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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소설 나무 동산

엘렉트라의 눈물

강용준 2017. 9. 29. 09:55


단편소설

엘렉트라의 눈물

 

강 준

 

천벌을 받아 싸지

호준의 전화를 받고 나니 분노의 기운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겨우 쉰아홉인 모친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가뜩이나 정 피디의 득달같은 호통을 들은 후라 노트북을 접고 작가실을 빠져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혼자 내뱉은 소리를 들었는지 창가에 서 있던 김 작가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다가왔다.

윤 작가님, 드라마 봐요?”

아니야, 참 김 작가 혹시 의학 쪽에 관심 있어?”

건강 프로그램은 빠지지 않고 보긴 해요. 헌데 왜요?”

아냐, 어때, 자기 대본은 잘 돼가?”

나는 괜히 말을 꺼냈다 싶어 말꼬리를 돌렸다.

머리에 쥐가 나서 터질 지경이에요. 낼 까지 못 내면 잘릴 텐데... 언니는 요?”

센스쟁이 김 작가도 못하는데 나라고 무슨 수 있겠어? 그렇게 닦달만 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런 거다 말을 해 주던지. 이건 뭐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올리는 안마다 퇴자를 놓으니. 나 원 참.”

그러게요. ... 잠깐만요.”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김 작가는 황급히 자리로 돌아가 키보드를 두들겼다. 아랫배가 땅기는 듯했다. 종종 걸음으로 화장실로 가 변기에 앉았다. 아랫배에 힘을 주었으나 또 실패다. 사흘째다.

호준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내려오라고 했지만 임종의 부산스러움과 마주하는 것이 귀찮아 인터넷으로 마지막 편 제주행 티켓을 구했다. 평일인데도 만석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눈꺼풀이 저절로 감겼다.

엄마 폐가 굳어 가고 있어. 밤새 기침 소리 때문 나도 잠을 설칠 때가 많아. 올해 넘기지 못한대.”

호준의 말에 난 대꾸도 않고 종이컵의 커피만 홀짝 거렸다.

누난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아? 아픈 몸으로 살아보겠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부질없이 동생과 말다툼하고 싶지 않았다. 대답이 없자 호준이 다그치듯 말을 이었다.

정말 인연 끊을 거야? 얼굴 안 본 지 몇 년째야? 그만했으면 화해 할 때도 됐잖아? 가족끼리 이해 못 할게 뭐 있어?”

가족이란 말에[ 난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나서 말했다.

호준아, 가족이 무슨 소용이야?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아둥바둥 삶에 치이다보니 누나 노릇 못해 미안해.”

그리고는 책상 속에 미리 준비해 둔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순간 호준은 나를 노려보며 자리를 박 차고 일어섰다.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난 누나에게 섭섭한 것 없는 줄 알아? 그래 다신 만나지 말자고.”

그렇게 문을 부술 듯이 화풀이를 하고 나간 호준이가 두 달 만에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전화를 해왔다.

밤 열한 시가 넘어서 참으로 오랜 만에 낯선 집에 도착했다. 외삼촌과 호준이가 가쁜 숨을 내쉬는 어머니 침상 옆을 지키고 있었다.

왜 이제야 왔어? 정말 생전 엄마 얼굴 안 보려 했어?”

호준은 방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대뜸 화부터 냈다. 외삼촌이 말리지 않았으면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호통 소리에 놀랐는지 어머니가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눈에서 광선이 나오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초점이 없는 눈동자였다.

어서 손이라도 잡아 드려라. 너를 기다리느라고 긴 시간 고통을 참아내셨다.”

난 마지못해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모친의 왼손을 잡았다. 나무 삭정이처럼 마른 손은 차디차고 딱딱했다. 관절염으로 굽은 손가락이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다. 두 손으로 마주 잡아 온기를 전하자 어머니의 눈은 감겼고 큰 호흡을 내쉬더니 숨이 멈췄다. 눈물 한 줄기가 길을 만들며 베개 밑으로 떨어졌다. 호준은 울부짖었지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인간이란 스스로의 울음으로 모태에서 나와서 피붙이들의 울음으로 하직하는 구나. 그래서 인생은 고해라는 건가? 생각이 꼬리를 무는데 옷소매로 눈가를 훔치고 난 외삼촌이 말했다.

너를 기다렸던 모양이구나. 뼈가 굳기 전에 어서 다리와 손가락을 펴드려라. 얼마나 무릎을 펴고 싶었겠냐?”

