 나순량을 부르신다면 언제든지 달려 갈게~낮에도 좋아, 밤에도 좋아 언제든지 달려 갈게~.

사무장 : 미진 씨 미안하지만 이따 사무실로 갖다 주세요. 지금 바쁘거든요.

나순량 : 그래, 유권자 만나야지, 인터뷰도 해야지, 나 많이 바쁘다. 참, 사무장. 연설원고랑 정책공약 챙길 교수진들은 확보 된 거야?  

사무장 : 지금 알아보고 있으니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아무리 콧대 높은 교수들이라지만 돈 마다할 놈 있습니까?


 아들 들어온다.


나순량 : 넌 밤새 어디서 처먹다가 이제야 기어들어 오냐?

나달건 : 아버지. 그 무슨 섭한 말씀이세요. 밤새 저쪽 운동원들 포섭하다 들어온 아들한테.

나순량 : 아이구. 술 냄새. 술 꼬장 부려 표 까먹지 말고 얌전히 있어줘.

나달건 : 얌전히 있게 생겼어요? 폭탄이 나타났는데.

나순량 : 폭탄?

나달건 : 회사 앞에 가보세요. 지난달 해고 시킨 김봉출 그 개새끼가 아버지 비방하는 피켓 들고 시위하고 있어요.

나순량 : 시위? 그 놈 아직 매 덜 맞았구만.

나달건 : 저한테 맡기세요. 조용히 처리할게요.

사무장 : 조용히 달래신단 말씀이죠?

나달건 : 애들 풀어 바다에 던져 버리던지, 파묻어 버릴 겁니다.

사무장 : 큰일 날 말씀입니다. 사건 터지면 선거도 못해보고 은팔찌 끼게 됩니다.

나순량 : 그래. 때가 때인 만큼 시끄럽게 굴면 안 된다.

나달건 : 그 새끼 독종이라서 말로는 안통해요. 택시회사에 노조가 뭡니까? 가스 값은 오르지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 판에.

나순량 : 소리 안 나게 조용히 끝내. 자 어서 가세.

나미진 : 아빠, 나도 돈 줘. 녹음비랑 현종 씨 부모님 만나는데 옷도 사야한단 말이야.

나순량 : 그런 건 엄마한테 달래라. 자 모두 파이팅 하자.


나가는데 나순량의 핸드폰에서 경박스러운 음악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나순량 : (수화기를 열고)예, 나순량 예비 후보올시다. (사이, 듣다가) 뭐? 사퇴하라고? 너 누구냐?


인물들 나순량에게 집중되는데 갑자기 암전.



제2장

 

시위용 음악이 들리면서 스포트라이트 들어오면 모자에 마스크를 쓴 김봉출 한 팔에 붕대 감고 ‘깡패 나순량은 사과하고, 부당해고 철회하라’ 라고 쓴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건달 두 명이 들어와 피켓과 녹음기를 빼앗아 박살을 내고 김봉출을 끌고 간다.

잠시 후, 조명 바뀌면 나순량의 응접실, 부인이 앉아 전화를 받고 있다.


부  인 : 그럼요, 저 인간이 말을 들어먹어야죠. 아주 패가망신하려고 작정을 했어요. 예? 오늘은 연설 준비 때문에 일찍 들어온다 했어요. 예? 오신다구요? 좀 잘 설득해 주세요. 은덕을 많이 입었으니, 오빠 말은 들을지 모르겠네요. 예.(수화기를 접는다)


미진 잔뜩 부은 얼굴로 밖에서 들어온다.


나미진 : 엄마, 나 몰라. 이젠 시집 다 갔어.

부  인 : 왜? 현종이랑 싸웠니?

나미진 : (전단지를 내밀며) 현종 씨 부모님이 이것 보시고 식사도 안하시고 그냥 가셨단 말이야.

부  인 : (받으며) 속상해서 정말. 이것 때문 방금 외삼촌하고 통화했다.

나미진 : 아빠 과거 경력이랑 학교 때 성적표까지 실린 전단지가 동네에 쫙 갈렸단 말야. 이젠 창피해서 집 밖에도 못 나가겠어.

부  인 : 도대체 뭐라고 났길래?

나미진 : 학교 다닐 때 싸움질에 애들 돈 뺐아 퇴학당했고 전학 가는 곳마다 말썽 일으켜 고등학교도 네 군데나 옮겨 다니면서 결국 졸업도 못했대요? 머리가 깡통이라 성적은 394명 중 393등이고요. 