어머니는 젊었을 적부터 왼쪽 무릎을 펴지 못해 평생 절뚝발이로 살았다. 그것은 가난이 남긴 상처였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겡이통에서 놀았다. 외할머니가 물질하는 동안 얕은 바닷가에서 게들과 놀면서 혼자 헤엄치는 법을 배웠고 누께통에서 물질하는 법을 전수 받았다. 어머니는 상군 소리를 들을 만큼 기량이 뛰어났다. 동네 아줌마의 중매로 얼굴 잘 생기고 풍채 좋은 아버지를 만나 시내로 이사하면서 물질을 그만 두었다. 한동안은 원양어선 타는 아버지 덕으로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버지에게서 부쳐 오던 돈이 끊겼다. 어머니는 다시 물질에 나섰지만 십여 년을 바다 떠나 살았으니 기량이 예전만 못했다. 한 푼이라도 더 남기려고 수확물을 어촌계에 맡기지 않고 외할머니 몫까지 가져다 시내 장터에 가판을 놓고 팔았다. 아주 추웠던 어느 겨울날, 어머니가 시장 아저씨에게 업혀 왔는데, 쭈그려 앉았던 무릎을 펴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류마치스성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오랜 기간 물리 치료를 받고 나서도 두충 잎, 돼지 족발, 고양이 고기 등 좋다는 것은 다 구해서 먹었지만 끝내는 왼쪽 무릎 연골이 다 녹아버렸다. 걸을 때마다 뼈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그때마다 아파서 울었다.

나는 구부러져 바닥에 닿지 못하는 왼쪽 무릎을 양팔로 꾹 눌렀다. 우두둑 소리를 내며 그제야 오른 다리와 나란히 놓였다. 호준이가 흐느끼며 구부러진 어머니 손가락을 펴나갔다. 외삼촌이 어디선가 끈을 구해와 두 다리와 팔을 동여맸다.

 

장례는 외삼촌의 제안대로 병원 장레식장에 맡기기로 했다. 연락 받고 도착한 엠뷸런스에 외삼촌과 호준을 태워 먼저 보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지나고 있었다. 벌컥 방송대본이 걱정되었다. 아침회의 전까지 보내야 하는데 아직 마땅한 아이템도 구하지 못한 것이 마음을 옭죄었다. 개다리 밥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았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다 맞은 편 방 살짝 열린 문틈으로 티브이가 보였다. 방문을 열자 퀴퀴한 총각 냄새가 코를 찔렀다. 티브이 위에 있는 사진 액자 속에서 호준이가 편안하게 웃고 있었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외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부음 소식에도 고향을 찾지 못한 죄스러움에 알른 시선을 옮겼다. 이내 어머니에게 시선이 닿자 넌더리가 나 액자를 덮어버렸다. 침대에 앉아 리모컨으로 티브이를 켜고 개그 프로그램을 찾았다. 상중임에도 개그 대본을 짜야하는 현실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인생은 언제나 아이러니지.’ ‘저게 언제적 개그야? 저렇게 유치한 것으로도 웃길 수 있나?’ 팔로 머리를 괴고 잠시 몸을 모로 눕혔는데 깜빡 잠이 들었다.

전화벨 소리에 눈떠보니 티브이는 저 혼자 놀고 있고 시계는 2시를 향해 달리고 있다. 알아서 다 준비해 놓을 테니 푹 자고 내일 아침 오라는 호준의 배려가 고마웠다. 난 온기 없는 목소리로 알았다고만 했을 뿐 고맙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으나 머릿속은 고장 난 라디오처럼 윙윙거리고 눈꺼풀만 무거웠다. 화장실로 가 수도꼭지를 돌리니 뜨거운 물이 나왔다. 알맞은 온도로 조절하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허물을 벗어던지고 탕 안에 앉으니 살갗을 침투해 들어온 따뜻한 기운에 눈꺼풀이 굴복했다. 어머니 태속에 있을 때의 편안함이 느껴졌다. 헌데 유년의 기억이 불쑥 물풍선처럼 떠올랐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 생일이었으니 여덟 살 나던 해였다. 단짝 친구들에게서 꼬투리만 남은 몽당연필과 반쪽 자른 지우개를 생일선물로 받았다. 친구 둘을 데리고 집에 와보니 어머니는 없고 전복 무더기가 마당 비료 비닐 위에서 마르고 있었다. 답례품으로 그것을 하나씩 손에 안겼다. 헌데 어머니가 귀가한 뒤에 일이 터졌다. 어머니는 걷어 들인 전복 개수를 세어보고 나서 나를 불렀다. 난 고개를 흔들며 얼떨결에 시치미를 떼었다. 어머니는 어린 것이 거짓말을 한다며 빗자루를 들고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 전복이 얼마짜린데. 어디다 숨겨두었어? 어린년이 벌써부터 도둑질을 해?”

숨기지 않았어. 내가 먹었어. 배가 고파서 먹었어.”

시퍼런 서슬에 생일이라고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내리치는 빗자루를 팔로 막으며 울부짖었지만 화가 풀리지 않은 어머니는 옷을 벗으라고 했다. 발가벗기고 쫓겨날 것이 두려워 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만 어머니는 끝내 팬티까지 벗겨내곤 벌벌 떨며 우는 나를 헛간으로 끌고 갔다. 그리곤 빈 드럼통 속에 가두고 뚜껑을 닫아버렸다.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란 걸 커서야 알았다. 목이 터질 듯이 울다가 기진해 쓰러졌는데 밤늦게 돌아온 아버지에 의해 구원되었다. 몸에 난 상처를 어루만지며 어머니에게 욕지거리를 해대는 아버지 품에서 난 서러움에 북받쳐 마구 울었다. 그때 아버지 품이 그토록 따듯하다는 걸 처음 느꼈다.

천정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톡하고 정적을 깼다. 가만히 눈을 떠 욕조 근처를 살펴보니 곳곳에 곰팡이가 영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순간 그 곰팡이 균이 물속에 들어와 나를 에워싸고 있다고 생각됐다. 나는 벌떡 일어나 때밀이 수건을 움켜쥐고 곰팡이를 사정없이 공략했다. 샤워기 호스를 쏘아대며 빡빡 밀어댔으나 오래 밴 곰팡이 떼는 거머리 같이 몸을 웅크린 채 떨어지질 않았다. 그러다 벗겨져 나온 곰팡이 조각이 내 몸에 붙은 것을 발견했다. 난 질겁하며 호스로 씻어내고는 때수건으로 몸이 벌겋게 물들도록 사정없이 밀어댔다.

 

음악벨 소리에 잠이 깨었다. 골치 아픈 정 피디였다.

사정 아는 데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요.”

무슨 개소리야? 어머니 안 계시다고 했잖아? 핑계 말고 오늘 3시까지 콘티 보내지 않으면 다신 내 얼굴 볼 생각 마.”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몇 년을 함께 일해 왔는데 설마 자르기야 하겠어?’ 하고 자위해 보지만 불길한 기운이 쌩하고 마음속을 훑고 지나갔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먼저 와 진을 치고 있던 친척들이 내 손을 잡으며 살갑게 맞았다. 피로 엮어진 사람들은 삶의 애환을 함께 할 의무를 지닌다는 걸 알았지만 그런 사슬에 묶인다는 게 어색하고 싫었다. 난 의례적으로 그들과 손을 잡고 미소만 지었다. ‘지금 어디 살고 있느냐?’ ‘무얼 하느냐?’‘시집은 갔느냐? 애들은 몇이냐?’하는 질문엔 그저 차차 알게 될 거예요란 말만 했다.

호준은 상조회에서 제공한 윗부분을 꿰매지 않은 삼베 두건을 쓰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직장이 주류도매상이라 거래처에서 온 조화들이 꽤 많았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자 문상객들이 몰려들었다. 식당은 북적댔지만 결코 추도의 슬픈 분위기는 아니었다. 사람들의 소음 속에서 멀미를 느끼는 순간 머릿속에 번쩍이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분향실을 빠져 나와 조용한 곳을 찾았는데 마침 옆 분향실이 비어 있었다. 노트북을 그리로 가져가서 펼쳐놓고 방금 떠오른 구성안을 써나갔다. 한참을 집중해서 글을 쓰는데 외삼촌이 불쑥 들어왔다.

아니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한참을 찾아다녔는데.”

, 급히 보내야 할 문서가 있어서요.”

어멍 보내는 것보다 더 중한 일이 어디 이서? 지금 입관식 한다니까 얼른 영안실로 가자.”

어렸을 적부터 엄격했던 경외의 대상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데야 눙칠 재간이 없었다. 난 워드 작업을 멈추고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영안실에선 호준이와 가까운 친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입관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염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은 사람 둘이서 망자의 옷을 벗기고 탈지면을 교체해가며 구석구석 정성스럽게 닦아냈다. 수의를 갈아입히고 나서 하얗게 변한 얼굴에 색조 화장까지 했다. 시신의 부패 방지를 위해 실내는 추웠고 시간은 오래 걸렸다. 허나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끝났다고 말하는 그들의 얼굴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 이제 좋은 곳으로 떠나는 망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상주 분들부터 나오십시오.”

염장이는 땀을 닦고 나서 수저에 쌀 몇 알을 놓고 내밀었다. 호준은 양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그러자 살아있는 사람에게 말을 하듯 시신의 입에 쌀을 넣으며 말했다.

이건, 아드님이 드리는 마지막 밥입니다. 드시고 좋은 곳에 왕생하십시오.”

호준은 기어코 어머니를 부르며 오열했지만 그런 동생이 낯설게 느껴졌다. 화장술이 얼마나 기발했는지 젊었을 적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였다. 순간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얼굴을 돌렸다. ‘, 늙는다는 건 마르는 것이로구나. 탱탱하던 육신에 윤기가 사라지고 물기가 빠져서 푸석해지면 흙이 되는 것이로구나.’ 외삼촌이 툭하고 등을 밀자 할 수 없이 다가갔지만 합장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내 얼굴을 힐끗 살핀 염장이는 수저를 옮기며 말을 했다.

이건, 따님이 주시는 음식입니다. 음향하시고 좋은 곳으로 가십시오.”

외삼촌 내외와 사촌들이 같은 방법으로 의식을 끝내자 시신은 다시 삼베로 묶여지고 관속으로 옮겨졌다. 입관식이 끝나자 성복제를 한다며 상조회에서 상복을 내밀었다. 호준이는 검은 양복 위에 완장과 제대로 기운 두건을 썼다. 내겐 하얀 헝겊이 달린 머리핀을 꼽고 검은 치마저고리를 입으라고 했다. 휴게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사촌 동생이 전화 왔다며 핸드폰을 가지고 왔다. 정 피디였다. 시간을 확인하니 3시가 지나고 있었다. 난 아차 싶어 얼른 수신 모드로 만들었는데 벨소리가 끊겼다. 전화를 할까하다가 갈구는 말을 듣기가 싫어 죄송합니다. 정리하고 곧 보내겠습니다.’는 문자를 보냈다.