부  인 : 어이구, 그래도 뒤로 한 명은 있네.

나미진 : 그 뿐만 아니에요. 할아버진 친일파고, 큰아버진 여자 장사로 돈 벌었고 아빤 고리대금업으로 폭행 전과 5범이래요. (손가락을 펴며) 별이 다섯 개.

부  인 : 조폭 똘마니인줄은 시집 와서 알았다.

나미진 : 술 마시면 대낮에도 개처럼 기어 다닌다고 별명이 ‘똥개’래요. 그리고 명동단란주점 김 마담이 아빠 애인이라는 거 아세요?

부  인 : 그런 것 까지 났어? 아이고 꼴~좋다.

나미진 : 엄마는 알면서도 가만있는 거야?

부  인 : 아니면 이 나이에 뒤를 쫓아다니겠니? 두둘겨 맞으며?

나미진 : 아이고 미쳐. 그러면서 왜 선거에는 나서요.

부  인 : 내말이. 가만있으면 그 알량한 가족사를 왜 들추겠니?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고 괜히 나서서 사돈에 팔촌까지 망신살이 뻗혔다.


이때 ‘문열어’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 문 두드리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린다.


부  인 : 아이고 또 처먹었구나. 저러다 선거도 못하고 쓰러지지, 남 보기 전에 얼른 문 열어.

나미진 : 꼴도 보기 싫어. 엄마 남편이니까 엄마가 알아서 해. (방으로 들어간다)

부  인 : 망할 것(일어서서 현관 쪽으로 간다)에고 내 팔자야.


부인, 현관문을 여는데 나순량이 술이 취한 상태로 엉금엉금 기어 들어온다. 와이셔츠 차림에 바지는 걷어 올리고 머리엔 넥타이를 맸다.


부  인 : 하이고, 이 꼬락서니하고는. 똥개가 틀림없구만?

나순량 : (앉아서 양말과 구두를 벗으며) 뭐? 당신 그 국가기밀을 어떻게 알았어?

부  인 : 국가기밀 좋아하네. 온 동네 소문이 쫙 퍼졌어요. 이제 시의원이고 뭐고 다 틀렸다구요.

나순량 : 어떤 미친 새끼가 그딴 소릴 해?

부  인 : (전단지를 코앞에 갖다 대며) 이것도 안보셨어요?

나순량 : 아 그거? 신경 쓸 필요 없어. 다 유언비어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발했고, 애들 풀었으니 곧 잡힐 거야. 어느 놈인지 대갈통을 부숴버릴 거야.

부  인 : 국가기밀 누설죄는 즉결처분하나요?

나순량 : 지금 나 놀려?

부  인 : 선거 때문 온 집안사람들 남 입에 오르내리고 이게 무슨 꼴이에요. 돈 쓰는 재미로 편안히 살면 될 걸?

나순량 : 여자들은 몰라. 남자라면 야망이 있어야해. 시의원 직함만 얻으면 인생이 달라진단 말이야. 택시 운짱 사장보다 시의원 나순량, 자손대대로 족보에 남는다구.

부  인 : 당신보다 잘난 사람 얼마나 많은데, 꿈 깨시고 제발 지금이라도 그만 둬요.

나순량 : (꽥 소리치며) 시끄러워. 도와주기 싫으면 주둥이 닥치고 가만있어. 지금까지 투자한 게 얼만데, 가서 물이나 떠와.

부  인 : (주방으로 가며) 에휴. 무슨 귀신이 씌운 게지.

나순량 : (큰 소리로) 나순량, 그렇게 시시한 놈 아니야. 세상이 날 부르는데 봉사를 해야지.  시의원 되면 나만 좋아? 가문을 빛내는 일이야.

부  인 : (물을 떠오며)안 되면 쪽박신센데?

나순량 : 계속 재 뿌릴 거야? 여론조사도 안 봤어? 돈이면 처녀 불알도 구한다구.

부  인 : 나 이혼해줘요.

나순량 : 뭐? 이혼? 이 판국에 이혼?

부  인 : 아니면 재산 반을 내 이름으로 해 주든지.

나순량 : 이게 돌았나? 너 나 죽일 작정이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어.

부  인 : 난 깡통차기 싫다구요.


초인종소리


나순량 : 이 밤중에 어떤 새끼야?