영안실을 나와 옆 분향실로 걸음을 옮겼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 둘이서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작업해 놓은 구성안을 저장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금 너희들 뭐하니?”

신발을 내팽개치듯 벗고 달려가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두 조카를 밀쳤다. 그리고 게임을 아웃시키고 바탕 화면을 보았는데 저장된 한글 파일이 없었다. 혹시나 하고 문서 파일과 휴지통까지 뒤져 보았으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너희들 여기 있던 문서 어쨌어?”

아이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서로 멀뚱이 쳐다보며 말했다.

우린 몰라요. 컴퓨터 있기에 금방 코드 꼽고 게임한 거예요.”

맞다. 아까 우리 엄마가 핸드폰 충전하고 나갔는데,..”

눈앞이 노래지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설 수 없었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상주 휴게실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던 난 목청 돋우는 외삼촌의 소리에 깨었다. 문을 열고 나와 보니 허름한 복장의 노인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한눈에 아버지란 걸 알았다. 심장의 거센 박동이 짜릿한 희열을 만들어냈으나 외삼촌의 노기가 워낙 대단해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 무슨 낯짝을 들고 여길 찾아왔어?”

아버지는 땅만 처다 볼 뿐 말이 없었다. 카키색 윗도리 속으로 환자복이 보였다. 후줄근한 바지를 입고 노랗게 변한 안색에 텁수룩하게 자란 하얀 수염이 완연한 병자의 모습이었다. 상주 자리엔 어린 조카가 지키고 있을 뿐 호준은 보이지 않았다.

이 사기꾼 때문에 병을 얻고 일찍 죽었어. 이놈 아니었으면 호준이 어멍이 왜 시퍼런 나이에 죽느냔 말이야.”

외삼촌은 손가락질 하며 야단을 쳤지만 아버지는 묵묵부답이었다. 둘러선 친척들의 입에서 나쁜 놈’, ‘아주 쇠가죽이구만.’하는 소리가 나왔다. 그런 소리에 기가 오른 외삼촌이 아버지의 등을 떠밀어 분향실 밖으로 밀쳐냈다.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에 향은 올리게 해야죠.”

낯익은 목소리를 들은 아버지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입가가 떨리더니 이내 탄식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은정아!”

아버지의 팔을 잡고 분향실로 향하는데 뒤에서 호준이 목소리가 들렸다.

안 돼,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와. 당장 나가.”

완강한 소리에 놀란 난 눈을 크게 뜨고 호준을 보았다. 술을 먹었는지 분기 때문인지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호준아, 그래도 아버지한테...”

, 아버지 좋아하시네. 피를 주었다고 다 아버지야? 자식 앞길 막는 게 아버지냐구? 누나는 내 꼬라지 몰라서 이러는 거야?”

난 일본에서 돌아와서야 호준이가 아버지와 틀어진 이유를 알았다. 어머니는 호준의 진학을 위해 세뱃돈 등을 모아 적금을 들었다. 헌데 당시 노름에 빠진 아버지는 현금은 물론 호준과 내 이름으로 된 적금 통장도 깼다. 호준이의 이름으로 대출 한 것도 모자라 보증인으로 세워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사채업자에 쫓기던 호준은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군 입대로 도피했다. 그렇게 호준은 사회에 나오기도 전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제대 후 취직에도 애를 먹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빚을 다 갚지 못해 사채업자들이 따라 다닌다고 했다. 호준의 고통과 분노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나에겐 일본에 있을 때도 한 없이 그리운 아버지였다.

그리울 때마다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늘 내주었던 그 넓고 따뜻한 등, 자고 있는 나를 깨워 아이스크림을 내밀며 짓던 넉넉한 미소,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짜장면과 예쁜 신발과 옷을 사주었던 유년의 기억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버지 모습이었다. 아버진 젊은 시절부터 원양어선을 타고 나가 배에서 생활을 했다. 어쩌다 귀국할 때면 초콜릿이랑 외국 인형들을 가지고 왔다. 그런 아버지를 가진 나를 동네 아이들은 부러워했다. 허나 아버지의 생활이 고달펐다는 건 철이 든 후에야 알았다. 종일 힘든 노역을 마치고 나면 망망한 바다 위에서 낙이라는 건 동료 선원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화투 치는 일이었다. 노름을 하다보면 싸움도 벌어지고 다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어머니한테 큰돈을 준비하라는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사고를 쳐 선원 하나가 머리를 다치고 실명이 되어 합의금이 필요했던 것이다. 배에서 내린 아버지는 노름에 빠져 돈이 궁할 때만 집에 들렀다. 헌데 외삼촌이 어디서 들었는지 아버지는 결혼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걸 숨기고 사기 결혼 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지금 그 여자와 살고 있다는 말을 나도 숨어서 들었다. 결국 다툼 끝에 이혼을 했다. 그게 첫 월경을 하던 해였으니 상처는 오래 남았다.