부  인 : (인터폰 있는 곳으로 가며) 오빠 온댔어요. (확인하고 벨을 누른다)

나순량 : 그 양반이 이 밤중에 웬일로? 응, 날 설득하겠다고?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큰 오빠 들어온다.


부  인 : (현관에서 맞으며) 어서 오세요.(주방으로 들어간다)

이영훈 : (나순량을 보고) 마침 집에 있었군.

나순량 : 동생 선거운동 하느라 바쁘실텐데, 웬일이십니까? 이 밤중에.

이영훈 : 선거 운동이라니 난 중립이야. 헌데 자네 원하는 게 뭔가?

나순량 : 당연히 당선을 원합지요.

이영훈 : 자네, 정말 선거에 끝까지 나설 셈인가?

나순량 : 형님, 제가 돈 뿌리며 자선 사업하는 것으로 보이십니까?

이영훈 : 이보게, 김 서방. 자네는 돈도 벌만치 벌었고 부족한 게 없는 사람 아닌가? 우리 영택이 어려서부터 정치에 꿈을 두고 법대 나와 변호사하며 여기까지 온 거 자네 잘 알지?

부  인 : (음료수를 가져다 탁자에 놓으며) 그럼요. 인물로 따지면 게임도 안 되죠.

나순량 : 중립이라며? 흥 오누이가 협동작전이지만 어림없어. 형님. 저도 할만치 한 사람입니다. 가방 끈이 짧아서 그렇지, 제가 시의원 못 나설 거 뭐 있습니까? 저 경력 화려합니다. 동신시장개발위원장에다, 전택련 이사, 청산군 향우회 회장, 전건협 중앙이사에. 청바지 부위원장에,

이영훈 : 잠깐, 전건협이라면 전국건달협회 말인가?

나순량 : 형님, 저 건설업 하는 거 몰랐어요? 전문건설협회 말씀입니다.

이영훈 : 그럼 청바지 부위원장은 뭔가?

나순량 : 청소년 바르게살기 지도위원회요.

부  인 : (들어가며) 하이고 자기나 바르게 살지. 별 다섯 개가 누굴 지도한다고? 

나순량 : 저 년이. 야! 이 X년아 이리 나와.

이영훈 : 이거 무슨 짓인가? 매형을 무시하는 건가?

나순량 : 보셨잖아요? 부아를 살살 긁는 거.

이영훈 : 됐네. 헌데, 자네 지역구에 쫙 깔린 전단은 봤는가?

나순량 : 형님. 그거 영택이 족에서 만든 거 아니요? 어떻게 우리 집안 족보를 그렇게 잘 알 수 있어요?

이영훈 : 영택인 그런 장난 안 해.

나순량 : 두고 보면 알겠죠. 애들 풀어 조사하고 있으니.

이영훈 : 선거란 원래 그런 거야. 사돈에 팔촌까지 전부 까발리게 돼있어.

나순량 : 그래서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습니까?

이영훈 : 자네 건강도 안 좋다면서 형제간에 이게 무슨 꼴인가?

나순량 : 언제부터 제 건강 관리해주셨습니까? 험한 꼴 안 보려면 영택이가 포기하면 될 거 아닙니까?

이영훈 : 그럼 이렇게 하세. 자네도 여당에 공천 신청했으니 떨어지는 사람이 포기하기로 말일세. 영택이도 동의했으니 자네도 받게.

나순량 : 공천? 그거 받든 안 받든 상관없습니다. 여론조사 보셨죠? 조직 없이도 2등인데 왜 포기합니까? 막판에 실탄만 제대로 뿌리면 역전은 문제없어요.

이영훈 : 자신 있으면 각서에 도장 찍으면 될 것 아닌가?

나순량 : 형님. 선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선거는 돈과 조직이에요. 영택이 돈 있습니까? 돈이 있어야 조직을 움직여요. 똑똑하다고 세상인심 얻는 거 아닙니다. 학력, 경력 빵빵한 대쪽 어른, 아들 병역문제 때문에 몰락하는 거 보셨잖아요? 잘난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 반발세력이 더 많다는 걸 아셔야 한다구요. 전 반드시 이깁니다. 우리 선친 제사는 빠져도 지역구 경조사는 다 챙겼어요. 의리와 인정으로 단단하게 표밭을 다져 놓았다구요.

이영훈 : 그래 누가 이기든 상관없네. 허나 선거 때문 형제간 의가 끊기면 되겠는가? 이 방법 밖에 없네. 공천에 깨끗이 승복하도록 하세. 영택이 도장은 미리 받아 놓았어.

나순량 : 오라, 마타도어 전단지 뿌렸다고 여론이 확 돌아설 줄 아시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정의가 반드시 승리할 줄 아십니까? 두고 보세요.

이영훈 : 그렇게 유권자를 믿는다면 도장 못 찍을 이유가 뭔가?

나순량 : 이리 주세요. 그거 뭐 어렵습니까? (문서와 펜을 받아 사인하며)영택이 약속 지키는 거 책임 지셔야 합니다.(문서를 넘긴다)

이영훈 : (받으며) 암. 자네도 꼭 지켜야 하네.

나순량 : (자신만만한 웃음을 날리며)이제 그물에 걸려들었군 제 뒤에 든든한 빽이 있는 걸 모르셨죠? 으하하하.


이영훈은 뜻을 몰라 어리둥절하는데 나순량 호탕하게 웃는다. 암전.



제3장


며칠 후, 회사 앞에서 김봉출 처가 애기를 업은 채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봉출처 : ‘행방불명된 김봉출을 찾아내라’, ‘악덕업주 나순량은 내 남편 복직시켜라’

 

조명이 바뀌면, 나순량 선거 사무실.

선거 포스터와 함께 각종 격문이 붙어있다.


나순량 : (신문을 보다 팽개치며) 이거 도대체 어떻게 일하는 거야. 신문에 다 나고.

사무장 : 죄송합니다. 일이 더 확산 안 되도록 언론사에 기름칠 했고 알바 애들 통해 인터넷에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있습니다.

나순량 : 헌데 달건이 이 새끼는 왜 코빼기도 안 비쳐?

사무장 : 계속 전화해도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

나순량 : 꼴통. 누굴 닮아서 멍청한 지. 조용히 처리하라고 했더니, 일을 더 크게 만들었어.

사무장 : 메시지 넣었으니까 금방 연락 올 겁니다. 아무 일 없을 겁니다.

나순량 : 자네 김봉출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지?

사무장 : 예. 선거 끝날 때까지 조용한 시골에 감금하겠다고 했습니다.

나순량 : 당장 풀어줘. 앞뒤도 안살피고 왜 그래? 아마추어처럼.

사무장 : 죄송합니다.

나순량 : 달건이 믿지 말고 자네가 직접 복직 처리해.

사무장 : (놀라며) 복직이요?

나순량 : 선거 끝나면 바로 해고할거야.

사무장 : 역시 회장님다우십니다.

나순량 : 봉출이 처한테 돈 좀 주고 선거운동도 시켜. 단 한 표가 아쉬워.

사무장 : 알겠습니다.

나순량 : 공천 발표가 며칠이나 남았지?

사무장 : 다음 월요일이니 이번 주가 고비입니다. 공천에 문제 있겠습니까? 더구나 여론조사도 오차범위로 근접했는데.

나순량 : 아직도 2등이야? 무슨 수가 없을까?

사무장 : 이런 추세라면 이번 주말에는 1위로 올라 설 게 분명합니다.

나순량 : 확실한 거 한방이면 끝나는데 말이야.

사무장 : 정책 팀에서 연구중입니다.

나순량 : 헌데 유권자들 심리를 알다가도 모르겠어. 날 까발린 전단지가 돌았는데 오히려 지지도가 올라가니 말이야.

사무장 : 선거 한두 번 해보십니까?  세상엔 말입니다. 잘난 사람보다 못난 사람이 더 많거든요. 똑똑한 놈들 뽑았더니 별 수 있습니까? 뒷구멍으로 쳐 먹고 배신 때리니 말입니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인간적인 나순량을 선택한 겁니다. 요즘 유권자들 바빠서 경력, 학벌, 정책 그거 안 봅니다. 이미지 선거 아닙니까? 인터넷 통해서 방 뛰우면 그거 믿고 쾅 찍는 거죠.

나순량 : 그럼 전단지가 도움이 됐으니 찾아내 상 줘야겠군?

사무장 : 헌데 그게 말입니다.

나순량 : 찾아냈나?

사무장 : 혹시 사모님이 고도의 전략으로 그런 게 아닐까요?

나순량 : (놀라며)뭐? 집사람이?

사무장 : 예. 인쇄소에 찍힌 전화번호 확인했더니 사모님 거였습니다.