주변의 기세에 눌린 듯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출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난 아버지 뒤를 따라 나오며 물었다.

아버지, 어디가 아프세요?”

땅만 보며 묵묵히 걸어가던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면목 없다. 벌을 받아도 싸지. 너희들에게 고통만 주고...”

다시 아버지의 고개가 꺾이면서 어깨가 축 늘어졌다. 멀쩡했던 아버지의 손이 이상했다. 난 손을 잡아 올려 말없이 바라보았다. 오른 쪽 엄지와 검지 손가락 마디가 잘려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버지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이미 젖어 있던 아버지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난 손바닥으로 흘러내린 아버지의 눈물자국을 닦았다.

울지 마세요. 저도 자식 된 도리 다 못해 미안해요. 삶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건가요?”

눈물을 흘리면서도 난 아이를 달래듯이 아버지의 얼굴을 닦아냈다.

잘 살아야 육 개월이다. 저승에 가면 어머니한테 용서를 구하마.”

어디가 아프신 데요?”

아버지는 손바닥으로 배를 감싸며 말했다.

. 복수가 차올라. 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기억을 재생하며 원고를 쓰는데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순간 정 피디가 생각나 가슴이 철렁했는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젠 나로서도 어쩔 수 없어.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다신 연락도 마.’

개새끼. 인정머리하곤...”

분통이 터져 멍하니 앉아 있는데, 밖에서 야단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지금 뭐 하는 게냐? 통곡해도 시원치 않은데. 무슨 애가 그러냐?”

외삼촌의 잔소리는 울고 싶은데 뺨을 때린 격이었다.

내가 뭘요? 왜 나만 갖고 그래요!”

 

10시가 넘어서자 친척들도 모두 자리를 뜨고 호준과 둘만 남았다.

누나, 여긴 내가 있을 테니 집에 가서 편히 쉬어.”

호준이가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 무척 꿉꿉했다. 문득 어렸을 적 헤엄치던 고향 바다 생각이 났다.

아저씨 죄송한데요. 한담으로 가 주세요.”

달이 없는 밤이었지만 2층 카페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바닷가는 환하게 밝았다. 예전에는 없던 건물이 들어서고 고향은 많이 변해 있었다. 바닷길로 내려서니 어릴 적 놀던 자그만 백사장이 반겨주었다. 잔잔하게 밀려드는 파도소리를 벗 삼아 가로등 켜진 산책로를 걸었다. 굽어진 길을 돌아서면 숨어있던 기암괴석들이 달려들었지만 생각에 몰두한 은정에겐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졸지에 백수가 되었으니... 미친 새끼, 의리도 인간에 대한 예의도 모르는 놈... 어디서 일자리를 찾지?’ 머릿속에서 툴툴거리며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 소리가 들렸다. 손등으로 목을 타고 흐르는 진땀을 훔치자 멱을 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카페도 멀고 산책객들도 없었다. 난 산책길의 궤도를 이탈하여 바위틈에다 신발과 옷을 차곡차곡 벗어 두고 콕콕 찌르는 현무암 바위를 밟으며 바다로 들어갔다. 겨울로 접어들었는데도 바다 속은 오히려 따뜻했다. 두 팔을 휘젓자 물결이 내 알몸을 부드럽게 애무했다. 그냥 이대로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변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아까부터 카페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힐끔 거리던 남자가 다가왔다. 위기감을 느끼며 발길을 옮기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혹시, 은정이 누나 아니세요?”

돌아다보니 유행하는 머리에 스포티한 복장을 갖춘 건장한 젊은이였다.

맞구나. 저 명훈이에요. 성훈이 형 동생.”

난 깜짝 놀라며 반가움에 한 발자국 다가섰다.

명훈이?”

저 카페 제가 운영하는 거예요. 바쁘신 줄 알지만 커피 한 잔하고 가세요.”

카페는 영업이 끝나서 음악도 멎어 있었다. 난 명훈이 안내한 자리에 앉아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찬찬히 살폈다. 카페는 젊은이들 취향에 맞게 인기 걸 그룹 브로마이드와 캐릭터 인형, 자그만 화분, 특이하게 생긴 조명기구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어머니 소식 들었어요, 동창회에서는 내일 조문 갈 거예요,”

커피에 각설탕 한 조각을 넣고 저으며 그제야 명훈을 기억해 냈다.

우리 호준이와 동창이었지?”

그럼요. 어렸을 적 집에 자주 놀러 갔었잖아요?”

옆 마을에 살던 성훈은 군 제대 후 교회에서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영옥을 따라 교회에 갔던 난 첫눈에 기타 치며 노래하는 성훈에게 반하고 말았다. 외로운 자신에게 하느님이 내린 선물이라 생각했다. 날마다 성훈에 대한 그리움을 일기장에 쓰며 일요일을 기다렸다. 성훈에 대한 생각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졌다. 헌데 교리가 끝난 어느 날 성훈이 보자고 했다. 자신의 간절한 기도가 하느님에게 닿았다고 생각했는데 애타는 모습을 보다 못한 영옥이 도와주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천국을 날아다니는 듯 나날이 꽃 봄이었다. 그날이후 우리는 시내 성훈의 자취방에서 자주 만났다. 헌데 고등학생 신분인 내가 덜컥 임신을 하고 말았다. 배가 점점 불어 오르자 겁이 났다. 소문 날까봐 학교도 가지 못했는데, 종국에는 입덧하는 모습을 어머니에게 들키고야 말았다. 어머니는 다짜고짜 매질부터 시작했고, 급기야 성훈의 집으로 끌고 갔다. 책임지겠다는 성훈에게 어머니는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시방 아방 없다고 우리 집안 무시하는 거야? 참말로 무슨 낯짝으로 결혼? 그런 부모에 그 얼굴로? 아이고 야.”

성훈은 어렸을 적 앓은 마마 후유증으로 얼굴이 얽어있었다, 부모가 일찍 이혼하는 바람에 고아원에서 자랐고, 모친은 술집을 운영하다 재가하여 명훈을 낳았다. 이런 집안 내력을 알고 있는 어머니는 성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울며불며 사정했지만 집밖 출입도 못하게 감금시켰다. 며칠 후 어머니는 나를 일본에 있는 이모네로 데리고 가서 낙태수술을 시켰다. 그리고 나를 이모에게 맡기고 혼자 귀국해 버렸다. 그 후로 성훈 소식은 듣지 못했다.

형은 잘살고 있지?”

서울에 살아요. EP&C라고 핸드폰 부품 만드는 회산데 거기 상무에요,”

쓴웃음이 나왔다. 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는데 명훈이가 말을 이었다.

, 영옥이 누난 만났어요?”

김영옥. 어렸을 적 단짝이었는데 일본으로 간 이후 소식이 끊겼다.

영옥이가 제주에 있어?”

그럼요. 신제주에서 가게해요. 저도 접대 손님 있으면 가끔 가요. 집에 가는 길에 모셔다 드릴 게요.”

명훈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시내로 가는 차 안에서 명훈은 호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귀던 여자 친구가 엊그제 해산했는데 호준은 그녀를 나무라며 모른 척 한다는 것이었다.

순지가 바람기가 있다며 자신의 애가 아니라는 거죠. 그런 건 병원 가서 유전자 검사하면 알 수 있는 것 아녜요? 헌데 호준이가 꺼리는 거예요. 자신은 늘 독신주의자라고 나팔 불고 다녔거든요. 누나가 잘 설득해 줘요. 순지가 안됐어요.”

영옥은 아담한 호텔 지하에서 룸 비지니스 클럽을 운영하고 있었다. 영옥은 오랜 만에 나타난 나를 호들갑스럽게 맞이하며 반가워했다. 서로 그간의 사정을 안주로 위스키 잔이 몇 순배 돌아가자 영옥이 불쑥 성훈의 이야기를 꺼냈다.

명절이나 출장을 오게 되면 가끔 여기 들리는데 네 안부를 묻더구나. 남자들은 첫사랑을 못 잊는 게 맞아.”

다 철 없던 시절 얘기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훈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그래, 왜 그간 소식 없었어? 일본에 간 건 아는데 귀국했으면 연락이라도 했어야지?”

미안하다, 고향이 싫다보니 그리 됐다.”

고향 아니라 어멍이 싫은 거겠주? 그렇다고 친구까지 버리냐?”

영옥은 직업 탓인지 사람 속을 꿰뚫어 보는 듯 했다.

나 일본에서 못 나올 뻔 했다. 일본 사람이 애 나달라고 어찌나 보채는지?”

왜 마음 좋고 돈 많으면 눈 까진 양코배기라도 오케이지. 지금은 글로벌 시대 아니가?”

어멍의 간계에 내 인생 맡기라고? .”

몸조리가 끝난 후 난 이모의 식당에서 몇 년 동안 일을 했다. 그러다 이모부가 다른 지방으로 전근을 가게 되자 이모는 식당을 접었다. 그래서 난 이모의 소개로 단골이었던 일본인 집안의 가정부로 들어갔다. 돈이 많은 일본인은 처음에는 친딸처럼 잘 대해 주었으나 계절이 바뀐 어느 날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냈다. 집안에 자식이 없어서 애를 하나 나주면 상당한 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약속된 것이고 모친도 승낙한 일이라고 했다. 계약금으로 어머니에게 송금한 영수증까지 보여 주었다. 이모에게 전화 걸어 확인하니 모두 사실이었다. 모욕감과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었다. 당장 그 집을 나와 이모에게로 갔다. 헌데 이모의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언닌 당신의 전철을 밟을까 두려워했어. 사실은 언니도 널 임신했기 때문에 네 아버지 상황을 알면서도 억지로 결혼했거든. 너를 일본에 데리고 온 것도 다 생각이 있어서야, 지금 호준이는 외할머니가 돌보고 있고 언니는 좋은 사람 만나 잘 살고 있다. 어머니 욕하지 말고 네 앞길 네가 알아서 해.”