나순량 : (혼자 소리로) 그년이 기어이.

사무장 : 맞습니다. 회장님을 당선시키려고 술수를 쓴 게 분명합니다.

나순량 : 그래. 선거는 술수야. 올인할 타이밍이야.

사무장 : 좋은 수라도 있는 겁니까?

감억만 : 암. 확실한 한방을 날려야지.


암전.


제4장


나순량의 응접실.

나순량 연설연습을 하고 있고, 여자운동원이 연설을 지도하고 있다.


나순량 :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 저 동신구의 충직한 머슴 의리와 뚝심의 사나이 나순량 후보올시다.

운동원 : 거기서는 원고를 보지 마시고, 정면을 향해야 합니다. 시선은 고루 분배하되 15도 상방을 유지하는 게 좋구요, 글을 읽지 마시고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하십시오.

나순량 : 원고 보지 말라니, 이걸 어떻게 다 외워?

운동원 :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자연히 외워집니다.

나순량 : 나 꼴통인 거 알면서 놀리는 거지?

운동원 : 아닙니다. 후보님. 후보님의 장점은 바로 그겁니다. 무식하지만 순박한 이미지. 유권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의리와 뚝심. 그게 먹혀들어 가고 있습니다.

나순량 : 그럼 원고 없이 막하면 안 될까?

운동원 : 그래도 내용은 있어야죠. 외울 수 있는데 까지 외우시고 생각 안 나면 원고를 보세요.

나순량 : 이거 참. 한계를 시험하는 군.

 미진이 울면서 나온다.


나순량 : 저년은 무슨 궁상이야? 왜 엄마가 용돈 안주던?

나미진 : 난 몰라. 다 틀렸어.

나순량 : 모르는 게 뭔데?

나미진 : 아빠 때문에 다 틀렸어.

나순량 : 어허 이런. 뭐가 틀렸냐구?

나미진 : 차였단 말이야. 현종 씨 부모님이 안 된데. 아빠 때문 안 된데.

나순량 : 그게 어찌 아빠 탓이냐?

나미진 : 괜히 선거 나와서 이 꼴 됐잖아. 난 몰라. 책임져. 빨리.

나순량 : (달래며) 그래 책임질 게. 울지 마. 괜찮아. 남자는 얼마든지 있어. 시의원만 되면 탤런트 같이 미끈하게 빠진 총각 한 트럭쯤 실러다 줄 게. 응?

나미진 : 싫어. 난 현종 오빠 아니면 싫어.


미진의 핸드폰이 울린다.


나미진 : (얼른 받으며) 현종 오빠? (하다가 실망하며) 뭐야 오빠. (놀라며) 뭐? 엄마가? (다시 울음보가 터지면서) 엄마~.

나순량 : 무슨 일이냐?

나미진 : (울면서) 엄마가 칼에 찔렸대. 엄마~.

나순량 : (전화를 빼앗으며) 이리 줘봐. 여보세요? 그래 아비다. 저런, 많이 다쳤어? 어디? 알았어, 금방 갈게. 


암전.



제5장


며칠 후. 나순량 선거 사무실. 사무장 전화를 걸고 있다.


나순량 : 도대체 이거 말이 돼? 여론조사 1등인 날 제치고 어째서 이영택이가 공천됐냔 말이야?

사무장 : 오 의원님, 전화 안 받습니다. 비례대표 제의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순량 : 시의회 의장 감인 나순량이 보고 비례대표 하라고? 그것도 확실치도 않은 순번으로? 돈 배달사고 난 거 아냐?

사무장 : 아니에요. 오 의원님께서 직접 챙기셨는걸요.

나순량 : 그런데 왜 비례대표야?

사무장 : 글쎄요? 후보님은 오 의원님 오른 팔 아닙니까?

나순량 : 암, 오늘을 위하여 그간 얼마나 챙겨드렸는데. 외국 나갈 때마다 백 달러 짜리 한 다발씩, 지역구에 내려올 적마다 용돈까지. 그간 바친 돈으로 택시 샀다면 족히 회사 하나는 차렸을 거야. 헌데도 날 무시해?

사무장 : 오 의원님 직접 만나 앞 순위 달라고 하십시오.

나순량 : 다 필요 없어. 무소속 등록 준비 해.

사무장 : 알겠습니다.

나순량 : 무슨 일이 있더라도 포기 안해. 꼭 당선해서 배신자 놈들 쓴맛을 보여주고야 말겠어.


미진과 이영훈 들어온다.


나미진 : 아빠, 어찌 이럴 수가 있어요?

나순량 : 엄마 간호 하랬더니, 여긴 왜 와?

나미진 : 시의원이 그렇게 대단한 거야?

사무장 : 무슨 일이십니까?

나미진 : 엄마 목숨과 바꿀 만치 가치가 있는 거냐구?

나순량 : 왜 이러니 미진아?

나미진 : 왜 이러냐구요? 몰라서 물어요? 엄마 깨어났어요.

이영훈 : 아무리 선거라지만 이럴 순 없네.

나순량 : 깨어났으면 됐지, 도대체 왜들 이래요? 그렇잖아도 분통터져 죽겠는데.

이영훈 : 자네 자작극 꾸민 거 다 알고 왔네.

사무장 : 자작극이라니요?

나미진 : 엄마가 다 말했어. 엄마를 죽이려 한 게 아빠 똘마니라구. 아빠가 시켰잖아?

나순량 : 내가 왜 그런 짓 해? 난 모르는 일이다.

이영훈 : 달건이어미가 이혼 요구했다구 그럴 수 있나? 동정표 얻으려구 칼부림까지 해?

나순량 : 무슨 소립니까? 난 지금 지지율 1위에요. 뭐가 아쉬워서 그런 짓을 해요? 난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 여자 제 정신 아니라구요.

나미진 : 엄마 죽여서 시의원 되면 속 편하겠어? 아빤 인간도 아니야. 신문사, 방송국에 다 알리고 말겠어.(나간다)

나순량 : (따라 나가다)얘, 미진아. 사무장. 미진일 잡어. 어서 튀어 새끼야.

사무장 : 예. (뛰어나간다)

이영훈 : 김 서방. 영택이가 공천됐으니, 이젠 약속대로 포기할 거지?

나순량 : 거 무슨 소리하고 있어요?

이영훈 : (단호하게) 자넨 이제 끝났네. 사내답게 약속 지키게.

나순량 :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야, 너 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

이영훈 : (놀라며) 김 서방. 자네 실성했나? 나 형님이야. 이영훈이라구.

나순량 : 형님 좋아하네. 이영숙관 이미 끝났어. 어서 꺼져 개새끼야.

이영훈 : (나가며) 어허 이런 개망나니 봤나. 선거가 사람 잡는구만.

나순량 : (뒤에다 대고) 너희들 아니라도 얼마든지 당선할 수 있어. 이영택이 코를 납작하게 해 줄테니 두고 봐 새끼들아.


수사관, 수사요원과 함께 들어온다.


수사관 : 나순량 씨 되시죠?

나순량 : 넌 뭐냐?

수사관 : 검찰청 수사과에서 나왔습니다. 나달건 씨가 아드님 맞습니까?

나순량 : 우리 달건이가 뭘 어쩼다구?

수사관 : 나달건이 다 불었습니다. 김봉출씨 납치구금폭행 교사, 그 처에게 돈봉투 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영장 갖고 왔습니다. 검찰청 까지 가 주셔야겠습니다.

나순량 : 이거 모함이야. 난 아무 잘못 없어.(하다가, 가슴을 잡고 쓰러진다)아이구...


수사요원 수갑을 꺼내들고 나순량 주저앉는 자세로 정지. 암전

잠시 후,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나순량 휠체어에 앉은 자세로 포토라인 앞에 정지한다.


기 자1 : 혐의를 인정하십니까?

나순량 : 이건 음모입니다. 나순량이를 매장시키려는 마타도어에요. 난 아무 죄도 없습니다.

기 자2 : 부인 살해를 교사했다는 소문도 있던데 맞습니까?

나순량 : 난 모르는 일입니다. 결백을 검찰에서 당당하게 밝힐 겁니다.


휠체어가 움직이는데 음악이 흐르면서 암전.

암흑 속에서 라디오 선거방송 소리 들린다.


아나운서 1 : 다음은 등신구로 넘어갑니다. 등신구개표소 나와 주세요.

아나운서 2 : 예. 여기는 등신구가 아니고 동신굽니다. 동신구 개표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동신구는 90%가 개표된 현재 무소속 나순량 후보의 당선이 확실 시 됩니다. 무소속 나순량 후보는 여당의 이영택 후보를 .....


 선거 방송이 음악에 묻히면서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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