재혼을 위해서 나를...?’ 그 말은 들은 이후 난 어머니와의 인연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듣던 영옥이 웃으면서 추억 한 조각을 꺼내 들었다.

너 기억나니? 중학교 때 수철이랑 너희 집에 갔는데 어린 것들이 공부는 않고 무슨 연애질이냐고 쫓겨났던 거 말야?”

그게 자격지심 때문이었다는 걸 그땐 몰랐지. 그렇게 자식까지 버린 사람이 잘 될 리 있어? 동거하던 남자가 사업에 실패하고 자살하는 바람에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할머니네 집으로 돌아왔지. 그러니 내가 그 꼬락서니를 보고 싶겠냐구?”

속이 니글거렸다. 화장실 가려고 일어서려는데 어지러웠다. 생각해보니 점심과 저녁도 거른 빈속이었다.

왜 벌써 가려고?”

아냐, 속이 안 좋아서.”

시간도 늦었는데, 여기서 자고 가. 위층 호텔에 방 잡아 줄게.”

룸에 딸린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려고 했지만 헛구역질만 나왔다. 화장을 고치고 나왔는데 온몸에 기름을 바른 듯한 말쑥한 젊은 총각이 앉아 있었다.

얘 괜찮지? 우리끼리 무슨 재미야? 오늘은 마님 대접 좀 받아봐.”

정 군은 대학생인데 알바를 하고 있다고 했다. 얼굴도 미남인데다 매너가 깍듯했다. 그렇게 둘이서 정 군을 희롱하며 술을 마시다 난 의식을 잃었다.

바닷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물결의 부드러운 촉감이 닿을 때마다 몸은 바다 위로 솟구쳐 올랐고 황홀경을 느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야릇한 기분이었다. 몇 번의 환희를 느끼고 깊은 잠에 빠졌는데 누군가 쫓아오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도망을 쳤지만 금방 잡힐 것 같았다. 골목을 돌자 헛간이 나타났다. 그 안에 드럼통이 있었다. 드럼통 속에서 알몸을 둥그렇게 말아 안았지만 부들부들 떨렸다. 제발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하는데 갑자기 뚜껑이 열리며 머리채를 잡힌 채 내동댕이쳐졌다. 징그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였다. 난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누군가 밖에서 노크를 하고 있었다. 잠자리가 낯설다고 느끼며 옆 자리를 보니 정 군이 알몸으로 자고 있었다. 난 고개를 흔들며 머리를 쥐어박았다. 노크 소리가 잦아졌다.

난 정 군과 함께 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는 대학생도 아니었고 사기전과 3범으로 수배 중인 범죄자였다. 연락을 받은 영옥이 와서야 난 풀려났다.

일포제를 올렸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영결식 하루 전 올리는 의식이다. 제를 마치고 커피를 청해 마시는데 속으로 들어갔던 뜨거운 것에 위가 놀랬는지 금방 되올라왔다. 위가 제대로 상한 모양이다.

누나, 어제 술 마셨어?”

속을 달래느라 배를 문지르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호준이 한 소리 했다.

아냐. 스트레스 받으면 가끔 이래.”

 

병원을 찾아 처방을 받은 후 아버지 병실을 찾았다. 6인 병실이었는데 아버지는 자고 있었다. 이웃 간병인이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밥도 안 먹고 수면제에 의지해 잠만 잔다고 했다. 은정은 메모를 써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 담당 의사를 만나고 돌아왔다.

장례 식장은 호준의 친구들, 거래처 사람들, 멀리서 온 친척들까지 모여 들어 북새통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빠져 나갔을 때 호준이 분향실로 들어오며 손님이 찾는다고 했다.

내게 손님? 영옥인가?”

아냐. 나가 봐.”

밖으로 나가려는데 도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신사가 분향실 안으로 들어왔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말없이 목례를 했다. 성훈이었다. 갑자기 얼굴에 화기가 몰리며 심장이 쫄깃해 졌다. 성훈은 향을 꼽고 절을 했다. 그의 얼굴엔 마마 자국도 없고, 흰 와이셔츠에 검은 넥타이가 잘 어울리는 중후한 신사였다. 식당 한 쪽에 자리를 정하자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쑥스럽기도 하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손을 마주 잡자 성훈이 활짝 웃으며 분위기를 띠웠다.

명훈에게 전화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영정 사진 보며 느끼는 거 없었어요? 그렇게 닦달질 하며 매까지 맞았는데.”

그땐 참 밉고 괴로웠지만 지나고 나니 그게 부모 마음이구나 생각했어. 한창 나인데 안됐어.”

다 팔자소관이지 뭐. 참 좋아 보여요.”

여기 오기 전 영옥일 만났어.”

영옥을 만났다면 자신의 사정을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겠는데 얼른 화두가 떠오르지 않았다. 단체 조문객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참 식사해야죠?‘

아냐, 저녁에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바로 올라가야 돼. 여기서 긴 이야긴 못하겠고, 일 치르고 나서 나 좀 만나.”

성훈은 양복저고리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흥진무역 대표이사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다니던 회사 사표내고 새로 사업 시작했어, 나 좀 도와 줘.”

내가 무슨...?”

방송 작가라면 홍보 파트는 일가견 있을 것 아냐? 일본하고 합작회산데 은정이 할 일이 왜 없겠어?”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성훈은 서둘러 커피 잔을 비우고 일어섰다. 소란의 근원지를 찾으니 험상궂게 생긴 사람이 호준일 앞에 두고 실랑이를 하고 있었고 외삼촌이 중재하고 있었다. 그들이 사채업자가 보낸 똘만이란 걸 단박에 눈치 챘다.

초상집에서 행패 부리지 말고 내 말이 거짓말인지 가서 알아봐. 미성년자 연대보증 무효라는 뉴스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건달은 화풀이 하듯 주변 사람들에게 쌍욕을 내뱉으며 죄 없는 의자를 발로 걷어차고 나갔다.

 

밤이 늦어지자 밤샘하려는 사람들만 남고 모두들 돌아갔다. 화투꾼들 시중을 들다 호준이가 분향실로 돌아와 잠자리를 폈다.

누나, 집에 가서 자.”

잠깐 얘기 좀 하자.”

내일 하면 안 돼? 지금 피곤한데...”

장례 끝나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몰라.”

호준이 침구 위에서 벽에 기대어 앉으며 의아스런 표정으로 바라봤다.

무슨 일인데?”

나도 벽에 등을 기대고 호준과 나란히 앉았다.

너 아들 낳았다며? 축하한다.”

누나 그거 어떻게 알았어?”

명훈이한테 대충 얘기 들었다. 네 사랑이 거짓이 아니었다면 받아드려라. 징그럽게 불행한 인생 대물림 하고 싶니?”

호준이의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누난, 그간 내가 얼마나 절망했는지 모를 거야. 난 결혼할 능력도 자격도 없는 막장 인생이라 생각했어. 난 참 비겁한 놈이지?”

호준이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그게 어디 네 탓이니? 빚더미나 물려주는 세상 탓이지. 이제 다 풀렸잖아. 그래도 넌 직장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지. 네 또래 애들 백수 많잖아? 이제 네 인생 살아.”

호준이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의 고통스런 날들에 복수하듯 살 거야.”

병원에 갔다가 아버지 담당의사 만났어. 간 이식 받으면 살 수 있대. 그것도 아무한테나 받을 수 있는 건 아니고 자식들이라고 다 되는 것도 아니래. 수치도 맞아야 하고...”

누나, 그런 말 하는 이유가 뭐야? 나보고 간 이식하라는 거야?”

호준이는 흐느끼던 아까와는 사뭇 다른 얼굴로 화를 냈다.

아냐. 난 내일 검사 받아 보려고...”

누나 인생 누나가 알아서 해. 난 그 사람 죽어서도 용서할 수 없어.”

호준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신의 몸을 숨겨 버렸다.

 

금방 눈이라도 퍼부을 듯 하늘은 퉁퉁 부어 있었다. 발인제를 올린 후 망인의 관은 영구차에 실려 화장장으로 옮겨졌고, 호준이 오열하는 가운데 가마 속으로 들어갔다. 좁다란 분향실에 앉으니 시선이 어머니 영정에 머물렀다. 어제 성훈이 배웅 중에 하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 그만 어머닐 놓아 드려. 어머닌 은정일 무척 보고 싶어 했어. 언젠가 명절 때 집에 찾아간 적이 있었어. 은정일 망쳐놓아 죄송하다고 했지. 헌데 어머닌 젊은 애 앞길 막아선 자신의 죄가 크다고 용서를 구했어.”

영옥이 한 말도 생각났다.

, 성훈 씨 말이야. 아직도 총각이래. 말로는 연애할 시간 없어 결혼 못했다지만 아직도 너 좋아하는 거 아냐?”

생각에 잠겨있는데 호준이 들어와 옆에 앉았다.

누나, 어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난 아버지한테 철저히 복수하기로 했어.”

복수라는 말이 의아해 호준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내 인생 복수 할 데 없잖아? 잘 사는 걸 보여주고 눈물 흘리게 만들 거야

죽어도 용서할 수 없다더니 역시 피 끌림은 어쩔 수 없구나. 코끝이 찡해 왔다.

그럼. 너도 병원에 함께 갈래?”

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순지와 내 아들 보는 게 먼저야. 내 가족이잖아?”

갑자기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변의를 참으며 화장실로 달렸다. 변기에 앉자마자 속 시원하게 터졌다. 아랫배에 힘을 주느라 그랬는지 눈물이 다 나왔다. 성훈이 했던 말이 귓속을 맴돌았다. 어머니를 붙잡고 있으면 영혼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헤맬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언제고 과거의 굴레 속에서 허우적댈 것이다. 재가 되어버린 증오가 무슨 소용인가? 따져볼 기회도 변명도 없이 가버린 어머니가 야속했다.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난 목 놓아 하염없이 울며 소리쳤다.

엄마. 그렇게 가버리면 난 누구한테 복수하라고...”

 

잿빛 하늘에선 새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제주문학 71호 2017년 여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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